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먼 미래의 파랑새 감상

대상작품: 링구아 코스미카 (작가: 조나단, 작품정보)
리뷰어: 청새치, 1시간 전, 조회 9

머나먼 미래, 한 행성뿐만 아니라 수많은 개척 행성, 위성, 소행성대 전진기지에는 오직 단 하나의 국가만이 존재하여 그간 있었던 국가 간 전쟁 및 격차와 이상기후, 인종과 민족과 종교 갈등 외에도 기타 인간을 많이 죽이던 것을 모두 해결하고 평화로이 연방 통일 기념 축제 마지막 날을 맞이해 예고했던 중대 발표를 시작합니다.

외계 문명과 조우한 사건에 관해서요.

요즘 세태가 영 좋지 않아서 그런지, 저는 외계 문명이 존재하는 것보다 수 세기 만에 그런 갈등이 있던 사회가 이만큼이나 확장되고도 서로 증오하고 죽이지 않는 데에 더 놀랐습니다. 물론 통일된 뒤에 널리 퍼진 거지만, 원래 두 사람만 있어도 차이가 생기고, 세 사람이면 한 명을 따돌릴 수 있고, 네 사람이면 둘씩 편을 갈라서 싸울 수 있잖아요? 거기다 공동체 사이에 쉽게 오갈 수 없는 공간인 우주까지 놓였는데 계속 통일 상태를 유지하는 데서 압도적인 저력을 느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될 수 있을까 싶어 부러운 한편 막막하기도 했고요.

어쨌든 이미 통일을 이룬 시대에 과거 인류의 선망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훌륭하게 화합에 성공한 미래의 이곳은 영원한 요람이자 무덤 같던 태양계조차 벗어나 성간 우주로 나아갔습니다. 역사와 함께 축적된 실패와 희박한 성간 매질을 바탕으로 무언가를 발견하리라고 기대는 하지 않으면서요. 그러다가 어떻게 봐도 자연물이 아니고, 그렇다고 연방에서 만든 것도 아닌 것과 조우했으니 얼마나 놀랐을까요. 막연한 언젠가에 이뤄지면 좋겠다고 가볍게 바란 꿈이 덜컥 현실이 된 우주정거장 내 관제실의 기쁨도 잠시, 소통하려는 어떤 노력에도 불구하고 외계의 비행체는 왔을 때처럼 묵묵히 떠나려 합니다.

여기서 저 외계 비행체를 붙잡았다가 침공을 당할까 우려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저는 화합과 평화가 익숙해진 문명을 무력 사용이 당연한 문명이 침공하는 장면을 많이 본 터라 조마조마했습니다. 우주의 언어는 사실 폭력이 아닐까요? 원자조차도 서로 충돌하는데요. 그렇지만 통일 경험이 있는 사회라 그런가, 근처에 생명체가 없으니 침공하러 오더라도 대비할 시간이 있으리란 주장에 뜻이 모여 해당 비행체를 가져와 조사하기로 합니다. 이 장면에서 과학자도 뭣도 아닌 저도 설레더라고요. 감격해서 글썽이는 과학자에게 감정이 옮았을 수도 있고요. 이렇게 인구가 많아도 인류는 하나의 종으로서 외로운 걸까요? 다른 종이 친구가 되어 주리란 보장도 없는데 말이에요.

이때부터 붙은 ‘레가요프’라는 이름이 실제로 있는 민간 설화에 나오는 이름인 줄 알고 검색했는데, 다른 이야기가 더 없어서 좀 아쉬웠습니다. 그렇지만 수 세기 사이에 생긴 설화라고 생각하면 즐거웠어요.

안 그래도 인류의 이상향 같은 미래 사회지만, 여태 겪은 우여곡절이라곤 하나도 모르는 것만 같은 낙원의 모습에 감탄하는 걸 보면서 바닥에는 더 바닥이 있듯이 천장에도 더 천장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우주는 원래 넓지만, 그보다 훨씬 더 넓다는 것도 실감했고요. 하지만 동시에 희망도 생겼습니다. 이런 문명이라면 교류를 분명 받아주겠죠? 우리는 어디까지 더 뻗어나갈 수 있을까 상상하면서 같은 탄소 기반 생명체인데도 너무나도 다르게 생긴 그들과 어울릴 생각에 두근두근했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들은 이미 그들에게 생명을 준 태양에 의해 사라진 뒤였습니다. 그것도 46억 년은 더 전에요! 관성 항행하는 우주선이 빛보다 빠를 리 없으니 인류가 연방을 세우려 아등바등하기 전부터 이미 레가요프인들은 한 사람도 남김없이 죽었다는 발표에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잔잔하고 행복한 단편인 줄 알았는데 멸망이 착각도 꿈도 아닌 관측상 사실이니 뭘 어떻게 부정할 수도 없더군요.

기뻐하는 날이 있으면 슬퍼하는 날도 있는 법. 이렇게 기록을 남긴 뒤 끝날 줄만 알았던 레가요프의 우주선은 한없이 다정한 마음으로 원래 궤도에 오릅니다. 우리처럼 외로울 다른 종족에게도 혼자가 아님을 알려주자면서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봉화처럼 이어지는 친절에 눈물이 났습니다. 그렇죠, 우리는 타인의 친절로 오늘까지 살아남았으니까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배웅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글썽거릴 때, 해독에 실패한 외계 인류의 목소리가 작가적 허용으로 번역되어 나오고는 그저 신비했던 행성이 한층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미래의 우리가 시간뿐만 아니라 공간적으로도, 생물적으로 멀게 느껴졌지요.

그렇지만 뭐 어떤가요, 우리는 어차피 만날 수도 없는데요. 그러나 먼 미래 어딘가에, 설령 오해였다 해도 누군가의 선량함을 믿고 그걸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이들이 있다고 상상하는 건 할 수 있지요.

그게 무척 희망을 품는 일과 비슷하게 느껴져서, 이 작품을 읽은 날에 내일을 기대하며 잠들 수 있어 좋았습니다.

목록
이전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