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라기 보다는 짧은 감상입니다만, 재미있게 읽은 글이라 용기를 내서 작성해 봅니다!
제목 : 축제와 다툼, 음악과 소음의 기묘한 하모니
네. 제목은 제가 저 글을 읽고 달았던 댓글에서 차용해 왔습니다.
이 글의 이미지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작가도 밝혔듯 이 글은 산문시에 가까운 흐름으로 빠르게 흘러갑니다.
그러면서도 중간중간의 대사는 그 운문에 가까운 흐름 속에서 날카롭게 공격합니다.
산문시의 흐름 자체를 공격하고, 또한 소설 속 상대방을 공격합니다.
시처럼 빠른 흐름 속에서도, 할 말을 하는 닻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하모니입니다.
내용도 이렇게 상반되는 내용이 어우러지며 진행됩니다.
모든 것이 상대와 섞여갑니다. 하지만, 하나가 되지는 않습니다.
축제와 다툼이 섞여가고
기대와 혼란이 섞여가며
음악과 소음이 섞입니다.
두 번째 하모니입니다.
그리고 이 하모니들을 지켜보는 것,
음악과 소음을 듣는 안테나이자 그것을 다시 자신들의 언어로 풀어내는 사람이
사실은 당사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 슬며시 드러냅니다.
이 연인 역시 축제 도시의 바가지를 뒤집어쓴 외지인입니다.
하루 삼십만 원짜리 낡은 ○○장이 그 증거지요.
그러다 보니 바가지 요금의 피해자이면서도 의도하지 않은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흘립니다.
치킨 봉다리의 흔들림이
기쁨의 상징이었다가 수동적인 안테나의 상징이 되어갑니다.
처음 30만 원으로 못 박았던 가격이
25만 원으로 결제했다는 남자의 말과 함께 보이는 어긋남.
하모니, 하지만 섞이지 않는 그 경계를 5만 원이 표현하는 듯합니다.
잠시 형식으로 다시 넘어가 보겠습니다.
산문시와 장면 소설의 하이브리드.
행이 운율을 만들지만, 완전한 운문은 아닙니다.
그리고 대사가 들어오면서 운문임을 부정합니다.
이 선택 자체가 뒤섞임이라는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방식이라면
혹은, 이러한 구조를 습작하기 위해 글의 주제를 가져온 것이라면
상당히 영리하고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양립 불가능한 두 양식을 동거시키는 긴장’1
이것이 작가가 실험해보고자 했던 것의 엔진이라고 하니까요
연인의 수동성이 결국 방관자의 죄의식을 의미하는 걸까요?
이건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것이 의도라면
치킨 냄새가 먼저 들어간다는 표현도
이야기를 끝맺는 감각적인 표현이 아닌
결국 저 이야기를 뒤로하기로 결정한 것의 상징이 아닐까 싶습니다.
설계된 불편함을 독자에게 넘기고 치킨 냄새가 먼저 글에서 퇴장하는 것처럼 보여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 몇 가지.
사물이 중간중간에서 대사의 보조를 합니다.
소설의 기본이지만, 이 글에서는 맛깔납니다.
청바지 속의 카드키, 쇼핑 리스트가
무게감을 드러내고 기대감을 심어둡니다.
사투리들은 현장감을 높여주어
빨리 모텔로 돌아가고 싶으면서도
그곳에서 빨려 들어오는 소란의 소리를 형상화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저 봉지 속의 통닭조차 양념 한마리, 프라이드 한마리일 것 같다고 느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