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적인 꿈을 꾸는 사람을 위한 찬가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위대한 침묵 (작가: 해도연, 작품정보)
리뷰어: 마음의풍경, 17년 9월, 조회 117

(이 글은 읽기에 따라 스포일러일 수 있습니다.)

형이상학의 폐기를 선언한 철학자가 있었다. 그는 당대에 ‘천재’ 소리를 들었다. 선언은 그러나 생각의 칠판에 전혀 놀랍지도 새롭지도 않은 선 하나를 그은 것일 뿐이었다. 그는 형상과 질료, 이데아, 범주, 물자체 이런 것들을 치워버리고 싶어 했지만 허황된 시도였다.

인간은 한때 수학 내지 과학이라는 지식체계를 통해 종교나 철학과 결별한 듯 보였다. 그러나 오늘날, 종교나 철학의 주제들이 엉뚱하게도 과학의 그림속에 등장한다. 아니,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되고 있다.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AI는 점차 뇌과학과 이종교배를 시도하고 있다. AI를 하기 위해서는 뇌과학이 필요하고 우리가 AI를 설계하면서 우리 뇌가 움직이는 방식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칸트는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12개의 범주를 활용해 경험을 ‘구성한다’고 말했고, 그 건너에 있는 물자체(ding an sich)는 우리가 접근할 수 없다고 했다.

그의 아이디어는 과학에서 입증되었다. 우리의 시각은 인공지능 처럼 여러 ‘층’의 신경망으로 들어온 신호를 해석해 종합하는 것일 뿐 세계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물을 신속하게 인지하는 것은 우리 머리 속에 이미 들어있는 해석틀 – 사람 얼굴에 대한 틀, 강아지에 대한 틀, 고양이에 대한 틀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칸트가 말했던 ‘범주’와 다르지 않다. 인공지능 왓슨은 그 범주를 학습하기 위해 빅데이터를 활용한다.

물리학은 어떠한가? 나눌 수 없는 단위, 한 때 사람들은 고대 현자들이 붙였던 이름 원자를 원자에 성급하게 붙였는데 그것이 실수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원자가 양성자, 중성자, 전자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런 원자의 구성품들이 ‘입자가속기’를 통해 충돌하면 더 작은 알갱이로 쪼개진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게다가 ‘물리’는 지금 통일되어 있지 않다. 입자인지 파동인지 그 구분이 유효한지 알지 못하고 큰 천체들에서 작용하는 ‘중력’과 작은 알갱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강한 핵력’이 어떻게 조화되는지 알지 못한다.

수포자로 과학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나의 이해는 대략 이러하다. 입자가속기를 통해 관찰되는 ‘쿼크’에 대해 ‘플레이버(맛)’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보면, ‘평평한 판 아래에 거대한 뱀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과거 인간의 세계 이해와 지금의 세계 이해가 과연 본질적인 차이는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지금 우리는 좀더 촘촘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다르고, 좀 더 멀고 자세하게 바라보게 되었지만 여전히 세계는 비밀 속에 감추어져있다. 게다가 과거에 사제들이 정보를 독점했던 것 처럼 현대인들은 그 비밀에 관해 아는 것들이 별로 없다.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는 서론이 아니다. <위대한 침묵>이라는 작품이 자리잡고 있는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이 작품의 의미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이런 장황한 이야기가 꼭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SF는 꿈을 꾸는 장르이다. 게다가 비밀에 감추어진 언어를 해석해 듣고 볼 수 있게 풀어내는 헤르메스의 장르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렵다. 아서 클라크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위대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 그는 인류의 의미에 대해 신은 무엇인가에 대해 존재론적인 질문을 했고 두 번째, 그는 당대의 과학적 성취들을 섭렵한 뒤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상상력을 보여줬다.

<위대한 침묵>은 우선 과학적 사실에 기반해 이야기를 끌고간다. 중력과 중력파에 관한 고찰, 그리고 ‘입자가속기’가 이뤄낼 성취에 대한 상상이다. 그리고 경고한다. 유럽에도 우리나라에도 있는 가속기가 인류에게 엄청난 재앙이 될 수 있음을. 아인슈타인이 핵무기를 염두에 두고 그 유명한 방정식을 만들지 않았듯이, 입자가속기는 인류에게 어떤 결과로 나올지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있다.

<위대한 침묵>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문명이란 무엇인가? 이 광활한 우주에 확률적으로 인류보다 더 진보된 문명이 있어야 마땅한데, 왜 그들은 찾아오지 않는가? 왜 우리는 그들의 신호를 받지 못하는 것일까?

내가 좋아하는 미드 <배틀스타 갤럭티카>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순환론적으로 했다. 신은 있고, 문명은 여기서 창발하고 사라지며 다른 항성계에서 다시 꽃핀다.

<위대한 침묵>은 말한다.

문명은 있었다.

그러나 사라졌다.

너희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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