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나중에는 재능보다는 열정이 앞선 사람의 글이라고 평가했다.
많은 독자님들이 필자의 글을 평가할 때 하셨던 말씀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 시절의 나는 열정이 재능보다 아득히 앞섰다.
노르바 작가님의 소설 <식상한 이야기>는 참 신기하다. 자꾸만 내 과거를 곱씹고 추억을 맛있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 아마 내가 작중 주인공들과 같은 작가여서 아닐까?
그래서 자연스레 내 이야기를 해본다. 어릴 적에는 내 뇌에서 상상의 나래를 마구 펼쳤더랬다. 전민희 작가님의 <룬의 아이들 윈터러>와 조 홀드먼의 <영원한 전쟁>을 읽고 정령과 인간이 공존하는 평행 세계에서 자유롭게 1차 창작과 2차 창작 펼치기를 십여 년. 그 시절, 서점과 도서관에 꽂힌 장르소설은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문이자 구원이었다.
우재가 글을 쓰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때부터였다.
…
문창과에 들어간 것은 반쯤은 우연이었고 반쯤은 친구 현수 때문이었다.
…
현수는 고등학교 동창이었고, 같은 문예동아리 부원이었다.
필자도 우연의 일치로 본작의 등장인물 ‘우재’처럼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필자의 문장력을 칭찬하기에 ‘나도 동경하는 작가님들처럼 되고 싶어서’ 집필을 시작했다. 즐거웠다. 죽마고우와 함께 글을 써내려가며 작가의 꿈을 좇던 그 시간이. 판타지와 SF까지 장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서로의 글을 읽어주고 깔깔 웃어댔다. 둘은 문제아지만 최강이었다. 무서울 게 없는 나이였다.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맞아, 나 재능은 없어. 그래서 어쩌라고?”
그리고는 다시 썼다.
나는 미친 듯이 글을 썼다. 친구가 절필을 선언하고 내 곁을 떠난 그 순간에도 나는 신작을 집필하고 있었다.
현수는 서른하나에 죽었다.
그 친구의 근황은 잘 모른다. 다만 친구가 아니었다면 나는 결코 소설을 이토록 오랫동안 쓰며 사랑하지 못했으리라. 친구를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 한켠이 아린다. 내가 조금만 더 소설보다 친구를 신경 썼더라면 어땠을까? 우문이다. 나는 다시 돌아가도 친구보다 소설을 선택할테니까.
누군가 나를 바보 취급하더라도 너만은 언젠가 내 글을 읽어줄테니까.
현수는 그걸 알았던 것이다.
처음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