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지난밤이 궁금해”
지난밤 정도가 아니라, 어제 하루 치 기억이 날아갑니다. 자고 일어나면, 또 마지막 각성으로부터 하루 동안의 기억이 없죠. ‘아, 내 머리가 뭔가 큰일이 났구나!’ 하고 병원을 가 보니, 내가 어제 이미, 완전히 똑같은 이유로 찾아왔답니다. 오늘의 나도 미치고 팔짝 뛸 상황입니다만, 도통 기억나지 않는 어제의 나도 돌아버릴 노릇일 겁니다. 나도, ‘나’도 난감한 마당에 서로의 성격도 완전히 같으니 ‘어쩔 수 없군, 이번만 임시 동맹이다’ 같은 식으로 협력하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 나라고 믿었던 ‘나’는, 동맹은 커녕 나 몰래 수상한 일을 꾸미는 것 같은데……
작품에서 처음 접하는 두려움은 ‘기억이 없다’는 두려움입니다. 하지만 곧 그게 단순히 ‘기억이 안 난다’ 정도로는 끝나지 않는 일이었기에, 두려움이 막막함과 의혹을 먹으며 조용한 공포와 분노로 자라나는 과정이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너의 이름은’이나 ‘일주일간 친구’ 같은 작품들이 떠오르기는 하지만, 명백하게 다른 인격들이 서로를 이해하거나 그냥 기억을 잃을 뿐인 작품들과는 다르게,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또다른 나’를 속이기에 바쁜 모습이 대단히 인상적이었고, 당사자들이야 골치가 아팠겠지만 매우 재미있었습니다. 머리가 좋은 주인공이라 그런지 감탄이 나오는 방법들을 쓰기도 했고요.
읽다 보면 결말 부분에서, 주인공은 박사가 ‘저쪽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당신이다, 처음부터 한 사람이었다’고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처음에는 왜 여기에서 충격을 받는지 이해가 잘 안 됐습니다. 이미 동일 인물이 기억이 나뉘어버렸을 뿐이고, 그러니 생각하는 것도 똑같은데 왜 여기서 충격을 받을까 하고요. 하지만 그러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살펴봤을 때, 피자에서 페퍼로니만 골라 먹은 ‘나’의 사과를 보고 납득이 갔습니다. ‘우리’는 애써 각자를 지칭할 명칭을 만들지 않았고, 있었던 일을 목록처럼 적으며 발버둥치려 했지만… 어쩌면 여기서부터 어긋난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요. 과연 만일 ‘우리’가 기억이 없는 서로를 ‘나’로 받아들였다면, ‘우리’가 아니라 그저 ‘기억을 못하는 나’였더라면 이야기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바로 그게 주인공이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체념하듯 깨달은 사실이었을까요.
“내가 모르는 곳에서 일을 벌이는 ‘나’와의 스릴러”라는 이야기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꿀꺽 삼키고 나면 인격의 경계를 기억으로 나눌 수 있는지와 같은 곱씹어 볼 만한 문제까지 입안에 남아서, 중단편인데도 여운이 길게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