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옛말의 AI 버전. 공모(비평)

대상작품: 찬물에 씻은 문장 (작가: 아침은삼겹살, 작품정보)
리뷰어: 윤휘, 1시간 전, 조회 7

※스포일러가 포함된 주관적 비평입니다. 미열람하신 분들은 짧은 글이니, 읽고 오시길 권장합니다.

 

 

1. 주제에 대한 이야기

 

 

나는 이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은 “현우” 또는 “AI”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실제로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초점화자로 등장하는 “세온”은 사실상 이 이야기에서 물주 역할 말고는 별다른 걸 한 게 없었다. 뭐, 물론 “이상한 것들”을 알아보긴 했지만 딱히 엄청난 도움을 줬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런 세온의 관찰로 현우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가 묘사되는데, 실패에 대한 현우의 반응이 가장 중요한 대목으로 보인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옛말이 있다. 나는 이 작품의 주제를 이렇게 써놓고 싶다. 물론 이 말은, 실패에 그저 좌절할 게 아니라는 말이거나, 성공으로 가는 여러 시행착오로 받아들이라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 허나 이 작품과 관련해서는 전혀 다른 의미다. 오로지 실패가 성공을 낳았다는, 글자 그대로의 뜻이다. 사실 이 작품의 두 인물 모두, 실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도전한다는 느낌을 주는 인물이 아니었다. 문과 출신인 세온은 “왜 이런 대회가 열렸는가”를 아주 잠깐 궁금해했을 뿐 어느 것도 시도한 적도 없으며, 오히려 거듭되는 실패에 구독료가 아깝다면서 얼른 그만두기를 바랐을 뿐이다. 현우도 상금에 눈이 멀어 포기하지 않았을 뿐, 실패를 성공의 발판으로 삼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인 것도 아니었다.

 

 

뭐, 물론 “상금이라는 목표”를 향해 끈기 있게 도전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고 보긴 어렵고, 차라리 대회에서 입상하지 못했다는 커다란 실패가 있었다면 모를까 그런 과정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직 현우의 무의식적인 시도가 우연히 성공으로 이어졌을 뿐이었다. 작은 실패들을 실패로 의식은 했다손 치더라도, 그 실패 사례들이 성공으로 이어진 건 우연의 덕이 컸다고 본다. 그러니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긴 한데, 우연찮게 성공을 잉태했음을 의미한다고 해야 할까. 커다란 줄기만 간추리자면 그런 이야기인 것 같다.

 

 

 

2. 좋았던 점에 대한 이야기

 

 

① 문체가 짧고 간결하다. 일상적인 표현들이 많아서 술술 넘어갔다. 또, 컵라면과 케이블 타이에 대한 묘사가 특히나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수천 년 뒤에는 컴퓨터 부품이 제사 용품으로 오해받을 것 같다는 표현은 정말 찰떡이었다고 짚고 싶다.

 

 

② 실제 있었던 일에 대해서, 정보를 설명하려들지 않고 두 인물의 티키타카로 유연하게 넘긴다. 물론 나는 이 글을 읽고 따로 베수비우스 챌린지를 따로 찾아보기도 했지만, 굳이 안 찾아보더라도 이해하는 데에 막힘이 없었다. 본래 사람이 자신이 아는 바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놓을 때에는, 찰떡 같은 비유를 쓰거나 아주 쉽게 얘기해주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두 가지 모두 깊이 이해하고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작가는 이 소재나 코딩 쪽에 기본적인 이해도가 충분한 듯하고, 필요한 부분에 무게를 주어서 잘 풀어냈다고 생각한다.(예컨대, CNN같은 용어들은 그저 스쳐 지나가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③ 오답을 모으면 정답으로 가는 게 아니라 그저 오답에 익숙해진다는 주인공의 말을, 따로 설명해주는 바 없이 실패 폴더에서 답을 찾아냈다는 사건으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서술되었다. 직접 말해주면 독자의 생각을 똑바로 정해줄 수는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보여주기 방식이 훨씬 성숙한 처리법이라고 느껴진다.

 

 

 

3. 아쉬웠던 점에 대한 이야기

 

 

① 일상에 대한 표현이 많은데, 굳이 필요한 정보들이 아닌 서술이 꽤나 많았다. 정수리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표현이나, 롤 승급전에서 계속 패배하고 있는 듯한 장면은 20대 초반 동갑내기 친구의 시선을 그대로 담은 표현들이겠지만 작품 전체의 진행과는 크게 관련이 없었다. 모든 문장이 작중 사건의 진행과 관련이 있어야만 한다는 건 결코 아니나, 적어도 단편에서는 글자 수가 아껴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② 주인공의 역할이나 주인공이 던진 의문이 매우 제한적이라고 느껴졌다. 대회를 왜 공개로 돌렸는지 막판에라도 언급될까 기대했던 나로서는,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다. 또, 이과와 대비해서 문과 캐릭터를 등장시켰다고는 하나, 이과 학생에 비해서 문과 계열이 살아있는 캐릭터로 느껴지진 않았다. 문과적인 특성을 배가하거나, 주인공의 의문점에 대해 더 이야기가 추가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4. 제목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

 

 

찬물에 씻은 문장. 그 뜻이 무얼까를 두고 십여 분 정도를 곰곰이 생각해보고 든 생각은, “찬물이 끼얹어져 김이 팍 새어버린 문장”이었다. 실제로 찬물에 벅벅 씻은 냉국수를 가리키는 문장이기도 할 테고, 찬물로 샤워를 하다가 뛰쳐나온 현우가 보게 된 문장이 될 수도 있겠지만, 작가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찬물”의 느낌은 ‘대단한 게 아니었다’고 얘기해주고 싶었다는 생각이 든다.(물론 아님 말고!) 의도와 다르다곤 하더라도, 독자가 여러 층위로 의미를 생각해볼 기회를 줬다는 점에서는 제목을 매우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5. 기타 개인적인 이야기

 

 

처음 리뷰를 써보는, 첫 작품으로 이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짧은 글에 대한 리뷰부터 시작해보려고 했는데, 마침 이 글이 눈에 띄었습니다. AI도 등장하고, 실제 사건도 등장하는 작품인 줄 모르고 읽었다가, 구렁이 담 넘듯 술술 읽히는 글을 만나게 될 줄이야. 부족한 리뷰는 이만 줄이고,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6장에 “비스듬이”는 표준국어대사전을 기준으로 하면 “비스듬히”로 고치셔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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