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실직자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1박 2일의 시골 여행기 공모(감상)

대상작품: 담을 수 있는 만큼의 기적 (작가: 아침은삼겹살, 작품정보)
리뷰어: K Rimmer, 2시간 전, 조회 10

*리뷰에 이 소설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소설을 읽지 않은 분들은 유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삶이란 한없이 연약해서 깨지기 쉬운 도자기 그릇과 같다. 손 한번 삐끗하면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난다. 삶의 의미는 한 열 번쯤 왜 라는 질문으로 집요하게 파고 들면 끝내 의미없음이란 허무에 귀결된다. 삶의 본질은 무가치한 것이며, 무가치하기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의 의미와 가치를 애써 붙잡으며 살아간다. 하루하루 팍팍한 현실을 견뎌가며 살아 감을 아름답다고, 숭고하다고 칭송하지만 실은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음을 겸허히 인정한다. 아니면, 그런 생각조차 할 겨를도 없이 그저 먹고 살기 위해서 살아간다고 말한다. 사실 그렇다. 삶이란 그저 살아 있기에 목숨 다할 때까지 그저 살아가는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삶에서 작은 성취와 만족, 기쁨, 소소한 즐거움에 웃는다. 이 작고 소소한 행복들 때문에 사는 것이라 하기엔, 너무나도 작고 소소한 것들이다. 삶의 긴 여정 속에서 이 행복들은 시골의 간이 버스정류장처럼 드문드문 우리를 맞이한다. 그 사이에는 아주 긴 고통과 무의미함이 있을 뿐이다.

모든 건 둑카(Dukka)다. 일체개고라고 중국에서 한자로 번역이 된 이 붓다의 말은 무려 2500년전의 말. 모든 건 내 뜻대로 되지 않으므로 고통이라는 의미다. 붓다의 말대로 삶은 내 뜻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간혹 모든 게 술술 풀리는 때도 있겠지만 그러나, 누구나 그게 늘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잘 알 것이다.

 

이 소설은 중소 모바일 게임회사에서 웹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한 젊은 여성-서조의 실직으로부터 시작된다. 실직이란 이벤트는 시한부 암 판정이나, 맞은 편 차선에서 중앙분리대를 뛰어넘어 운전석으로 돌진해오는 차량으로 인한 갑작스러운 죽음에 비견할만한 삶의 안정성을 깨뜨리는 외부의 충격이다. 우리는 자신의 일상이 얼마나 깨지기 쉽고 연약한 것인지를 잊은 채, 매일을 살아간다. 어떤 새로 나온 드라마가 재미있다는 소문을 듣고 OTT를 덥썩 구독하고, 스타벅스에서 아무 생각없이 한끼 식사와 맞먹는 비싼 커피를 매일 사먹는다. 서점에 들러 요즘 뜨는 신간을 호기롭게 구입해놓고, 집 어딘가에 쳐박아놓고 몇달 째 읽지 않는다. 사는 게 바쁘고 여유가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그렇게 삶은 다람쥐 챗바퀴 돌듯 기계적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어느날 권고사직으로 실직하거나, 건강검진을 받은 병원에서 6개월 시한부 암 판정을 받고 퇴근하여 집에 가는 길에서 중앙선 침범해온 맞은 편 차량의 충격으로 중상을 입고 하루 아침에 반신불수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앞을 알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서, 모든 게 확실하고 안정적인 것마냥 믿으며 오늘 하루의 안락함과 정신과 몸의 건강함, 여유로움이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가정하며 살아간다. 외부의 충격은 마른 하늘에서 벼락이 예고없이 내리치듯 불현듯 이러한 나이브한 믿음에 균열을 내려한다.

서조의 사직 하루 전 날 그녀의 파트장은 모든 게 잘 될거라고 말한다. 실력이 있고 젊으니 금방 다른 게임회사로 이직할 수 있을거라고. 일체유심조라는 말도 있지 않냐고 위로하지만 서조에겐 그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이미 마음이 닫히고 좁아질대로 좁아졌기 때문이다. 실직으로 상처입은 서조의 마음은 위축되고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진 채, 유튜브에서 본 어느 읍내의 풍경에 이끌려 그리로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읍내에 내려 어느 모텔에 숙소를 잡고 유튜브를 보며 맥주도 마시고 하릴 없이 시간을 보낸다. 유튜브에서 말한다.

왜 어떤 말은 너무 늦게 이해될까.

사람은 아는만큼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우리에게는 왜 ‘기적’ 같은 말이 필요할까.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 양장피에 빼갈을 주문하여 먹는다. 아무도 없는 시골 읍내의 한 모텔방에서 유튜브를 틀어놓고 홀로 양장피에 빼갈을 마시다가 눈물이 왈칵 쏟아져 어깨를 들썩이며 밤새 운다. 다음날 부은 눈으로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어떤 할머니가 멀찍이 앉아 있다가 그녀에게 다가와 휴지를 주며 말한다. 부처님의 말씀이 적힌 것이라고 하며 말없이 돌아선다. 휴지에는 ‘해골물의 깨달음, 원효를 만나는 곳, 00사’라고 적혀 있었다.

서조에게 일어난 작은 기적은 무엇이었을까? 삶이 깨지기 쉬운 도자기 그릇과도 같이 연약하다는 것, 마음이 수많은 잡념과 욕망 그리고 증오로 가득 차 있다면 그 어떤 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는 깨달음이 아니었을까? 한바탕 밤새 모텔에서 펑펑 울고 난 뒤, 서울로 가는 버스 정류장까지 걷는 동안 그녀는 어젠 보지 못했던 가로수들과 논밭의 새들이 눈에 들어옴을 깨닫는다. 마음이 정화된 후에, 서조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빛깔부터 달랐다.

기적이란, 별다른 게 아닐 것이다. 마른 하늘의 날벼락처럼 내리치는, 삶에 대한 거짓된 안정감과 믿음에 균열을 내며 도끼로 내려찍는 실직, 암, 교통사고와도 같은 계기로, 우연히 닿게되는 <겸허해진 마음, 비워진 마음>이 곧 기적일 것이다. 어느날 횡단보도의 녹색불이 켜지자 한 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걸어가며 다른 고사리 손을 높이 들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삶은 얼마든지 연약하고 무가치해도 좋다. 아이가 손을 올리며 엄마의 손을 붙잡고 아장아장 걸어가는 그 광경을 보던 순간에 느낀 충만감은 삶의 길고 짧음과는 무관한, 그 자체로 완벽한 행복이며 이미 완성된 의미이다. 삶이 아무리 불확실하고, 뜻대로 되지 않아 고통스럽다 하여도 드문드문 펼쳐져 있는 이러한 아름다운 삶의 순간에 채워진 충만감으로 삶은 비로소 가치를 획득한다. 욕망으로 점철된 기대치를 완전히 버리고, 무가치함과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삶의 순간 순간에 얻어지는 충만감, 작은 행복만으로도 목숨 다하는 날까지 이 생(生)이라는 축제, 유희를 그 어떤 외부의 충격에 좌절하거나 무릎꿇지 않고서 유유히 웃으며 마칠 수 있을테니. 기적을 원한다면 그 원하는 마음마저 겸허히 내려놓고 텅 비워져라. 무의미함, 무가치함을 받아들여라. 그 텅 빈 자리에 어느새 기적이 공기처럼 너를 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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