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이렇게 말을 하나요? 공모(비평)

대상작품: 층간소음 때문에 겪었던 일 (작가: 배짱이, 작품정보)
리뷰어: 윤휘, 2시간 전, 조회 10

※스포일러가 포함된 주관적 감상입니다. 아주 짧은 글이니 미열람하신 분들은 읽고 오시길 권장합니다.

 

 

주관적인 별점

스토리 구성: ★★★★☆ (짧은 분량에 필요한 것만 정확히 놓았다.)

인물 매력도: ★★★☆☆ (인물이라 부를 존재는 화자 하나뿐이다. 다만 그 하나가 문장마다 자기를 흘린다.)

표현 및 묘사: ★★★★☆ (화려한 표현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그 없음이 계산된 것으로 보인다.)

진입장벽: ☆☆☆☆☆ (오 분이면 읽는다. 다시 읽는 데 더 오래 걸린다.)

 

 

1. 주제에 대한 이야기

 

이 작품은 소설인데 게시글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나도 소설처럼 읽지 않기로 했다. 대신 진술서를 읽듯이 읽어보았다. 이 사람이 쓴 단어들만 붙잡고서.

 

첫 번째로 걸린 단어는 “보복”이다.

 

아이가 사라진 뒤에 다시 소리가 커지자 화자는 이렇게 적는다. 아이가 없으니 이번에는 부모가 자기한테 보복하는 건가 싶었다고.

 

나는 이 단어에서 한참을 멈췄다. 보복이라는 말은 되갚는다는 뜻이다. 되갚으려면 먼저 갚을 일이 있어야 한다. 정말로 억울하고 황당했다면 굳이 이 단어를 고를 이유가 없다. 괴롭히는 건가, 화풀이하는 건가, 아니면 그냥 욕 비슷한 말을 썼어도 충분했을 것이다. 그런데 화자는 하필 상대에게 갚을 이유가 있다는 걸 전제하는 단어 골랐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쓴 말일 수 있다. 사람들이 늘 정확한 단어만 고르며 사는 것도 아니고. 뭐, 물론 그렇다. 허나 진술서를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런 게 걸린다.

 

두 번째는 “예민하다”라는 말의 뒤집힘이다.

 

글의 앞쪽에서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가 예민했던 거 아니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직접 겪어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라고. 스스로를 방어하는 문장이다.

 

그런데 마지막에 가서는 이렇게 적는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서로 너무 예민했던 것 같다고.

 

시간이 지나 감정이 가라앉았다고 보면 자연스러운 변화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읽었다. 문제는 그 두 문장 사이에 놓인 글자들이다.

 

화자는 가끔 그 부모 생각이 난다고 하면서 세 가지를 궁금해한다. 아이는 결국 찾았는지. 지금도 전단지를 붙이고 다니는지. 아니면 시간이 지나 조금은 괜찮아졌는지.

 

첫 번째만 있어도 충분한 문장이다. 그런데 화자는 두 번째와 세 번째를 덧붙인다. 그리고 그 둘은 모두 아이를 못 찾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전단지를 아직 붙이고 다닌다는 것도, 시간이 지나 체념했다는 것도 전부 그렇다.

 

즉 화자는 아이가 못 찾아졌을 가능성에 두 번이나 무게를 실어놓고, 바로 다음 문단에서 서로 예민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아이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을 것 같다고 짐작하는 사람이, 그 일을 예민함의 문제로 정리해버린다. 나는 이 순서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세 번째가 가장 크다.

 

화자는 부모가 자기를 의심했던 것도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적는다. 그리고 한 줄을 덧붙인다.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되돌아와 다시 보고서야 걸렸다. 어미가 이상하다.

 

부모의 처지를 헤아리는 말이라면 “어쩔 수 없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가 맞다. 남의 사정을 추측할 때는 추측 어미가 붙는다. 그게 우리말의 자연스러운 쓰임이다. 그런데 화자는 “어쩔 수 없었다”고 썼다. 이건 추측이 아니라 자기가 겪은 일을 회고할 때 쓰는 형태다.

 

그러니까 이 문장은 이렇게도 읽힌다. 부모가 나를 의심한 것도 이해한다. 그리고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보통 이렇게 말을 하나요? 나는 그게 궁금했다.

 

여기까지 오면 앞의 것들이 전부 다시 보인다. 훈육에 대해 길게 늘어놓다가 부모가 안 가르치면 다른 어른이 가르칠 수도 있다고 말하고, 그게 어른으로서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과거형으로 적은 뒤, 말줄임표를 앞에 붙여 선은 넘으면 안 되겠지만이라고 흐리는 대목. 그리고 바로 다음 문단에서 아이가 사라진다는 것. 단지가 조용해져서 좋았다고 적는 것. 보증금을 포기하다시피 하고 도망치듯 이사했다는 것. 마지막 인사를 못 하고 나온 게 아쉽다면서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고 적는 것. 그 ‘그게’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끝내 지정하지 않는다는 것.

 

물론 이 모든 걸 뒤집는 해석도 가능하다. 화자는 조현병 약을 복용 중이었고, 그렇다면 소리도 눈빛도 전부 그의 안에서 만들어졌을 수 있다. 애초에 층간소음 자체가 과장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어쩔 수 없었다”가 작가가 심어둔 자백인지, 아니면 그냥 오타인지. 화자가 무언가를 했는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은, 결론을 내리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이 소설이 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어느 쪽으로 읽어도 무섭다는 점에서 그렇다.

 

 

 

2. 좋았던 점에 대한 이야기

 

① 아주 쉽게 읽힌다. 이게 미덕이다. 미스터리를 짧게 쓰면 대개 정보가 빽빽해져서 독자가 문장을 붙잡고 씨름하게 되는데, 이 작품은 그 반대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경험담을 읽듯이 술술 넘어간다. 그러고 나서 되돌아오게 만든다. 읽기 쉬운 글로 어렵게 만드는 쪽이 훨씬 까다로운 일이다. 콘셉트가 확실하고, 그 콘셉트를 끝까지 놓지 않는다. (한 문장마다 줄을 바꾸는 조판이나 합리적 의심 같은 어휘 선택까지 흔들리지 않는다.)

 

② 앞서 길게 적은 “어쩔 수 없었다”가 만약 의도된 것이라면, 아주 교묘하게 숨겨놓았다고 생각한다. 어미 하나다. 그것도 사람들이 실제로 자주 틀리는 어미라서, 발견해도 오타로 넘어가기 쉽다. 자백을 오타처럼 보이게 두는 것은 영리한 방법이다. 말줄임표를 놓은 자리도 그렇다. 세 번 나오는데 전부 화자가 말을 삼키는 자리이고, 특히 선은 넘으면 안 된다는 문장 에 붙어 있다는 게 좋았다.

 

③ 아이를 그리는 방식이 투박하고 건조하다. 눈빛이 어땠고 고개를 숙였고 하는 몇 줄뿐인데, 꾸미지 않아서 오히려 잘 던져진다. 이 화자가 아이를 얼마나 납작하게 보고 있었는지가 그 건조함에서 드러난다.

 

④ 조현병을 맨 마지막에 놓았다. 그 한 문장 때문에 앞의 전부를 다시 읽게 된다. 정보를 어디에 두느냐로 글의 성격이 바뀌는 사례다.

 

 

 

3. 아쉬웠던 점에 대한 이야기

 

① 그런데 바로 그 조현병 고백이,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쉽기도 했다. 너무 직접적으로 단서를 던져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전까지 독자(나)는 문장 하나하나를 의심하며 읽는다. 보복이라는 단어에서 멈추고, 어미 하나에서 멈춘다. 그런데 병명이 나오는 순간 그 흔들림이 한쪽으로 정리되어 버린다. 아, 이래서 그랬구나 하고 해석이 수렴해버리는 것이다. 앞에서 그렇게 공들여 만든 애매함이 마지막 한 문장에 다소 값싸게 회수되는 느낌이 들었다.

 

②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조현병을 드러낼 거라면, 차라리 지금 사는 집에서도 그 소리가 들린다는 한 줄을 남겨두는 편이 나았을 것 같다. 지금은 위층에서 의자 끄는 소리가 들리고 애들 뛰는 소리도 가끔 난다고만 적혀 있는데, 이건 아주 정상적인 생활소음으로 읽히도록 배치되어 있다. 여기에 그때 그 소리가 한 번쯤 섞여 들어왔다면, 병명을 밝히고도 서늘함이 남았을 것이다. 지금은 화자가 이사로 벗어났다는 사실이 너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앞의 무게가 조금 새어나간다.

 

③ 표기 오류 하나. 아래 각주에 적어둔다.

 

 

 

4. 제목에 대한 이야기

 

「층간소음 때문에 겪었던 일」.

 

이 제목은 소설 제목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게 첫 번째 노림수다. 독자는 층간소음 경험담을 읽으러 들어왔다가 다른 것을 읽고 나온다.

 

그런데 제목을 앞의 이야기와 같은 방식으로 뜯어보면, 여기서도 걸리는 것이 있다.

 

“겪었던” 이라고 했다. 화자는 자기를 당한 사람으로 규정한다. 저지른 사람이 아니라. “때문에” 라고 했다. 모든 인과의 출발점을 층간소음에 둔다. 그러면 그 뒤에 무엇이 있었든 그것은 층간소음 때문이 된다. 본문에서 화자가 반복하는 논리, 그러니까 애초에 먼저 피해를 준 건 그쪽이라는 말이 제목에 미리 압축되어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일” 이라고 했다. 사건의 이름을 대지 않는다. 실종이라고도, 아이라고도 하지 않는다. 그냥 일이다.

 

그러니 이 제목은 작가가 붙였다기보다 화자가 직접 입력했을 법한 제목이다. 커뮤니티 게시판의 제목 칸에.

 

제목부터가 그 사람의 문장인 것이다. 

 

나라면, 정말 억울한 일을 겪었다면, “내가 이사했던 이유”라고 적거나, “당황스러웠던 일” 정도로 적어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도 같은 것이 궁금해진다. 보통 이렇게 말을 하나요?

 

 

 

5. 기타 개인적인 이야기

 

다섯 번째로 써보는 리뷰입니다. 아주 짧은 글인데도 몇 번이나 위로 올라가 다시 읽었습니다. 단어 하나 어미 하나를 붙잡고 이렇게 오래 들여다본 건 오랜만입니다.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습니다만, 아마 내리라고 쓴 글은 아닐 겁니다. 짧은 분량에 필요한 것만 정확히 놓아두신 솜씨가 좋았습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표기 관련해 눈에 띈 것을 적어둡니다.

  • ‘그때는 그렇게 밖에 생각이 안 들었습니다’ → ‘그렇게밖에’ (붙여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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