단편은 부담감 없는 분량이 특징인 소설이다
그럼에도 내 입맛에 맞는, 읽는 동안 집중력을 유지시킬 수 있는 경우가 많지는 않은데 <문 뒤에 지옥이 있다>의 경우는 꽤나 몰입도가 괜찮았던 글이었다
소재는 제법 흥미롭다
어디로 이어지는 지 알수 없는 문, 그리고 문을 닫았다 열 때마다 바뀌는 문 바깥의 풍경
일상생활에서 언제나 접하는 대상이 ‘낯선’ 화 되었을 때의 공포감을 노린, 제법 재미있는 소재를 가지고 쓴 글이다
같은 소재를 다룬 영화를 꽤 기대하고 본 기억이 나는데 이런 식으로 풀어내는 것도 꽤 재미있는거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글은 시작에서부터 이미 잔뜩 과부하걸린 속도를 자랑하더니, 글이 마무리될 때까지 굉장한 속도감이 느껴진다
어느날 갑자기 특정 시점에서부터 우리가 늘상 이용하던 ‘문’이 제 기능을 상실한다
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는 알 수 없고, 그 문 너머에 누가, 어떤 환경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알 수 없다
만일 이 현상이 우리 나라에 한정된 것이었더라면 벌컥 문을 열었다가 ‘아이고, 죄송합니다’ 정도로 끝났겠지만 극적인 표현을 위해 말 그대로 ‘미지’의 수준의 이동수단이 되어버린 문은 온갖 사건사고의 빌미를 제공하기 시작한다
사실상 과할 정도로 높은,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 절반 쯤은 보통의 평범한 인물들이고 나머지 절반은 카르텔이기라도 한 것인가 싶을 극악의 확률이 납득하기 어려운 건 몰입에 다소 방해되는 부분이었다
사춘기 딸을 가진 아버지의 시점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어린 듯한 화자의 서술스타일 역시 방해되는 요소였지 않나 싶다
지금 내가 읽고 있는 기록과 생각들은 분명 40대(일러도 30대 후반)의 것일텐데, 마치 20대 중반을 조금 넘긴 듯한 말투에서 오는 괴리감은 아쉬울 뿐이었다
‘문’이 바뀐 이후 고작 몇시간만에 멸망이라도 온듯 사람들이 마구 죽어나간다는 설정은 아마 단편의 특성상 어쩔 수 없었던 부분인 듯 한데 이렇게 몇몇 단점이 눈에 띔에도 불구하고 글은 브레이크 없이 쭉쭉 달려나가며 마지막 문장까지 신속하게 길을 안내한다
글을 끝까지 읽고 나니 좀 더 세심한 묘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부한 상황이나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는, 우는 것 말고는 하는 게 없어보이는 부인의 캐릭터 등 아쉽게 여겨지는 부분들을 단편이 아니라 장편이라는 툴을 활용해 좀 더 매끄럽게, 그리고 섬세하게 표현해 본다면 좀 더 재미있지 않을까
주인공의 과격한 언행이나 남들에게 이해시키기 어려울 행동들에 조금 더 개연성이 부여된다면 ‘문 뒤의 지옥’에 대한 독자의 공포감도 더 선명해질 수 있을 거라는 예상을 해본다
그나저나, 아직도 맹렬하게 싸우고 있을 ‘나’에게는 유감의 뜻을 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