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 300매에 달하는 중편의 서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집필하고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을 완성해 내는 작업이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작품에 쏟으신 작가님의 막대한 시간과 치열한 고민이 글 곳곳에서 묵직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처럼 스케일이 큰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고해 내신 그 무수한 노고에 먼저 깊은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작품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과연 어떤 이야기부터 건네야 할지 고민이 참 많았습니다. 전체적인 구상과 스케일에 비해 서사적 설명이 다소 아껴져 있어, 독자 입장에서는 이야기의 본줄기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혼란과 의문이 남는 글이었기 때문입니다.
보통 이처럼 독특하고 난해한 세계관을 가진 작품에 소감을 남길 때면 고민이 깊어지곤 합니다. 작가님이 머릿속에 구축해 둔 구체적인 세계관과 독자가 글만을 통해 재구성하는 세계관 사이의 간극이 커서, 자칫 서로에게 아쉬움만 남기는 피드백이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가는 이유는, 이 작품이 가진 가능성에 작은 보탬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입니다. 어디까지나 한 독자의 시선에서 본 개인적인 의견일 뿐 작품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으므로, 다음 단계를 향한 따뜻한 조언으로 너그럽게 받아들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작가님이 던지고자 했던 핵심적인 주제의식이 무엇인지는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 전체 내용을 담아내는 과정에서 중간중간 설정상의 오차나 설명의 부족함이 눈에 띄어 아쉬움이 남습니다. 흐름이 끊길 때마다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몇 번이고 이전 페이지로 돌아가 복기해야 했고, 이는 단순히 글이 어렵다는 느낌을 넘어 설명의 친절함이 조금 더 보완되면 좋겠다는 안타까움으로 이어졌습니다.
작품 속에서 발견된 여러 설정상의 아쉬움 중, 서사의 개연성을 위해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핵심 요소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시간여행 및 세계관 설정의 개연성 문제입니다. 2100년대에서 2200년대 사이에 존재하는 ‘낙원’이라는 시공간이 미래 시점에 아무런 인과적 영향을 미치지 않고 끊길 수 있는지 의문이 남습니다. 최근의 현대 SF 매체에서는 과거를 수정하더라도 기존 시간축과 분리되어 영향을 주지 않는 ‘멀티버스’ 개념을 보편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반면 본 작품은 단일한 시간축 안에서 과거를 수정하는 ‘싱글버스’ 구조를 채택하고 있어 인물의 이동에 따라 시간이 복잡하게 꼬이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선의 교란이나 인과율의 변화에 대해 명확한 개연성을 제시하지 않아 세계관의 규칙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둘째, 주인공 ‘이래’의 행동 동기와 설득력 부족입니다. 이래는 2100년으로 이동하기 위해 억지로 살인을 저지르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미 스스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물이 굳이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선택해야만 했던 당위성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더욱이 후반부에서 재율의 탄생을 막기 위해 그녀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인물을 해치는 대목은, 신념에 찬 행동이라기보다는 살인 자체에 무감각하거나 이를 즐기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무분별하고 어설프게 다루어집니다. 결국 그 시도마저 실패로 끝나면서 인물이 가진 도의적 명분과 행동의 설득력이 크게 반감되었습니다. 셋째, 시대적 기술력과 문화적 격차 표현의 오류입니다. 2100년대부터 2200년대라는 시공간에 수천 년의 시차를 두고 다양한 시대의 범죄자들이 모인다는 설정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문화의 흐름과 기술 수준은 불과 몇 년 단위로도 급격하게 변하는 법인데, 수천 년의 격차를 가진 인물들 사이에서 언어와 의사소통이 아무런 문제 없이 이루어진다는 점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또한 수백 년 뒤의 미래에서 온 이래가 사용하는 단말기 등의 과학기술 장비가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비해 터무니없이 원시적인 형태로 묘사되는 부분 역시 세계관의 몰입을 방해하는 아쉬운 요소였습니다.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의식인 ‘낙원에 가야 하는 자를 과연 누구 판단하고 정의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상당히 모호한 대목들이 자주 눈에 띕니다. 이 중요한 화두가 서사 속에서 충분히 파고들어지지 못한 채 겉도는 느낌을 줍니다. 대표적으로 이래가 낙원 폐지를 주장하며 인터뷰를 진행하는 장면에서 펼치는 논리가 깊이 있는 철학적 담론이라기보다는 다소 신변잡기적인 이야기에 그쳐, 주제의식의 본질에 깊게 다가가지 못합니다.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하나의 요소로는 이해할 수 있겠지만, 작품이 지향해야 할 묵직한 주제를 전달하는 대목으로서는 안타까움이 남습니다. 담벼락을 넘는 방법을 검색하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독자로서 다소 어이없는 실소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담을 넘는 행위는 정보 검색을 통해 배우는 지식이라기보다 지극히 기초적인 신체 운동 능력에 가깝습니다. 만약 담 넘는 법까지 검색해서 알아내야 할 정도라면, 걷기나 달리기 같은 본능적인 신체 활동조차 일일이 검색을 통해 배워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어색한 의문이 뒤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글의 주제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오류가 존재하는데, 재율이 낙원을 창조하게 된 근본적인 계기는 바로 자신의 딸이 맞이한 죽음입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기술력에 싱글버스 개념이 전제되어 있다면, 굳이 막대한 리소스를 들여 낙원을 창조하기보다는 차라리 과거로 돌아가 딸을 살려낸 뒤 미래로 돌아오는 편이 서사적으로나 목적상으로나 훨씬 직관적이고 효율적입니다. 즉, 낙원이 굳이 창조되어야만 하는 당위성이 성립하지 않는 것입니다.
원고지 300매라는 결코 만만치 않은 분량을 완주하시며 작품의 공간과 인물들을 창조해내신 작가님의 열정과 고생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작품을 구상하고 문장 하나하나를 쌓아 올리는 과정 자체가 얼마나 고되고 외로운 작업인지 잘 알기에, 이 글을 완성해 내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결실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작업을 발판 삼아 앞으로 더 멋진 작품을 보여주실 작가님의 다음 행보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