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Dark Soul 공모(감상)

대상작품: 카밀라의 아들 (작가: 벽라, 작품정보)
리뷰어: 슬픈거북이, 4시간 전, 조회 28

0.

프롬소프트웨어의 다크소울을 아십니까?

 

흔히 소울류라는 이름으로 하드한 난이도를 자랑하는 액션 RPG 시리즈입니다.

매력적인 세계관과 화려한 액션으로 이름 높은 반면,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시스템과 스토리를 특징으로 보이는 게임입니다.
매니악하기 그지없는 게임이지만, 어마무시한 판매량과 인기는 그만큼 엄청난 매력이 있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난데없이 웬 게임이냐고요?

저한테는 이 작가님의 소설이 그렇거든요.

프롬소프트의 게임들과 벽라 작가님 간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난이도가 정말 높은데, 또 깨는 게 아주 불가능은 아니다. (태그에 힌트를 달아놓더라고요… ㅂㅌㄱㅌㄴ)

후……

게임을 하는 건지 고난을 수행하는 건지.
아주 들여다보기도 싫다고 생각하면서도, 기어이 한 번쯤 열어보게 만드는 마성이 있습니다.

 

1.

소설을 읽어보았습니다.

음. 느낌 좋고, 데미안의 오마주인 것은 알겠어.

자조적인 웃음이 나옵니다. 싱클레어를 향한 M의 이야기.

“난 데미안은 아니지만.”

응, 그래. 데미안은 아니지만 아마도 화자의 무의식이겠지.

책을 쭉 읽었습니다. M과 화자에게 제가 물어봅니다.

“넌 무얼 말하고 싶은 거지?”

그러나 둘은 대답하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대답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제가 그 언어를 알아듣지 못했을 뿐입니다.

피, 거울, 어머니, 아버지, 괴물, 팔루스.
상징은 계속해서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상징들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좀처럼 설명되지 않습니다.

데미안을 읽은 독자라면 M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대강 짐작할 수 있습니다. 화자를 익숙한 세계 밖으로 이끌고, 감추어진 자기 자신과 대면하게 만드는 안내자일 것입니다.

문제는 제목입니다.

『카밀라의 아들』.

 

저는 카밀라를 모릅니다… (난 무식해…)

카밀라가 여성 흡혈귀라는 사실도, 원작에서 젊은 여성의 피를 빨고 끝내 말뚝과 참수와 화형으로 죽는 인물이라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그러니 어머니의 죽음도, 화자의 피에 대한 집착도, 괴물이 될지 모른다는 공포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팔루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들어…)
그것이 단순히 남성의 성기를 가리키는 동시에, 남성성과 아버지의 흔적까지 끌어오는 표현이라는 사실을 모르면, 화자가 왜 어머니에게서 거부당했는지조차 아리송해집니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독자에게 열쇠를 주지 않은 채 잠긴 문 앞에 세워놓습니다.

데미안은 열쇠 하나였습니다.
카밀라는 또 다른 열쇠였습니다.
팔루스는 그 문 안쪽에 숨어 있던 세 번째 열쇠였습니다.

저는 처음 두 번쯤 그 문을 두드리다가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결국 검색창을 열었습니다.

“젠장. 모르겠으니! 공략집 내놔—!!!”

2.
『카밀라』는 1872년 발표된 셰리던 르 파뉴의 고딕 흡혈귀 소설입니다.
카밀라는 아름다운 젊은 여성의 모습으로 소녀 로라에게 접근해 친밀한 관계를 맺고, 밤마다 피를 빨아 로라를 쇠약하게 만듭니다. 이후 카밀라가 오래전에 죽은 카른슈타인 백작부인 미르칼라의 흡혈귀라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결말에서 사람들은 카밀라의 무덤을 찾아 심장에 말뚝을 박고, 목을 자른 뒤 시신을 불태워 완전히 소멸시킵니다.

따라서 『카밀라의 아들』이라는 제목은 원작에 없는 아들을 새로 설정해, 카밀라의 흡혈귀 혈통을 물려받은 아이를 상상한 것입니다.

흠.

화자는 아버지의 피가 자신을 언젠가 괴물로 만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카밀라를 흡혈귀로 만든 존재가 아니었을까요?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독자의 해석이며 상상의 영역입니다. 저는 작품에 나타난 ‘부친의 피’를 두고 몇 가지 잠정적인 추측을 내려보았습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극단적으로 증오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합의된 사랑이 아니었을 가능성도 떠올랐습니다.
강간 피해자에게서 태어난 아들일 수도 있고, 문자 그대로 괴물의 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파괴된 가정 안에서 부모의 증오와 폭력을 대물림받은 아이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 가능성을 떠올려보았습니다. 결국 뾰족한 답은 없었지만요.

 

3.

데미안 쪽은 비교적 좀 쉬운편입니다. 워낙 유명하니까요.

데미안은 헤르만 헤세의 성장소설로,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가 선과 악으로 나뉜 세계관에서 벗어나 자기 안의 본성을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싱클레어는 어린 시절부터 밝고 안전한 가정의 세계와, 죄와 욕망이 존재하는 어두운 세계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그때 신비로운 소년 데미안을 만나 기존의 도덕과 종교를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정답을 주기보다,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도록 이끄는 안내자에 가깝습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아브락사스 역시 선과 악을 함께 품은 존재로, 인간이 한쪽만 억누르지 말고 자기 전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상징입니다.
결국 데미안은 한 소년이 타인의 기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다룬 소설입니다.

훗. 초등… 5학년때 옆자리 짝궁이 이 책을 빌려준 기억이 나는군요.
하. 그냥 얘랑 사귈 걸… 아 아쉽… 아닙니다.

흠흠. 아무튼 데미안에는 데미안뿐 아니라 에바 부인도 등장합니다.

에바 부인은 데미안의 어머니이자, 싱클레어가 오랫동안 꿈속에서 찾아 헤매던 이상적인 존재입니다. 어머니 같기도 하고 연인 같기도 하며, 싱클레어가 도달하고 싶어 했던 완전한 자아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다만 데미안과 에바 부인은 현실적인 인물이라기보다, 싱클레어의 내면이 만들어낸 안내자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싱클레어가 자신의 욕망과 두려움을 마주할 때마다 그들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나타납니다.

그런 점에서 카밀라의 아들의 M 역시 데미안을 그대로 옮겨놓은 인물이라기보다는, 화자의 무의식이 사람의 형태를 빌려 나타난 존재처럼 보입니다. 화자가 애써 외면하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기억, 그리고 자신에게 흐르는 괴물의 피를 직접 마주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4.

그렇다면 마지막의 환상.
그리고 흘러나오는 피는 무엇을 상징할까요.

자신이 저주하던 피가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순간, M은 말합니다.

“이것이 네가 원하던 거야.”

M을 화자의 무의식이라고 본다면, 이 장면은 자살에 가까운 자기 소멸의 욕망일지도 모릅니다. 화자는 괴물의 피만 제거하고 싶어 하지만, 그 피는 동시에 자신의 생명이기도 합니다. 괴물이 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 자기 자신까지 사라지는 것이라 믿은 셈입니다.

혹은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며 살아온 고독에서 벗어나, 마침내 어머니와 같은 최후를 선택하는 장면일 수도 있습니다. 카밀라가 말뚝과 참수와 화형으로 소멸했듯, 아들 역시 자신의 피를 비워냄으로써 혈통의 끝을 만들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쪽도 확정할 수 없습니다.

결국 공략집을 펼쳐보아도 마지막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무지의 어둠입니다.

 

5.

제가 처음에 프롬소프트와 벽라 작가님의 고딕호러를 연결지은 것은 이것입니다.

‘재밌습니다.’

많은 변태적인 플레이어들이 다회차 플레이를 즐기는 이유.
파편처럼 흩어진 단서들을 이어 붙이며, 자신만의 스토리를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른바 ‘프롬뇌’라고 불리는 독자, 혹은 플레이어에 의해 완성되는 세계.
세계는 불친절하고 쓸쓸하지만, 그 씁쓸한 맛 안에는 강한 중독성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한 번 이 게임을 플레이 해보는 건 어떠신지 권해보는 바입니다.

이번에도 제 무식이 탄로나는 리뷰였군요…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리뷰는 이제 다시 쓰지 않겠노라고 결심했는데, 글을 보다가 생각을 정리하면서… 저도 모르게 그냥 쓰게 되었습니다. …아까우니 올립니다.

남아일언중천금!

…아무렴 어떻습니까. 전 에겐이라 여성전용주차구역에 파킹하는 사람인 것을.

 

다시는, 두 번 다시 이 사악한 작가님의 글을 보지 않으리라고 다짐하면서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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