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것들로만 쓴 뜨거운 사랑 공모(비평)

대상작품: 체리 슬러시 (작가: 용복, 작품정보)
리뷰어: 윤휘, 3시간 전, 조회 17

※스포일러가 포함된 주관적 감상입니다. 짧은 글이니 미열람하신 분들은 읽고 오시길 권장합니다.

※ 작중에 가정 내 성폭력, 성폭력 피해, 자살, 살인이 다루어집니다. 읽으시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주관적인 별점

스토리 구성: ★★★★★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다.  분량에 이만큼을 넣고도 그렇다.)

인물 매력도: ★★★☆☆ (어머니는 기능에 충실한 보조 인물인데, 그 절제가 오히려 좋았다.)

표현 및 묘사: ★★★★★ (문체가 유연하고 부드럽다. 호흡을 끊는 자리가 치밀하다.)

진입장벽: ☆☆☆☆☆ (문장이 술술 읽힌다. 다만 소재가 무거우니 마음의 준비는 필요하다.)

 

 

 

1. 주제에 대한 이야기

 

 

다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소설이 온도로 쓰였다 것이었다.

 

 

작품에 뜨거운 것이 없지는 않다. 매미가 울어대는 무더운 여름이고, 뺨을 맞은 하음이의 볼은 발그스름하게 물들고, 그 애를 끌어안은 지율의 심장은 쿵쿵 뛴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 뜨거운 것들을 한 번도 뜨겁게 쓰지 않는다. 

 

대신 차가운 것만 계속 내민다. 이마의 땀이 얼어붙는 집, 얼음처럼 차가운 문고리, 저수지의 물, 그리고 체리 슬러시.

 

우선 문고리부터 이야기해야겠다.

 

초점화자인 지율에게만 그 손잡이가 차갑다. 어머니에게는 아무렇지 않다. 나는 이 대목을 초자연으로 읽지 않았다. 이건 지율의 환각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주관적인 근거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어머니 쪽이다. 열쇠 구멍이 있는데도 열쇠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그 말은, 방에 무언가가 있다는 증거가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증거로 읽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다. 딸의 시신을 직접 발견한 사람이 며칠 뒤에 그 딸이 방 안에 있는 건 아니겠느냐고 묻는다. 어머니는 이미 무너져 있다.

 

다른 하나는 이다. 이 소설에서 물은 저수지로만 등장한다. 지율이 사람을 밀어 죽인 그곳. 그러니 문 안쪽이 물이었다는 건 방이 저수지가 되었다는 뜻이고, 지율이 거기 빠져 허우적댄다는 건 자기가 저지른 자리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는 뜻이 된다. 게다가 하음이는 지붕에서 떨어져 죽었다. 그 애를 따라가려면 지율도 빠지거나 떨어져야 한다. 문을 열고 물에 빠지는 그 짧은 문단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해낸다.

 

그렇다면 손잡이는 왜 차가웠나. 저세상의 온도는 흔히 차갑다고 표현된다. 그리고 지율은 하음이가 없다는 걸 안다. 아는데도 문고리를 잡은 순간 방 안에서 소리를 듣는다. 있기를 바라기 때문에 들은 것이다.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의 온도가 뜨거울수록 손끝은 더 차가워진다. 잡은 손잡이가 차갑지만 한없이 부드러운 손, 꼭 하음이의 손을 만졌을 때처럼 느껴진다는 문장은 그래서 나온다. 그리고 방을 가득 채운 물은, 나는 지율의 슬픔이 눈물로 들어찬 상태라고 읽었다.

 

 

여기서 이 인물의 상태를 짚고 넘어가야겠다.

 

지율은 하음이가 죽은 뒤에도 이상할 만큼 차분하다. 엎드려 있고, 버스를 타고, 유원지를 걷는다. 뭐, 물론 겉보기에는 얌전한 슬픔으로 보인다. 허나 속이 뒤집히지 않았을 리가 없다. 자기가 사람까지 죽여가며 지키려 했던 아이가, 자기에게 말 한마디 없이 혼자 일을 해치워버렸으니까. 그러고도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잘만 돌아간다.

 

 

이 정중동이야말로 이 소설이 우울을 그리는 방식이다. 바닥을 구르며 통곡하는 상태보다,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상태가 더 지독하고 위험하다. 그리고 그 지독함은 결국 하음이의 방에서 터진다. 야구 배트를 끌고 계단을 내려가며 상패를 하나하나 부수는 장면. 손에서 피가 나도 멈추지 않는 그 폭주가, 앞의 그 얌전함과 정확히 짝을 이룬다.

 

 

그리고 폭주의 방향이 아주 정확하다. 지율은 어머니를 조금도 건드리지 않는다. 부수는 건 오직 벽에 걸린 상패들, 그러니까 아버지다. 하음이를 직접 짓밟았고, 동시에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면 안 된다는 말을 세상의 규칙으로 만들어놓은 쪽. 지율에게 그 상패들은 높은 곳에서 늘 나를 내려다보던 어떤 시선들이라고 서술된다. 한 번의 파괴로 두 가지를 부순 셈이다.

 

 

그러니 이 소설의 뜨거움은 전부 지율 쪽에 있다. 사랑도, 분노도, 살의도. 그런데 작가는 그것을 뜨겁게 쓰지 않는다. 차가운 것만 계속 내밀면서 독자가 그 반대편을 스스로 느끼게 한다. 나는 이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2. 좋았던 점에 대한 이야기

 

 

① 아버지를 끝내 등장시키지 않은 것. 이 작품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본다. 하음이를 열 살 무렵부터 짓밟은 사람이 화면에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대신 계단 벽에 매립 조명을 받으며 걸린 문학상 상패와 교수 위촉장으로만 존재한다. 가해자를 직접 등장시켜 악행을 저지르게 하는 건 사실 쉬운 길이다. 독자의 분노를 확보하기도 쉽고. 그런데 그렇게 하면 부술 대상이 그저 나쁜 사람 하나가 되어버린다. 화면에 올리지 않았기 때문에, 마지막에 지율이 부수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 권위 그 자체가 된다. (지율이 상패를 부수며 떠올리는 것이 아버지가 아니라 넌 그러면 안 돼라는 목소리들이라는 점이 그 증거다.)

 

② 인물 묘사가 짧고 정확하다. 어머니는 볼이 움푹 패고 눈 밑이 꺼진 얼굴, 웃으려다 울어버릴 것 같은 표정 몇 줄로 끝난다. 양아치는 목덜미의 야차 문신과 탈색 머리와 십자가 티셔츠로 끝난다. 아버지는 상패로 끝난다. 인물을 짧게 세우는 건 생각보다 까다로운 일인데, 정보를 줄이면 대개 인물이 흐려지기 때문이다. 작가는 줄이는 대신 정확한 것 하나만 남기는 쪽을 골랐고, 그래서 흐려지지 않았다. 동선도 마찬가지다. 유원지, 버스 노선, 경사진 골목, 계단. 필요한 만큼만 나오고 군더더기가 없다.

 

③ 하음이가 자기 피해를 말하는 태도. 나 강간당했다는 말을 오늘 밥을 먹었다는 것처럼 툭 던지고, 놀라는 지율에게 처음도 아닌데 뭘 그러느냐며 고양이처럼 웃는다. 이 가벼움이 이 작품의 무게추다. 폭력에 익숙해진 사람이 그것을 가볍게 말할 때, 주변의 사소한 것들이 오히려 서늘해진다. 마라탕의 옥수수 당면, 오픈 런으로 사 모은 말랑이, 코인 야구장, 코코넛 향 헤어스프레이. 그리고 체리 슬러시. 열여덟 살이 좋아할 만한 것들이 그 가벼운 고백 옆에 놓이는 순간 전부 처연해진다. 한쪽에 무게추가 잔뜩 달린 저울에서 반대편이 높이 들려 올라가듯이, 너무 가볍게 말해버린 태도 때문에  아이가 짊어진 것의 무게가 보인다.

 

④ 살인이 끝난 뒤에야 표지판이 보인다. 최대 수심 7m. 절대 들어가지 말 것. 그리고 화자가 덧붙인다. 7m. 럭키 세븐. 이 한 줄의 온도가 정말 서늘하다. 아주 탁월한 처리가 아닐  없다.

 

 

3. 아쉬웠던 점에 대한 이야기

 

이 작품에서 아쉬운 건 사실상 “표기” 하나뿐이다. 그래서  절은 짧다.

 

몇 군데 오타와 조사 오류가 있다. 아래 각주에 모아두었다. 특히 잔디밭이 나오고 집이 보이는 대목의 조사 하나는, 그 문장이 하음이네 집에 들어서는 첫 장면이라 더 눈에 걸렸다. 이만큼 다듬어진 원고에서 이런 것이 남아 있는 게 오히려 안타까웠다.

 

덧붙여, 혹시 임신 여부가 끝내 밝혀지지 않는 것을 미회수로 읽으실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확인해버리면 하음이의 죽음이 하나의 이유로 못박히기 때문이다. 열어두었기 때문에 마지막 말이 여러 겹으로 읽힌다. 하음이는 우리 이제 다음… 까지만 말하고 멀어지는데, 나는 그 뒤에 다음 세상에서, 혹은 다음 삶에서는 같은 말이 붙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여자라서 안 된다고 배웠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미 남자의 아이를 가졌기 때문에 너와는 이어질 수 없다는 뜻이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잊으려 했는데 잊히지 않을 만큼 사랑한다는 걸 깨달았지만, 도리어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리고, 그 상황에 도달하는 갈래를 두 가지(학습된 관념 때문에 또는 아이를 가졌기 때문에) 남겨두려면 임신은 확인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4. 제목에 대한 이야기

 

「체리 슬러시」. 작품에 네 번 나오는데, 나올 때마다 다른 것이 된다.

 

처음은 하음이가 죽던 순간이다. 첫 문장이 하음이가 죽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 문장이 그때 자기는 체리 슬러시를 먹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지붕에서 튄 피가 서술된다. 가장 끔찍한 순간과 가장 달콤한 감각을 한 문장 거리에 붙여놓았다. 여기서 슬러시는 뜨거운 마음을 잊게 할 만큼 머리가 띵하게 만들어주는, 아주 차가운 마취제 역할을 한다. 물론, 지율이의 입장에서 하음이와 관련된 소재로 쓰였기도 했을 테지만.

 

두 번째는 살인이 결정되는 자리다. 지율이 하음이의 슬러시를 뺏어 크게 한 모금 빨아들이고, 머리가 띵해진 채로 죽여 버리자고 말한다. 화자는 자기가 달콤함에 절어 어질어질한 채로 그 말을 했다고 적는다. 서늘하게 언급된  말의 뿌리에 있는 것은, 결국 뜨거운 마음이다.

 

세 번째는 죽기 전날이다. 약속도 하지 않았는데 둘 다 체리 슬러시를 들고 있었고, 하음이가 손깍지를 끼며 진짜 부드럽다고 말한다. 이 소설에서 두 사람이 유일하게 나란히 있는 순간이고, 지율에게는 사랑이 이루어질 것 같은 설렘을 확인받는 자리다. 그런데 그 확인의 증표가 하필 차가운 이다. 그 차가움으로 말미암아, 그대로 관계가 굳어지길 바랐음이 표현되었을 수도 있다고 본다.

 

네 번째가 마지막 문장이다. 상패를 부수며 머리가 깨질 듯 아파오는 것을, 화자는 체리 슬러시 한 컵을 단숨에 다 마셨을 때 같다고 적고 끝낸다. 마취가 통증으로 되돌아오는 자리다. 제목이 소설의 첫 문단과 마지막 문장을 같은 감각으로 묶는다.

 

그러니 이 제목이 상징하는 것은, 내가 보기에 뜨거운 사랑이다. 아주 역설적이게도. 

 

차가운 것을 계속 입에 넣는 아이의 이야기인데  안에 있는  전부 뜨거운 것이다. 사랑도, 분노도, 죄책도.

 

그리고 작가는 이 대비를 색으로 하지 않았다. 슬러시는 핏빛과 같은 붉은 계열이니 색으로 대비를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소설이 실제로 쌓아 올리는 건 색이 아니라 온도라고 본다. 무더운 여름과 얼어붙는 땀, 발그스름한 뺨과 차가운 문고리, 쿵쿵대는 심장과 저세상의 서늘함. 뜨거운 것을  번도 뜨겁게 쓰지 않으면서 뜨거움을 전달하는 , 이것이  작품이 해낸 일이라고 생각한다.

 

덧붙이자면 슬러시는 잘게 갈린 얼음이다. 첫 문단에 미세하게 갈린 얼음이 사각사각 씹히는이라고 적혀 있다. 부서진 것을 삼키는 이미지는 하음이가 자신에게 주어진 차가운 폭력들을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여러 의미로, 이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아주 멋들어진, 맛있는 소재가 아닐 수 없다.

 

 

5. 기타 개인적인 이야기

네 번째로 써보는 리뷰입니다. 이 작품은 이십 분 만에 다 읽고, 이십 분 동안 다시 훑었습니다. 호흡을 끊는 자리가 정확하고, 상징이 겉돌지 않고 이야기와 같이 움직입니다. 소재만 놓고 보면 무겁고 아픈 이야기인데도 읽는 일 자체는 부드러웠습니다. 그게 쉽게 되는 일이 아니라는  알기에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감사히  읽었습니다.

 

 

*표기 관련해 눈에 띈 것들을 적어둡니다.

  • ‘탁 트인 잔디밭이 나오고 집에 보였다’ → ‘집이 보였다’
  • ‘사라져버릴 것 처럼‘ → ‘것처럼’
  • ‘유원지에는 나무도 그늘도 많이 들킬 위험은 없었다’ → ‘많아 들킬 위험은 없었다’
  • ‘여보세요? 괜찮으세요.‘ → 물음표가 빠진 듯합니다
  •    ‘그놈’ (여러  나오는데, 붙여 쓰는 것이 표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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