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하지만 낮에는 여전히 덥기 만한 이런 어중간한 날씨에 생뚱맞게도 크리스마스를 만나게 되었다. 크리스마스를 떠올릴만한 아무것도 없는 이런 날들에 갑자기 뭔 크리스마스타령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날씨와 상관없이 너무 삭막한 삶을 살고 있어서 그런지 따뜻함이 먼저 떠오르는 크리스마스라는 단어를 마주하자마자 그 속으로 뛰어들게 되었다.
확실히 크리스마스는 춥다는 느낌보다는 따뜻함이 앞서 떠오른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에서 이야기되는 크리스마스 역시 따뜻하게만 느껴진다. 은은한 캐럴이 거리 곳곳을 누비고, 저마다 종이봉투며 선물 상자나 꽃다발 같은 것들을 들고 다니는 모습이 그려지는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의 기적>은 꼬박 일 년을 기다려야 누릴 수 있는 따스하고 특별한 하루가 서서히 막을 내리는 바로 그 날의 그 시간에서 시작된다.
내년이면 여섯 살과 열 살이 되는, 네 살 차이의 남매인 연주와 한주는 그리 크지도 그렇다고 그리 작지도 않은 시골 동네에 할머니와 함께 산다. 연주를 낳고 반년이 못되어 세상을 떠난 엄마와 아내를 잃은 슬픔에 자식들은 내버려둔 채 말도 없이 어디론가 떠나버린 아빠로 인해 남매는 할머니와 셋만 남게 되었다. 부모의 빈자리를 할머니가 힘겹게 채우고 있지만, 형편상 연주는 유치원에 가지 못하고, 한주는 다니던 학교도 그만두게 된다. 그럼에도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동생 연주이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안쓰러워하는 오빠 한주이다. 동생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동생이 슬퍼할 일이 더는 없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한주는 동생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소원을 들어주고자 한다.
사실 한주에게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왜, 어떻게 그런 능력이 생겼는지도 모르고, 또 그 속에 어떤 규칙이 있는지 확실하게는 모르지만 나름 경험을 통해서 그 능력을 조금씩 이용하기도 한다. 그나마 한 가지 아는 것이라면 좋은 일이 하나 생기면 한주가 모르는 사이에 또 그만큼의 나쁜 일도 벌어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번에도 좋은 일을 기대하며 그 능력을 이용하기는 했는데…….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해서 그저 한없이 따뜻한 이야기이길 기대하며 읽어 내려갔다. 결과적으로 보면 따뜻하긴 했다. 하지만 그만큼 슬프고, 아프고, 또 안타까우면서도 화가 나는 이야기였다. 자기 아내의 죽음은 그렇게 견디지 못할 만큼 아프고 힘든 사람이 어떻게 자기 자식들은 저렇게 무관심할 수 있을지, 그 아빠란 작자에게 화가 났고, 국가에서 지급하는 연금과 보조금이라는 것이 그저 살아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났으며, 새끼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먹이고 하나라도 더 뭔가를 살 수 있도록 몇 푼이라도 더 벌고자 지치고 힘든 몸으로 일을 나가야만 하는 할머니의 모습에 또 화가 났다. 그리고 이런 상황 속에서 나름의 영악함으로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들의 모습에 화가 나고 또 슬프고 안타까웠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이들은 아이다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너무 어른스럽게 행동하지도 않고 딱 그 나이대로 보이고 행동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어른들은 어른다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모두 똑같이 그럴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기본적으로는 그런 생활 속에서 나름의 일탈을 꿈꾸는 삶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연주와 한주, 그리고 그 아이들의 아빠와 할머니를 통해서 해보게 된다.
진짜 기적이 뭘까? 난 어떤 기적을 바라고 이 글을 읽었을까? 그리고 내가 원했던 기적은 또 뭘까? 생각해보게 된다. 쉽사리 구하지 못하는 답을 대신해 괜히 질문도 던져본다. 당신이 꿈꾸는 기적은 무엇인가?, 하고 말이다. 모두가 저마다 다른 답을 내놓겠지만, 그 내용이야 어쨌든 적어도 그저 한없이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크리스마스’라는 느낌적인 느낌 그대로인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모두가 꿈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