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감생심 공모(비평)

대상작품: 그림자색 마법의 지워지지 않는 이야기 (작가: 박부용 v2, 작품정보)
리뷰어: 윤휘, 1시간 전, 조회 4

※스포일러가 포함된 주관적 감상입니다. 짧은 글은 아니지만 미열람하신 분들은 읽고 오시길 권장합니다.

 

주관적인 별점

스토리 구성: ★★★★☆ (이야기 구성이 매우 치밀하다고 느꼈다.)

인물 매력도: ★★★★☆ (마룬과 니키타의 조합이 너무나도 좋았다. 아래 “주제관련 이야기”에서 설명해놓았다.)

표현 및 묘사: ★★☆☆☆ (정말 좋은 표현들이 간혹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초점화자 설정이 아쉽다.)

진입장벽: ★★★★☆ (시작이 불친절하다. 나는 이런 걸 좋아한다. 진중한 사람들이 좋아할 작품이다.)

 

1. 주제에 대한 이야기

 

 읽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인물은 니키타가 아니라 마룬이었다.

 

마룬은 어린 시절 흑마술을 했다. 그것도 사람의, 그것도 아기의 시신을 가지고서 했다. 어렸다는 사정을 참작한다 하더라도(+그리고 이 세계관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더라도), 시신에 강령술을 걸어 친구들 앞에서 공연을 올렸다는  웬만한 사이코패스가 아니고서야 하기 어려운 일이다. 뭐, 물론  나이에 시신의 무게를 온전히 알기는 어려웠을 테고, 나중에 수습해서 묻어주었으리라는 정황도 나온다.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후의 일이다.

 

그런데  인물은 지금, 왕립법인 인턴을 거쳐 표창을 받고 설계사 자격을 노리는, 그야말로 흠잡을  없는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다. 그리고 세미나 과제로도덕에서 벗어난 마법은 구조적으로 취약하니, 역으로 사회도덕론에 기초한 보강진을 덧대면 불안정한 마법의 완성도를 높일  있으리라”는 연구를 발표했다.

 

그러나 나는 바로 여기서  인물이 무얼 하고 있는지 알아챘다(고 느꼈다).

 

 이건 연구가 아니라 자기 죄를 정당화할 수단을 찾는 작업이었다.

 

물론 작가가 세운 알레고리 자체는 조금 빈약하다고 느꼈다. 주문은 언명이고,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렇다면 사회의 약속을 벗어난 독단적인 언어가 효능이 없는 것처럼, 마법도 정해진 마법진의 규칙을 벗어난 형태라면 발현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이어졌어야 앞뒤가 맞다. 약속의 문제와 도덕의 문제는 다른 층위인데, 여기에 도덕이 끼어드는  솔직히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나는  어긋난 알레고리 덕분에 오히려 마룬이라는 인물이 선명해졌다고 생각한다. 규칙의 문제여야  자리에 굳이 도덕을 밀어넣었다는  자체가, 그가 필요로  것이 규칙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에 의한, 도덕적 정당화에 의한 면죄였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의 주장은 이렇게 읽힌다. 

 

“내가 저지른 그 일에는 도덕적인 인정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범죄자가 자기 범죄를 범죄가 아니게 만들어  사회적 합의를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놓고 보면, 회식 자리에서 니키타가 던진 반박이  그를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는지도 설명이 된다. 니키타는 아직 마룬의 과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마법이 불안정한 것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발화자 개인의 심리적 압박 때문일  있다고 말했다. 마룬에게  말은 이렇게 들렸을 것이다. 

 

“도덕 같은 걸 끌어들이지 마라. 그건 그냥 네 탓이 맞는다.”라고.

 

 그가 십수 년간 지어 올린 도피처를 정확히  문장으로 허문 것이다.

 

그러니 테라스에서 마룬이 니키타를 밀어낸 것은, 단순히 고백이 부담스러워서가 아니었다고 본다. 그는 니키타가 자기와 완전히 다른 결의 사람이라는  알아차렸고, 그래서 위험을 감지한 것이다. 니키타는 자기가 유별나다는  알면서도 감추지 않는 사람이고, 마룬은 감추는  인생을  사람이다.  둘은 애초에 같은 편이   없다.

 

언감생심(焉敢生心). 어찌 감히 그런 마음을 먹겠는가. 나는  작품의 주제를   글자로 적어두고 싶다. 감히 넘볼  없는 것을 넘본 사람의 이야기라는 뜻에서다. 마룬은   그랬다.  번은 시신을 소품으로 삼았을 때,   번은  일을 학문의 언어로 씻어보려 했을 때.

 

덧붙여 이건 순전히  욕심인데,  가지 아쉬운 가정을 해보게 된다. 마룬이 가지고 놀았던 시신이 만약 분홍 꽃핀의 아기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니키타는 오히려  사실을 빌미로, 같은 금단에 발을 들인 자들 사이의 공범 의식 같은 것을 품고 마룬에게  깊이 집착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작품에는 그럴 만한 토대가 이미 깔려 있다. 니키타 역시 고발 대상인 강령술에 손을  사람이고, 그래서 마룬을 고발할  없는 위치에 있으니까.

 

그러니  시점에서는 꽃핀의 진실을 빠르게 풀지 않고, 그저 선배가 남의 시신으로 놀았다는 사실만을   니키타의 집착이 깊어지는 이야기가 펼쳐졌다면, 심리 서스펜스로서 훨씬 조여들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분홍 꽃핀은 한참  다른 사건으로 밝혀져서, 결국  사람이 대척점에 서게 되는 것으로 말이다. 뭐, 이건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바람이고, 작가의 설계는 다를  있겠다.

 

 

 

2. 좋았던 점에 대한 이야기

 

 구조가 정말  짜였다.  작품은  다섯 문단이 클라이맥스 직전 장면을 미리 떼어다 붙인 것인데,  이음매를  저편에서 들리는 생쥐 울음소리라는 아주 작은 소품 하나로 처리한다. 이런 방식은 생각보다 위험하다. 시작을 결말 근처에서 가져오면 독자는 같은 장면을   읽게 되는데, 이음매가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그저 반복으로만 느껴지고 처음의 긴장은 오히려 낭비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가는  생쥐를 나중에 마지막 산제물로 써버린다. 덕분에 도입부를 다시 펼쳐보면 같은 문장이 전혀 다르게 읽힌다. (첫 문단의 “정말 그래서라고 믿었다”부터가 이미 자백이었다는  뒤늦게 알게 된다.)

 

 문장 하나로 인물을 규정해버리는 대목들이 좋았다. 특히  군데를 꼽고 싶다. 하나 마룬을 두고 “주변 사람들의 빛을 반사하는 사람 같았다”고  표현이다. 인물을  문장으로 붙잡는 비유는 대개 과하거나 밋밋해지기 쉬운데,  문장은 그가 스스로 빛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까지 함께 말해버린다. 결말을 알고 다시 보면  그렇다. 다른 하나 위치토가 낡은 앨범을 넘기면서 “‘헤’와 ‘히’ 사이 어중간한 소리를 냈다”고 적은 대목인데, 실제로  장면에서 사람이 내는 소리는 정확히  소리다. 소리를 표기로 잡아내려면  소리를 여러  들어봤어야 한다. 아주 탁월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극중극의 처리가 영리했다. 후반부에 복원되는 동물 소동극은  자체로  쓰인 익살극(특히 생쥐들끼리 덫을 놓고 이런 저런 일을 벌이는 극)이라, 읽는 동안 실제로 웃게 된다. 작가는  극의 성격을 열한 살이 좋아하고 열일곱이 한심해하고 스물셋이 귀여워할 유머라고 규정해두는데, 정말 찰떡 같은 표현이다. 그리고 바로  웃음이 소품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통째로 뒤집힌다.  뒤집기가 성립하려면 독자에게서 웃음을 먼저 받아내야 한다. 앞의 극이 재미없었다면 뒤의 소름도 없었을 것이다.

 

 악역이 없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위치토는 대회에서 흑마술을 빼자고 주장하는, 말하자면 포장을 택하는 인물이지만 결코 나쁜 사람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마룬을 따라가라며 자리를 양보하고, 앓아 누운 친구에게 빵을 사다 주고, 하려던 말을 끝내 삼킨다. 삼각 구도를 악의 없이 굴리는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3. 아쉬웠던 점에 대한 이야기

 

 결정적인 장면에서 여백을 아꼈다. 개인적으로는 이게 두 번째로 아쉽다. 고양이를 쫓아 정신없이 뛰던 니키타가 공터에 도착해 마룬과 마주치는 대목은  작품의  번째 전환점인데, 앞의 서술과 같은 호흡으로 그냥 이어져 버린다. 여기서 줄을 바꾸거나    띄우고 그곳에 마룬이 있었다고 제시했더라면, 초점이  모이면서 긴장감이 훨씬 커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술자가 직접 개입하는 대목이 잦다. 이게 가장 아쉽달까. 아니, 이게 가장 내 취향이 아니라고 말해야 맞는다. 이를테면 마룬의 태도를 두고 “짓궂은 짓이라기보다는,  자리에서 만나 기쁜 듯한 모습”이라고 적는 식인데, 이건 니키타가 관찰한 것이라기보다 서술자가 정리해준 것에 가깝다. 이런 개입을 줄이고 니키타  사람만을 초점화자로 삼아 철저히 1인칭으로 밀고 나갔더라면, 굉장히 재미있는 심리 서스펜스가 되었을  같다. 독자가 마룬의 속을 끝까지 모른  니키타의 짐작만 따라가야 하는 구조가 되었을 테니 말이다.

 

  구분이 하나  있었으면 싶은 자리가 있다. 회상을 빠져나와 “대화가  끊어진  한참을  있는다.”로 돌아오는 대목인데, 여기에 구분을 두었거나 최소한  줄이라도  띄워주었다면 훨씬 확실하게 나뉘어 읽기 좋았을 것이다.  작품은 현재형을 본줄기로, 과거형을 회상으로 쓰는 원칙이 아주 일관되게 지켜지고 있어서 대체로 길을 잃지 않는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자리가 눈에 걸린다.

 

 묘사, 특히 의상 묘사가 지나치게 많다. 이게 전부 낭비라는  아니다. 위치토가 니키타의 집에 찾아왔을 때의 차림새가 뒤에 카페 장면에서 그대로 반복되면서, 독자가 니키타와 정확히 같은 순간에  약속의 정체를 깨닫게 되는 대목은 좋았다. 문제는 그렇게 기능하는 자리가 두어 군데뿐인데, 거의 모든 등장 장면마다 상의와 하의와 액세서리와 색감이 카탈로그처럼 붙는다는 것이다. 물론 애니메이션처럼 독자들의 머릿속에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세밀하게 보여주려 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의도적으로 의상에 대해서 전부 세세하게 짚어줌으로써, 위치토의 데이트 의상이 데이트 의상이었는지 모르게끔 지나가게 만들고자 한 의도였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본다. 그러나 플롯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 인물들까지 전신이 서술되고 나면, 정작 공들여 쌓아둔 복선들이  사이에 묻히기 쉽다.

 

 마지막 매듭이 말해주기로 처리된 점도 아쉽다. 앞에서는 그렇게 보여주기를 잘해놓고, 정작 진실이 드러나는 대목에서는 서술자가 나서서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하나하나 짚어준다. 게다가 니키타와  아기의 관계는 끝내 명시되지 않고 앨범의 여백과 꽃핀  쌍으로만 남는다. 가장 중요한 정보가 가장 흐릿하게 처리된 셈이라, 배분이 마지막에 역전된 느낌을 받았다. 물론 열린 결말로 둘 수도 있겠지만,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드러나 있지 않은 점이 “단편”임을 고려할 때는 개운치 않은 맛이 있는 건 사실이다.

 

 

4. 제목에 대한 이야기

 

「그림자색 마법의 지워지지 않는 이야기」

 

개인적으로는 제목 치고 길다 싶었는데(웬만한 작품들이 전부 긴 편이지만, 나는 설명이 긴 제목의 작품들을 딱히 선호하지는 않는다), 읽고 나니  길이가 전부 필요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문자 그대로다.  작품에서 흑마술의 흔적을 지우는 주문은 여러  나오고, 실제로  지워진다. 그런데  하나 지워지지 않은 것이 있다. 아이들이  연극에 열광하면서 자기들 마법을 아낌없이 보탰기 때문에, 흔적이 마룬 혼자서는 손쓸  없을 만큼 진하게 응고해버린 것이다. 즐거움이 클수록 지워지지 않는다는 설정인데,  작품의 내용을 생각하면  잔인한 규칙이다.

 

그다음은 그림자다. 마지막 극은 실제로  뒤에 그림자를 세워 상연하는 그림자극이다. 아기도  뒤에 있었다. 그러니 그림자색 마법의 이야기란  연극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아마 작가는 이 극을 클라이막스로 생각하고 있기에, 이 제목이 붙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워지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마룬은 어찌 보면, 평생을 지우면서 살아온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지운 자리 위에 엘리트 코스를 세웠다. 그런데 흔적은 지워도 죄는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마룬의 지워지지 않는 죄와의 대척점을 그린 표현이 극치라고 생각한다. 마룬과는 정반대로 니키타 쪽에는 앨범의새하얀” 여백이 있다. 누군가 사진을 지웠는데도, 지워졌다는 사실 자체가 상실로 남았다. 한쪽은 지우려 했으나 남았고, 다른 쪽은 지워졌는데도 남았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남았던 건,  제목이 조에의 대사와 이어진다는 점이었다. 조에는 무서운 이야기가 실은 진짜라고 생각하면 속이 울렁거린다고, 자기는 조마조마하게  짜인 연극을 보고 싶은 것이지 실제로 누군가 고통받았다면 싫다고 말한다. 나는  대사가  작품의 주제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에의 입장에서 언감생심이라고 말할 것만 같다고 본다. 지어낸 이야기는 지울  있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은 지워지지 않는다. 마룬이 만든 것은 훌륭한 이야기였고, 동시에 지워지지 않는 이야기였다.

 

 

5. 기타 개인적인 이야기

 

 번째로 써보는 리뷰입니다. 지난번에는 짧은 글을 골랐는데 이번에는 어쩌다 보니 꼬박  시간을 들여 아주 깊이 읽게 되었습니다.  읽고 나서도 한참 마룬이라는 인물을 곱씹었는데, 그렇게 사람을 붙잡아두는 인물을 만들어내셨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작품이  쓰인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짜인 구조에 비해 묘사에서 아쉬운 대목이 종종 보였다는 점은 앞에 적은 그대로입니다만, 그건 주관적인 문제이니까요. 부족한 리뷰는 이만 줄이겠습니다. 감사히  읽었습니다.

 

*”석양빛이 비스듬이 쬐며” 부분의 ‘비스듬이’는 표준국어대사전을 기준으로 하면 ‘비스듬히’로 고치셔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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