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가 모른다고 할 때 소설가는 상상을 한다 감상

대상작품: 시간의 종착점 (작가: 누리팩토리, 작품정보)
리뷰어: 사피엔스, 14시간 전, 조회 27

편집장의 시선에 소개된 ‘시간의 종착점’을 읽고 가벼운 감상을 남겨보려고 합니다.

이 작품은 풀 수 없다고 알려진 문제를 풀고자 하는 어느 수학자의 집념이 낳은, 혹은 그것이 밝힌 우주의 운명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주인공인 수학자 이준혁은 조금 특이한 인물로 그려집니다. 남들이 안 된다고 하는 것을 될 만한 방법을 찾아내는 일에 골몰하는 사람으로요. 그는 풀기 힘든 문제가 있으면 고차원으로 이동해서 풀기를 좋아합니다. 작중에서는 이것을 2차원의 평면에서는 미로의 출구를 찾기 힘들지만 3차원 세상에서는 그 미로의 출구를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던 그는 어느 날 동창회에서 만난 친구, 기상학자 박승우로부터 기상 예보의 고충에 대해 듣다가 로렌츠 방정식에 대해 알게 됩니다.

로렌츠 방정식이란 동역학계 이론에 등장하는 것으로 3차원 공간에서 대기의 대류를 나타나는 비선형 연립 미분 방정식이라고 하는군요.(https://ko.wikipedia.org/wiki/%EB%A1%9C%EB%A0%8C%EC%A6%88_%EB%B0%A9%EC%A0%95%EC%8B%9D) 로렌츠는 이 방정식을 통해 카오스의 중요한 성질인 초기 조건의 민감성에 대해 알아냈다고 합니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34070&cid=60209&categoryId=60209)

이준혁은 우연히 모텔 천장의 거울을 이용, 4차원으로의 이동을 통해 이 방정식을 풀었고, 그의 친구인 박승우는 물리학자, 수학자를 끌어들여 이 방정식의 해를 검증합니다. 이때 물리학자 정재원은 깨닫게 되죠. 4차원으로의 이동은 시간이 공간에 더해짐을 의미하고 이준혁이 이 방정식을 푼 것은 차원 이동 덕분에 미래에서 결과를 보고 왔기 때문이라고. 즉, 이 방정식을 이용하면 시간 이동이 가능합니다. 그들은 그 사실을 이용해 타임머신을 만듭니다. 질량이 0이어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광자를 이용한, 일종의 망원경입니다.

그들은 이것으로 과거와 미래를 들여다봅니다. 그러다 이상한 것을 발견하는데, 가장 먼 과거와 가장 먼 미래, 그러니까 우주의 시작과 종말로 가면 어떤 절벽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저는 어릴 적부터 우주의 탄생, 우주의 크기나 모양, 우주의 종말 같은 것들이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어른이 된 후 그런 주제를 다루는 학문이 우주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천문학의 하위 학문이죠.

현대의 우리에게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우주론은 빅뱅이론입니다. 빅뱅이론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는 너무나 긴 얘기라 생략하겠습니다. 빅뱅우주론은 이론의 논리성과 여러 관측 결과 덕분에 현재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론은 현재 우주가 왜 지금같은 모습이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잘 설명하지만 빅뱅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에 과학자들은 말합니다. 빅뱅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주의 시작이므로. 따라서 아무것도 없었던 상태에 대해 묻는 것은 질문의 의미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집니다. 그래서 우주론도 다양하게 발달해 순환우주론이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우주가 단 한 번 태어나고 죽는 우주가 아니라 n번째 우주일 수 있다는 거죠. 하지만 이것은 입증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수학적인 연구로 남아 있는 게 대부분입니다. 최근에는 슬론 디지털 스카이 서베이 프로젝트로 인해 빅뱅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우주 거대 구조가 발견돼 그게 혹시 로저 펜로즈의 등각순환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지만 딱 거기까지일 뿐 아무런 입증은 되지 않았습니다.

결론은 빅뱅 이전에 대해서는 ‘모른다’입니다. 혹자는 빅뱅 이전이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개념이라고도 합니다. 이건 ‘굳이 알려고 하지 마라, 알 필요도 없다’가 되겠네요. 저는 이러한 지점에서 SF가 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작품이 정확히 그러한 일을 했고요.

이 작품은 수학, 기상학, 물리학, 천문학의 몇 가지 개념을 잘 버무려서 흥미롭기도 하면서 뭔가 말이 되는 듯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우주의 종말 후에는 뭐가 있을까, 같은 수많은 과학자가 생각하지 않으려 하는 질문을 던진 덕분이죠.

거기다 이 작품은 생각할 거리도 주는데, 그것은 바로 이 이야기가 아무 의미 없이 일어나는 우주적 이벤트에 어떤 개연성과 필연성을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우주가 진화하여 생명이 생겨났고 생명이 진화하여 인간이 태어났는데 그 인간이 가진 궁금증과 그들이 벌인 활동에 의해 우주의 운명이 바뀐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생각 같기도 한데,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보여주는 장치처럼도 보입니다.

인간은 늘 자기 자신과 주변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자 하는 존재입니다. 이건 아마도 생존 본능에서 생겨난 특성이겠죠. 낯선 것, 이해 안 되는 것을 맞닥뜨렸을 때 그것이 내 생존에 도움이 될 것이냐, 해가 될 것이냐를 결정해야 하니까요. 어쩌면 인간의 이 의미 찾기가 고도의 지능과 결합해 예술과 학문과 스포츠가 발전한 건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러한 발전은 인간의 삶에 이로움을 가져다줘도 환경에는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술 발전으로 인한 환경 오염과 지구온난화가 대표적인 예가 되겠죠. 예술과 스포츠도 환경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한 활동의 결과로 엄청난 에너지가 소비되고 폐기물들이 쏟아져 나오니까요. (당장 저희 집 어린이들만 해도 유치원과 학교에서 매주 만들어오는 작품을 다 모으면 양이 어마어마합니다. 결국은 잠깐 전시했다가 전부 쓰레기통 행이죠.)

이 작품은 한 인간의 궁금증(로렌츠 방정식을 어떻게 하면 풀 수 있을까)이 미친 영향이 지구를 넘어 우주적 스케일로 확대됩니다. 오염이나 낭비 정도가 아니라 파괴에 이를 지경이 되죠. 호기심에 한번 찔러봤는데 뻥 터져버렸다, 가 되는 겁니다. 그렇다고 이 이야기가 어떤 교훈을 전달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저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혹은 알고 보니 이래서 이런 거였다(우리 우주가 생겨난 게 이전 우주의 과학자들의 관측 행위 덕분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는 뜻), 정도의 메시지 같습니다. 어쩌면 작중에 표현된 나비효과에 대해 표현하고자 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비효과를 보여주는 로렌츠 방정식을 연구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나비효과를 일으키게 된 거죠. 아이러니하네요.

해석이야 어찌 되었든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었습니다. 우주의 순환을 다룬다는 점에서 아이작 아시모프의 최후의 질문이 떠오르기도 했네요. 스토리 진행의 주체가 인간이고 그들이 일으킨 결과가 의도가 아닌 우연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지만요.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음에도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았는데요. 첫째는 수학자 이준혁이 로렌츠 방정식에 대해 알게 된 게 기상학자 친구를 통해서라는 점입니다. 이 소설의 배경은 지금과 동시대이고 그 방정식은 60년대에 발표된 것입니다. 무려 60년 전이죠. 아무리 수학과 기상학이 동떨어진 분야라 해도 그 유명한 나비효과의 시초가 된 방정식을 수학자가 몰랐다는 게 좀 의아스럽습니다. 요즘은 학제 간 연구나 교류도 활발하니까요. 거기다 동역학계는 수학의 한 분야이기도 하고요. 그 부분이 조금만 더 개연성 있게 표현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둘째는 주인공이 수학자 이준혁에서 갑자기 물리학자 정재원으로 바뀐다는 점입니다. 소설 도입부에 이준혁이 얼마나 독특한 인간인지를 설명하는 부분을 보고 저는 이준혁이라는 인물에 흥미를 가졌었는데요, 그가 로렌츠 방정식을 풀고 나서부터는 갑자기 존재가 사라지고 물리학자 정재원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걸 보고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스코프 발명 이후 이루어진 연구는 수학이 아닌 물리학의 영역이니 어쩔 수 없다고는 생각하긴 했는데요. 아무래도 주인공이 갑자기 바뀌어 버린 게 좀 아쉽네요. 더구나 정재원은 이준혁의 경우와 달리 어떤 개성이 있는지가 거의 표현되지 않습니다. 그저 물리학자로만 표현되어서 밋밋한 느낌이 납니다.

셋째는 두 번째 아쉬움과 연결되는데요, 인물들이 좀 더 입체적이면 더 읽는 재미가 날 것 같습니다. 이준혁까지는 괜찮았는데 그 외 인물들은 그저 스토리를 끌고 나가기 위한 도구처럼만 보였습니다. 아무런 개성 없이 그저 ○○학자 □□□로만 나와 있어서요. 거기다 인물들 간의 교류도 정보를 주고받는 수준에 그치고 있고요. 물론 이 이야기를 이루는 줄기는 로렌츠 방정식과 스코프와 관측 결과입니다. 하지만 소설은 기본적으로 이야기이고, 사람들은 이야기에서 어떤 특성을 기대합니다. 인간의 변화와 성장이죠. 지금처럼 모든 캐릭터가 플롯 전개에 희생되는 방식으로는 과학적인 신기함 이상의 감동을 끌어내기가 힘듭니다. 주인공을 이준혁 한 명으로(수학자 겸 물리학자로 설정하면 어떨까요? 실제로 현실에서 그런 사람도 많고요.) 정하고, 그에게 어떤 개인적인 서사를 부여한 뒤, 그 서사와 스코프 관측 결과의 각각의 의미를 연결 짓는 작업이 추가된다면 보다 감동적인 스토리가 탄생할 것 같습니다. 네 인생의 이야기나 인터스텔라 같은 작품들이 해낸 것처럼요.

가볍게 쓰려고 했는데 길어졌네요. 긴 리뷰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다른 좋은 작품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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