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멋대로인 주인공과, 다소 암담한 문체. 공모(비평)

대상작품: 낙원 (작가: 래온, 작품정보)
리뷰어: 윤휘, 1시간 전, 조회 7

※스포일러가 포함된 주관적 감상입니다. 짧지 않은 글이지만 미열람하신 분들은 읽고 오시길 권장합니다.

 

주관적인 별점

스토리 구성: ★★★☆☆ (루프 설계 자체는 정교한 편이다. 다만 그 설계를 떠받쳐야 할 세부가 자주 무너진다.)

인물 매력도: ★★★☆☆ (재율은 아주 좋은 인물이다. 문제는 그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점이다.)

표현 및 묘사: ☆☆☆☆☆ (비문과 오탈자, 그리고 어역이 어색한 표현들이 눈에 띄게 많다.)

진입장벽: ★★★★★ (설정을 독자가 스스로 정리해가며 읽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작업이지만.)

 

 

 

1. 주제에 대한 이야기

 

이 작품의 초점화자는 유이래인데, 나는 읽는 내내 이 인물을 신뢰할 수가 없었다.

 

이래는 인권운동가이자 기자를 자처한다. 그런데 이야기의 시작이 무엇인가 하면, 낙원에 정식으로 들어가기 위해 아랫방에 누운 전신마비 환자를 베개로 눌러 죽이는 것이다. 동의를 받았고, 존엄사에 가깝다는 변명이 붙는다. 뭐, 물론 그 장면에서 이래가 괴로워하는 건 사실이다. 반나절을 게워내고 앓는다. 그렇지만 괴로워했다는 사실이 자격을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그러고 나서 이 인물은 2090년 설명회장에서 이렇게 외친다.

 

“당신들은 무슨 자격으로 살인마를 안개 너머로 밀었습니까?”

 

민 사람들도 살인자이니 그들 역시 안개 너머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표정이 일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정작 그 말을 하는 사람은 목적을 위해 계획적으로 사람을 죽이고 그 자리에 서 있다. 자격을 따지자면 이래야말로 인권을 입에 올릴 처지가 아니다.(사실 “인권”이라는 불완전한 허상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여기서는 인권에 대한 논증은 생략한다.)

 

허나 이래의 문제는 자격보다도 기준의 부재 있다.

 

2200년에 붙잡힌 이래는 재율에게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도덕적 기준은 시대마다 바뀌니, 낙원도 먼 훗날엔 이해할 수 없는 낡은 법으로 기억될 거라고. 그런데 이 논리를 그대로 받으면 이래 자신이 내세우는 정의와 도덕도 함께 바뀐다. 자기가 딛고 선 자리를 자기가 무너뜨린 셈인데, 이래는 그걸 눈치채지 못한다.

 

바로 다음 대목도 마찬가지다. 재율이 자기 어머니의 죽음을 두고 정의를 위해 희생되었다고 말하자, 이래는 그건 그릇된 정의라고 잘라 말한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옳은 정의와 그릇된 정의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방금 도덕 기준은 시대마다 바뀐다고 말한 사람이, 다른 이가 말한 정의만 골라 그릇되었다고 판정한다. 상황마다 편한 논리를 골라 쓴다.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다.

 

설상가상은 2063년이다. 설명회에서 궁지에 몰린 이래는 남은 간이 타임 포탈로 과거로 도망치는데, 그 목적이 재율이 태어나기 전에 그를 지우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만삭의 어머니를 베개로 눌러 죽인다. 아무런 죄도 짓지 않은 사람을, 그의 아들이 훗날 만들 제도를 이유로. 이건 이래가 그토록 비난하던 낙원의 논리와 정확히 같다. 아직 저지르지 않은 죄를 근거로 사람을 처분하는 것. 이래는 자기가 반대하던 원리를 자기 손으로 실행하면서도 끝까지 그 사실을 모른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유형의 인물, 어설픈 논리와 신념으로 가득 찬 인물이 주인공이었다. 그게 너무 안타까웠다. 이 멍청한 주인공의 시점에서 모든 사건들을 전개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진짜 주인공으로 삼아졌어야 하는 인물은 이래가 아니라 재율이라고 본다. 물론, 재율을 진짜 주인공으로 삼았다면 이야기가 재미 없었을 테니, 보다 똑똑한 주인공이 등장했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재율의 논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다. 범죄자는 격리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원칙에 자기 자신도 예외로 두지 않는다. 그는 인공지능 R에게 낙원행 판결을 받았고, 그 사유를 스스로 밝힌다. 간접적으로 어머니를 죽였기 때문이라고.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낙원 바깥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타임 포탈을 손에 쥐고도 떠나지 않는다. 제복을 태우고 검은 슈트로 갈아입으며 말한다. 범죄자가 살아갈 곳은 낙원뿐이라고.

 

그리고 여기서 이 작품의 가장 정교한 설계가 드러난다.

 

2090년의 재율은 이래에게 자기 나이를 스물일곱이라 하고 생일이 두 달 남았다고 말한다. 이래는 그 숫자를 믿고 2063년으로 간다. 재율이 태어나기 전이라 믿고서. 그런데 정작 도착해보니 그 집에는 이미 두 살 난 아이가 있었고, 이래가 떠나는 순간 뒤에서 엄마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재율은 이미 태어나 있었던 것이다.

 

처음엔 계산 착오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마지막 절, 이래를 쏘고 난 재율의 독백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복수를 위해 어머니가 죽게 내버려 두었다는 문장이 나온다. 즉 그는 알고 있었다. 자기가 흘린 숫자를 듣고 이래가 언제로 갈지,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낙원행 사유가 “간접적으로 어머니를 죽였기 때문”인 것도 이 대목에서 비로소 정확한 뜻을 갖는다. 재율은 낙원을 얻기 위해 자기 어머니를 내주었고, 그 죗값까지 자기 몫으로 셈해서 낙원에 남는다.

 

이게 신념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적어도 자기 기준을 자기에게도 아무런 변칙 없이 적용하는 것이라야 신념이라 불릴 수 있다. 반면 이래는 끝까지 자기에게만 관대하다. 그러니 이 작품은 정의를 실현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신념과 가짜 신념이 마주 앉는 이야기로 읽는 편이 훨씬  읽힌다.

 

실제로 작가도 그렇게 배치해두었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래의 1인칭인데, 마지막 절에서만 3인칭 재율로 시점이 넘어간다. 화자가 죽었으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야기의 마지막 시선을 가져가는 사람은 재율이다. 그러니 나는 이 작품의 주인공이 재율이라고 우기고 싶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가 걸린다. 이래의 이 모든 모순이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 그저 인물 설계가 흔들린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의도라면 아주 잘 만들어둔 인물이다. 신념에 사로잡혀 자기 논리의 붕괴를 끝내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 그런데 뒤에 적을 이유들 때문에, 나는 그렇게만 읽기가 어려웠다.

 

 

 

2. 좋았던 점에 대한 이야기

① 루프 설계가 정말 잘 짜였다. 이야기를 시작시킨 물건이 이야기의 끝에서 만들어진다. 짧지 않은 분량에서, 이런 설계를 그리고 접근했음이 확 느껴진 대목이었다.

 

초점화자인 이래가 처음에 받은 익명의 제보와 프로파일은, 마지막 장면에서 재율이 타임 포탈 너머 책상으로 밀어 넣은 서류철이다. 화자가 낙원 첫날에 발견하는 자기 시체도, 벽의 혈서도, 이미지 센서가 관통된 카메라도 전부 마지막 몇 문단에서 재율의 손으로 만들어진다. 이런 폐쇄 루프는 쓰기가 까다롭다. 회수 하나만 어긋나도 독자가 “그럼 이건 어디서 왔나”를 되짚기 시작하고, 그 순간 이야기가 아니라 계산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큰 고리만큼은 어긋남 없이 닫는다. (개인적으로는 재판 장면의 지금까지 당신을 기다려왔습니다라는 한 줄이 압권이었다. 처음 읽을 땐 알고리즘 오류의 증거인 듯이 보였는데, 다 읽고 돌아오면 그 문장이 결말 전체를 이미 말하고 있다.)

 

② 마지막 시점 전환이 아주 좋다. 1인칭으로만 달려온 소설이 화자의 죽음과 함께 3인칭으로 넘어간다. 화자의 죽음을 문장으로 설명하지 않고 형식으로 증명한 것이다. 이런 처리는 한 번밖에 쓸 수 없고, 쓸 자리를 잘못 고르면 사고로 보인다. 작가는 그 한 번을 정확한 자리에 썼다.

 

③ 재율이라는 인물의 일관성이 좋다. 앞서 길게 적었으니 짧게만 덧붙이자면, 반대편 인물의 논리를 허수아비로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 특히 좋았다. 피해자의 인격 말살, 재범 가능성, 대중 투표의 압도적 지지 같은 근거들은 실제로 반박하기 까다로운 것들이고, 화자는 논쟁에서 자주 밀린다. 덕분에 마지막 대면이 성립한다.

 

④ 낙원의 봄을 그린 한 문단이 있는데, 이 문단이 작품을 살렸다고 생각한다. 범죄자만 모아둔 유배지에서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연인이 생기는 장면이다. 화자가 직접 뜻 그대로 낙원이었다고 적는다. 제목의 반어를 한 번 뒤집는 자리이고, 이게 없었다면 이 소설은 그냥 흔한 디스토피아로 끝났을 것이다.

 

 

3. 아쉬웠던 점에 대한 이야기

 

① 문장이다. 개인적으로는 이게 가장 아쉽다. 아니, 아쉽다기보다 읽는 일 자체가 힘들었다고 말해야 맞겠다. 특히 낙원 설명회 장면 이후로는 비문과 어색한 조사, 오탈자가 눈에 띄게 늘어난다. 나는 후반부부터 따로 표시를 해가며 읽었는데, 그 표시가 계속 늘어나는 걸 보는 게 즐겁지 않았다. 설계에 이만큼 공을 들인 원고라면 문장에도 같은 시간을 들일 가치가 있었다고 본다. 이건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퇴고의 문제라, 고치면 그만인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작가님께 감히 한 말씀 고한다.

 

퇴고를 거치지 않은 채, 스스로 소리 내어 읽어보지 않은 글을 올린 건, 독자에 대한 예의가 지나치게 없는 일처럼 비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리뷰의 가장 아래에, “설명회” 장면부터 모아놓은 각종 어색한 표현들과 비문들을 모두 짚어놓았으니(그 전 장면까지는 모아놓을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었기에 포기했습니다.), 부디 우리말 사용과 퇴고에 보다 더 신중을 기해주셨으면 한다.

 

 

② 설정이 허술하다고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다. 읽다가 걸린 것들만 적어본다.

  • 화자는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데 1년을 쓴다. 정확히는 1년 동안 이동한 게 아니라, 1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부산에 간다. 그 1년에 무엇을 했는지가 한 줄도 없다.
  • 시간 이동을 한 뒤에도 화자는 낙원의 검은 슈트를 계속 입고 있는 듯한데, 다른 시간대 사람들이 그 복장을 이상하게 여기는 장면이 없다. 작중에서 슈트는 사실상 낙인이라고 못 박아둔 물건(그만큼 특별한 외관을 갖추었을 것)인데도 그렇다.
  • 그 슈트는 벗으면 견딜 수 없이 가렵고, 배설물까지 처리하도록 몸에 밀착해 있다고 서술된다. 그런데 낙원에서는 연인이 생기고 임신한 여자가 등장한다.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설명이 없다.
  • 2090년 설명회에서 사람들은 살인마를 안개 너머로 밀어 넣는다. 그런데 낙원은 2100년부터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2100년으로 사람을 보낸다는 게 어떻게 성립하는지 모르겠다. 미래에서 과거인 2100년으로 보내는 건 이해가 되는데, 그 반대는 어불성설 아닌가.
  • 그리고 이게 가장 크다. 화자는 낙원에 억울한 사람들이 있다는 전제로 움직이는데, 작중에서 억울한 사람을 직접 만난 적이 없다. 제보로 받은 프로파일이 있을 뿐이고, 실제로 만난 이들 중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없다. 낙원 첫날 골목에서 억울하다고 중얼거리던 남자조차 방금 노인을 때려죽인 참이었다. 화자 스스로도 그 장면에서 정말 억울한 사람이 있을지 의심한다. 그런데 그 의심이 이후 한 번도 해소되지 않은 채, 억울한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전제만 계속 굴러간다. 물론 새로 태어난 생명들은 분명히 억울하겠지만, 그 생명들 외의 존재들의 억울함이 실제인지 아닌지가 증명되지 않는다. 주인공의 행동 근거가 끝까지 확보되지 않는 것이다.

 

③ 화자의 진짜 동기가 마지막 쯤에만 나온다. 이야기 내내 화자는 인권운동가로서의 사명을 동기로 내세우는데, 2200년에 이르러 갑자기 아버지를 만나려던 꿈이 무너졌다고 말한다. 억울한 사람을 구하겠다는 명분 아래에 아버지와 살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다는 고백이다. 이 뒤집기는 주제와 아주 잘 맞는다. 문제는 앞에 복선이 하나도 없다 것이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낙원에 있는지, 어떻게 만날 셈이었는지 어디에도 없다.  문장이 전부다.  정도 무게의 반전이라면 앞에 최소한 한두 번은 그림자가 비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회수되지 않은 것들이 있다. 시우가 대표적이다. 3000년대에서 왔다고 뜸을 들여 답하고(그런데 이 말을 들은 이래는 곧바로4000년대를 곱씹었다”고 받는다 – 이게 무슨 표현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화자가 2063년에 있을  근처에 있다는 알림이 뜨고, 2200년에는 낙원에서  모습 그대로 제복을 입고 나타나 당신이 있었기에 낙원이 만들어졌다고 말한 뒤, 갑자기 총에 맞아 죽는다. 가장 궁금한 인물이 아무 설명 없이 퇴장한다. 뭐, 혹시 화자가 찾던 아버지와 관련된 인물로 설계했다가 방향을 놓친  아닌가 짐작해보기는 했는데, 시우는 화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인물이니 아버지여서는 안 될 것이다. 재율의 집에서 시우를 사살하고 화자를 데리고 나가는 정체불명의 사내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자리를 알고 찾아왔는지,  정작 재율은 전혀 경계하지 않고 화자만 데리고 나가는지  수가 없다.

 

 2063년에 도착한 직후 화자는 그날을 2063년 4월의 어느 일요일이라고 못박는다. 그런데  문단 뒤에 해가 짧지 않은 6월인데 벌써 어둑했다고 쓴다. 중간의 시간이 통째로 생략된 것으로 보이는데,  사이에 무엇이 있었는지가 없으니 독자로서는 어긋난 것인지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다. 이는 전반적으로 문단 구성을 다시 하거나, 문단과 문단 사이에 ” * * *” 표시를 넣어 시간의 건너뜀이 있음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할 듯하다.

 

 

 

4. 제목에 대한 이야기

 

「낙원」. 

 

단어 하나짜리 제목인데, 작품이  단어를 여러  뒤집는다.

 

처음에는 반어다. 유배지 이름이 낙원이라니. 여기까지는 흔하다. 그런데 앞에서 적었듯 작가는 낙원의 봄을 그리면서 정말로 낙원이었다 적어버린다. 반어가   뒤집힌다. 그리고 2200년 12월, 헬기와 미사일이 낙원 주민을 몰살하는 장면에 이르면    뒤집힌다. 낙원 안이 지옥이었던  아니라, 낙원을 만든 바깥이 지옥이었다. 마지막으로 재율이 떠날  있는데도 남으면서, 낙원은 그가 스스로에게 내린 형벌의 이름이 된다. 쫓겨나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걸어 들어가는 이야기 끝난다. 중간에 화자가 2090년을 두고 인위적으로 조성된 공원 같다고 말하는 대목도 있는데, 낙원과 공원이 겹쳐지는 자리라 재미있게 읽었다.

 

이만하면 좋은 제목이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게 된다.

 

이 제목조차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이기 때문이다. 좋게 읽으면 방금 적은 네 겹이 전부 계산된 것이고, 나쁘게 읽으면 그저 소재의 이름 한 단어를 옮겨 붙인 것뿐이다. 그리고 나는 이 작품을 읽는 내내 그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화자의 모순이 의도인지 사고(캐릭터 설정의 부실)인지 알 수 없었던 것과 똑같은 이유에서다.

 

참 가슴 아픈 말이지만, 작품이 정교한지 허술한지를 독자가 판정할 수 없게 되는 상태, 그게 이 소설의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루프는 어긋남 없이 닫히는데 그 안의 설정은 헐겁고, 인물의 논리는 무너지는데 그 무너짐이 설계인지 알 수 없고, 결정적인 반전은 준비 없이 튀어나온다. 그러니 잘 만든 부분을 만나도 마음 놓고 감탄하기가 어렵다. 우연이 아닐까 의심하게 되기 때문이다.

 

퇴고가 해결해줄 문제라고 본다. 문장을 다듬고, 설정의 구멍을 메우고, 아버지에 대한 복선을 앞쪽에 두어 갈래를 하나로 정리하면, 이 작품은 지금보다 훨씬 단단해질 것이다. 재율이라는 인물과 마지막 시점 전환은 그럴 가치가 충분한 재료다.

 

 

 

5. 기타 개인적인 이야기

 

세 번째로 써보는 리뷰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다 읽는 데 네 시간 반이 걸렸고, 수월한 독서는 아니었습니다. 중간에 몇 번이나 멈춰서 기록해두거나 확인해야 했으니까요. 그럼에도 리뷰를 쓰기로 한 것은, 다 읽고 나서 재율이라는 인물이 오래 남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세운 기준을 자기에게 먼저 들이대고  결과까지 감수하는 인물은 흔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제복을 태우고 슈트로 갈아입는 장면은, 문장이 다듬어졌더라면 훨씬 크게 울렸을 겁니다. 그리고 이런 인물과 서사를 설계할 수 있는 “아이디어” 작가가 글 솜씨까지 탑재하게 될 그날이 기대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쉬운 점을 길게 적었지만 결국 하고 싶은 말은 그것입니다. 아까운 원고입니다. 감사히  읽었습니다.

 

<표기 관련해 눈에 띈 것들을 적어둡니다.>

‘프로잭트 낙원’ → ‘프로젝트’

‘대답하지 못헀다’ → ‘못했다’

‘호첼 직원’ → ‘호텔’

‘자신 떄문에’ → ‘때문에’

’19충 버튼’ → ’19층’

‘기색이 여력 했다’ → ‘역력했다’

‘선전됨이라는 글씨’  문맥상 ‘선점됨’인 듯합니다.

 

<그리고 설명회 장면 이후의 어색한 문장 표현들을 모아둡니다. 모쪼록 작가님의 향후 작품 활동에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비문>

(4) 설명회
– 당일 오후 2시부터 설명회 장소에 도착했다.
– 핵심은 갱생 불가능한 범죄자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 “범죄자에 인권을 신경 쓰던 과거가”

(6) 2200년 12월 29일
– 아마도 내게 보여준다는 건 범죄로 피해를 보았겠지. => 아마도 내게 보여준다는 건, 범죄로 피해를 받은 아이라는 거겠지. (주술 호응이 안 되는 문장)
– 이해하기를 포기한 시간대가 안개와 함께 손짓했다. => 이해받기를 포기한 시간대가 ~ (시간대가 누군가를 이해하는 게 아닌 경우라면.)

(7) 2201년 1월 1일
– 아직도 낙원이 잘못된 가치입니까? => 아직도 낙원은 그릇된 곳이라고 생각하세요? (낙원 자체가 “가치”가 아니라, “가치 있는 곳” 정도에 해당한다고 봄)
– 억울한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서라는 목적 아래는, 나 역시 아버지와 살아가기 위해서라는 욕구 해소에 불과했다. => 억울한 사람을 구한다는 명분 아래 있던 건, 아버지와 살고 싶다는 내 욕구에 지나지 않았다. (주술 호응 안 되는 문장)
– 내가 지내던 집에 도착하려면 서울역을 걸어오기에 => 내가 지내던 집에 도착하려면 서울역에서 걸어오기에 (비문)

어색한 문장이나 표현>

(4) 설명회
– 어쩌면 훼방을 위해 부족함 없는 준비를 하느라 바빠서였는지도 몰랐다. => 어쩌면 훼방을 놓으려 부단히도 준비를 하느라 바빠서였는지도 모른다.
– 모든 것이 비밀에 싸인 프로젝트 => 베일에 싸였거나, 비밀에 부쳐진 것이다.
– 100석 남짓한 자리를 절반 채 채우지 못했다. => 100석 남짓한 자리를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 벽에 파란 선이 펼쳐지며 내부에 공간을 넓혀갔다. => 벽에 파란선이 그어졌고 점차 두꺼워지며 벽을 채웠다.
– 이내 안개가 일렁이는 벽 내부를 가리키며 흥분한 사람들을 부추겼다. => 이내 재율씨는 안개가 일렁이는 벽 내부를 가리키며 흥분한 사람들을 부추겼다.
– 사람들이 침대 채로 안개 너머로 밀었다. => 사람들은 그 말에 침대 채 살인마를 안개 너머로 밀어버렸다.
– 불길함을 파악했을지도 모르겠다 => 불길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 내일부터 일주일 간 있을 국민 투표를 위해, 주제를 설명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 내일부터 일주일간 열릴 국민투표에 앞서, 안건을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대통령의 어역에 어울리지 않음)

(6) 2200년 12월 29일
– 나를 데려왔던 남자가 후자 편에 속해서 내 말에 의견을 덧붙였다. => 나를 데려온 남자가 나만 돌려보내자는 데에 힘을 실어주었다. (“전자”와 후자”로 사용하기 어색함)
– 총기를 든 후자 파 뒤에 선 노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 총기를 든 한 노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노인이 어느 쪽 입장을 얘기하는 것인지 불분명함. “후자”라는 표현은 어색함)
– 타임 포탈을 두고 내게 총구를 겨누었던 이가 재율씨 앞으로 다가가 논했다. => 타임 포탈을 두고 내게 총구를 겨누었던 이가 재율씨 앞으로 다가가 목소리를 높였다. (논했다고 하려면, “~에 대해 논했다”고 써야 하고, 지금 상황이 “논하다”라는 상황과는 맞지 않음)
– 혼란스러움이 가중되었다. => 상황은 더 혼란스러워졌다. (지나치게 객관적이고 관찰자적인 서술이 어색함. “좆됐다”는 말을 내뱉는 사람이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혼란스러움이 가중되었다”고 말하면 캐릭터 일관성이 없음. 이 부분 외에도 어역이나 캐릭터에 맞지 않는 문어체 표현이 많음)
– 목에 칼을 맞아 죽은 군인 시체가 검은 슈트를 입은 시체 아래 감추어졌다. 끄집어내어 군복을 벗겨냈다. => 검은 슈트를 입은 시체 아래에 목에 칼을 맞아 죽은 군인 시체를 끄집어내어 군복을 벗겨냈다. (시점의 일관성을 해치고 있는 문장의 대표 사례)
– 학살 끝에 즐비한 시체와 ~ 상황을 채 이해하지 못했다. => ?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기 어려움)
– 나는 틈을 노려 죽은 군인 시체를 뚫고 도망쳤다. => 나는 틈을 노려 총알밭을 피해 도망쳤다. (시체를 뚫고 도망친다는 표현은 오류임)
– 미사일이 만든 먼지가 뒤섞일 수 있는가. => 미사일이 만든 먼지가 안개에 뒤섞인 것 같았다. (누구한테 묻고 있는 건지, 아니면 감탄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음)
– 가상화면에는 내가 재판받기 위해 만났던 인공지능 재판관 R이 있었다. => 가상화면에는 나를 낙원으로 보내버린 인공지능 재판관 R이 있었다. (“내가 재판받기 위해 만났다”가 아니라 “재판과정에서 만났다”가 맞기 때문)
– 인공지능 R에게 부여된 성격은 미래 예측입니다 => 인공지능 R에게 부여된 능력은 미래 예측입니다. (미래 예측이 “성격”에 해당하지 않음)

(7) 2201년 1월 1일
– 재율씨가 낙원을 만든 이유로 분노를 삭이고자라며 비난했던 순간에 용서를 빌었다. => 재율씨가 낙원을 만들었던 이유, 제 분노를 삭이고 자라온 시간들에 용서를 빌었다.

 

오타>

(4) 설명회
– 욕설과 고성방가가 오갔고 => 욕설과 고성이 오갔고(고성방가는 술 취해 노래부르는 소리입니다)
– 여러분 모두 함께 이 자를 안내 너머로 => 안개 너머로
– 자신 떄문에 => 자신 때문에

(5) 2063년
– 밤이라서 인가 => 밤이라서 그랬을까

(6) 2200년 12월 29일
– 자리를 텄다 => 자리를 떴다 / 자리를 비켰다 / 길을 터주었다
– 나만이 타락해졌다. => 나만이 타락했다.
– 끔직하기 이로 말할 수 없었다 => 이루 말할 수 없었다.
– 낙원의 한계에 부딪혀 범죄자를 영구 격리에 실패한 => 낙원의 한계에 부딪혀 범죄자 영구 격리에 실패한
– 장정 대여섯 명이 다가와 모든 이들을 떼어 내주었다 => 장정 대여섯 명이 다가와 모든 이들을 떼어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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