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이며 사소한, 힐링 판타지 감상

대상작품: 발명가 이야기 (작가: 지이음, 작품정보)
리뷰어: 노르바, 1시간 전, 조회 10

어느 여름날, 뙤약볕 아래 쪼그려 앉아 식은땀을 흘리던 ‘나’에게 한 사람이 다가와 우산을 펼친다. 그런데 그 우산 속에서는 비가 내린다. 뜨거운 볕을 가려주는 대신 미지근한 비를 뿌려주는, 이상하고도 다정한 첫 만남(물론 집에 도착할때쯤엔 우산 속에서 폭풍우가 쏟아지지만 ㅎ).

이 장면 하나로 이 소설이 어떤 이야기인지를 정확히 보여준다. 논리적으로는 말이 안 되지만, 그 순간 필요했던 것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이상한 다정함 말이다.

 

이 소설은 표면적으로는 쓸모없는 물건을 만드는 정체불명의 ‘발명가’와, 정신 차리고 보니 어쩌다 그의 조수가 되어버린 ‘나’의 이야기다.

발명가가 만드는 것들은 하나같이 기능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괴상하다. 펼치면 비가 쏟아지는 우산, 아무리 써도 물들지 않는 공책, 해가 지면 저 혼자 꺼져버리는 스탠드. 쓸모를 따지고 보면 전부 낙제점이지만, 이상하게도 그 물건들은 ‘나’의 삶에 스며들어 조용히 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이 소설의 진짜 이야기는 그 아래에 있다. 몇 달을 뭘 먹기도 싫고 뭘 하기도 싫은 채로, 시간이 흐르는지 멈췄는지도 모르고 누워만 있던 사람이, 폐품을 주우러 동네를 걷고, 낯선 판매자들과 짧은 인사를 나누고,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조금씩 바깥세상과 다시 이어지는 과정.

소설은 이 회복을 단 한 번도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 ‘나는 이제 좀 나아진 것 같다’ 같은 문장은 어디에도 없다. 대신 그저 행동들만이 있을 뿐이다. 중고거래 어플을 뒤적이고, 장바구니를 끌고 흉물스러운 기타를 담아 오고, 자전거를 타고 아파트 단지를 도는 일들. 그 일상적인 나열 속에서 독자는 어느새 ‘나’가 조금씩 걷고, 말하고, 웃고 있다는 걸 눈치채게 된다.

 

이 발명가라는 인물이 특히 좋았던 건, 그의 선의가 늘 어딘가 어긋나 있다는 점이다. 뜨거운 볕을 가려준답시고 비를 퍼붓고, 늦게까지 깨어있지 말라며 멋대로 꺼지는 스탠드를 안겨준다. 도와주겠다는 마음은 분명한데 방법이 항상 조금씩 빗나가 있다. 그런데도 그 서투른 선의는 이상하게 계속 ‘나’에게 가닿는다. 오히려, 명확하게 ‘도와주겠다’ 라는 의도가 없기 때문에 받는 쪽도 부담이 없이 점차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젖어든다.

상대방도 나도 의도한 것 같지 않은데 자꾸만 접점이 생기고, 그 접점들이 쌓여 어느새 관계가 되어버리는 이야기. 그렇다, 이게 내가 원하는 이야기다. 내가 썼나 싶을 정도로 내 취향인 이야기였다. 쓸모를 따지지 않고 그저 존재 자체로 곁에 있어주는 것, 이 소설이 말하고 싶은 것도 결국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발명가가 신인지, 악마인지, 마법사인지, 천사인지, 아니면 그냥 정말로 이상한 발명가일 뿐인지는 끝까지 알 수 없다. 우산을 타고 둥실 떠오르는 낯선 이, 자전거에 저절로 붙는 오르골, 충전할 필요가 없는 스탠드. 이런 이상한 부분들이 곳곳에 있지만 소설은 그 정체를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그리고 그 ‘무신경하고 무심한 다정함’이 오히려 이 이야기를 더 좋게 만든다. 정체를 알아내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그가 내민 손을 잡고 일어난 ‘나’가 이제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니까. 비를 맞으며 서 있던 낯선 사람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끝내 그 우산을 건네고 돌아서는 ‘나’의 모습에서, 독자는 이 소설이 그리려던 회복의 진짜 모양을 본다.

 

이 소설은 크고 극적인 사건 없이, 아주 작고 사적인 온도로 흘러가는 이야기이다. 무기력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거창한 사건을 통한 각성이나 눈물의 다짐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의 사소한 성가심을 통해, 아주 티나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채워나간다는 점이 이 소설의 가장 큰 힐링 포인트다. 장마가 끝나기를 바라며 우산을 접는 대신 꽃잎 속을 걸어가는 마지막 장면처럼, 이 이야기는 비를 그치게 하기보다 비 속에서도 걸어갈 수 있게 만드는 이야기다.

선의는 있지만 논리는 어긋나 있는, 쓸모는 없지만 존재만으로 충분한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의 다정한 이상함에 분명 마음을 뺏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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