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여자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랑한다’라는 그 국어의 어색함이 그렇게 말하고 싶은 나의 충동을 쫓아 버렸다.
-김승옥, 무진기행
안녕하십니까.
같은 작가님의 다른 글을 리뷰하는 건 아마 처음인 것 같습니다.
처음 작가님의 글을 보았을 때를 기억합니다. <무진기행>의 주인공이 느낀 낯섦 같은 것은 없고, 친숙함만 있더군요. 제가 기억하던 문체 그대로십니다. 하지만 그때에 비하면 문장력이 한층 안정되었다는 말씀을 우선 드리고 싶습니다.
감히 ‘훌륭한 글’이라는 절대적인 기준을 정해 놓고 멋대로 평가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파도로 무한히 찢기고 갈라지는 바다는, 역설적으로 영원하지요.
제가 보지 못한 시간 동안 작가님의 언어가 어떤 갈래로 찢어지고 갈라졌는지 알 수 없으나, 여전히 작가님의 고유성이 이 글에 살아 있고 그것은 눈부십니다.
서론은 이만 끝내고, 작가의 말에 ‘이 글이 로맨스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주셨기에 이 리뷰를 씁니다.
1. 네, 이 글은 로맨스가 맞습니다.
2. 아니오, 이 글은 로맨스가 아닙니다.
1) 이 글이 로맨스인 이유
(1)글의 형식
화자인 ‘나’는 ‘당신’을 추억하며 당신에 대한 사랑을 독백합니다.
함께 바다에 갔던 일, 기차를 탄 일, 피 흘리는 당신을 본 일 등등.
당신을 생각하는 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엔 애정이 넘칩니다.
애초에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것을 그토록 자세히 기억할 수 있는 동물이 아닙니다, 사람은.
화자가 당신을 기억하고 함께했던 추억의 장소에 들른다는 서사 구조부터, 이 글은 로맨스일 수밖에 없습니다.
(2)모호함
화자가 기억하고 있는 당신은 모호한 존재입니다.
화자는 당신의 말투, 눈빛, 표정 모두 알고 있지만 그것은 당신의 일부일 뿐, ‘전체’도 아니고 ‘절대성’도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단어라는 작은 틀에 가둬두고 나의 지식 범주에 한정된 문자로 정의 내려 그것이 옳다고 믿으며 살아가는 게 사랑일까요.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겠지만, 또한 사랑이라는 감정 하에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이겠지만,
우리는 우리의 오독 가능성과 슈뢰딩거의 상자 같은 사람의 양면성 또한 이해해야 합니다.
화자가 당신의 모호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상대성을 좋아하기 때문에 화자는 사랑을 하고 있고 또한 사랑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글의 장르는 로맨스입니다. 지극히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결론 아닙니까.
(3)복수와 용서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게 복수를 논하지 않습니다.
미움을 논하지 않습니다. 증오를 논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복수할 필요도, 용서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화자는 다르지요. 그녀는(여성이 맞겠지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에게 복수할 수 없으니 이제 그만 용서해야겠지요.
복수와 용서를 동시에 논합니다. 미움의 가능성과 포용의 가능성.
둘 다 사랑이 있기에, 애정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2)이 글이 로맨스가 아닌 이유
(1)그러나 ‘사랑한다’라는 그 국어의 어색함이 그렇게 말하고 싶은 나의 충동을 쫓아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님 본인께서 이 글이 로맨스가 맞는지 흔들리는 이유.
본인이 로맨스일 것을 상정하고도, 로맨스라고 확신할 수 없는 이유.
앞서 서사 구조가 로맨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또한 글의 구조 문제로 ‘로맨스인가?’라는 의문을 자아냅니다.
간단히 요약해볼까요.
산만한 서술.
의식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는 글의 특성상 그렇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요.
-4-5문단으로 넘어갈 때 연결이 부자연스럽습니다.
-비 오는 강 얘기에서 바다로의 전환이 부자연스럽습니다.
전에 제가 드렸던 말씀 기억하시지요? 아무래도 ‘그렇게’라는 형용사에 많이 의존을 하고 계신 것 같다.
‘그렇게’가 사라진 것은 물론 작가님의 발전이지만 여전히 몇몇 이야기의 전환이 매끄럽지 않습니다.
서술이 산만해지면, 그 안에 담긴 감정도 약해집니다.
힘을 잃고 휘청대는 글은 작가 본인도 믿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작가가 자기 글을 믿지 못하면 누구도 믿기 어렵지 않을까요. 그렇기에 이 글은, 로맨스라고 확답할 수 없습니다.
(2)상대성 설명 부족
사실 이야기의 가장 큰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당신이 상대적인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화자는 내가 당신의 일부만 알고 있으며 당신이 모호한 존재임을 강조합니다. 자신은 그런 모호함을 싫어하지 않고 좋아했다고.
그런데 정작 이야기에서 설명되는 상대성은 없습니다.
사랑의 대상이 불명확합니다.
화자는 왜 당신을 상대적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렇게 설정해서입니까? 당신은 어떤 인물입니까?
1인칭 화자 독백이란 구조 특성상, 독자가 알 수 있는 정보는 화자의 진술 뿐이기에 화자가 알지 못하는 것은 독자도 알지 못합니다.
세상 모든 글에 설명이 필요한 건 아니지요. 하지만 로맨스에서 가장 중요한 ‘서사’를 직접 보여주지 않고 내면 독백으로 채우고 있는 경우, 이것이 사랑인 이유를 납득시키기 위해선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엔 그러한 설명이 부재합니다.
그렇기에 완전한 로맨스라고 확신하기엔 작가님 본인의 눈에도 어폐가 있어 보이는 것 아닐까요?
구구절절 사랑의 이유를 늘어놓으란 제언은 아니었고요.
근거를 나열하지 않고 설명하는 법, 그 방법을 고민해 보시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될 듯 하여 이 부분은 여백으로 남기겠습니다.
그래서 이 글이 로맨스인가 아닌가.
그것을 정하는 건 독자의 평이기도 하겠지만, 작가님의 선택이기도 합니다.
이 글이 무엇이 될지는 작가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제 사견으론 대체로 작가가 정한 장르가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편이긴 하나(독자에게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건 안타깝게도 설득의 부족이겠지요), 본인이 믿음이 없으신 것 같아 이러한 형태로 리뷰를 써보았습니다.
이 글이 무엇인지와 별개로 잘 읽었습니다.
다음 글을 기다리며,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감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