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의 궤도: 장르의 궤도 공모(비평)

대상작품: 망각의 궤도 (작가: 김서윤, 작품정보)
리뷰어: 창궁, 2시간 전, 조회 8

작품 전체를 포괄하는 띄어쓰기 문제는 댓글로 이미 지적했으니 바로 넘어갑시다.

이 작품은 요약하자면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생존의 최소 조건까지 이르는 이야기

다만 이르는 방식은 하드SF답진 않고, 호러 소설로서 전개됩니다. 줄거리는 간단하죠. 우주선 고장으로 고립된 주인공이 살아남기 위해 ‘기억’을 대가로 포기하는 과정이 전부입니다. 에필로그에 배치된 구출 장면은 과정에 대한 결과물을 제시함으로써 독자에게 ‘인간을 분해한 실체’를 보여주려는 의도가 다분히 보입니다.

장르는 크게 두 축으로 세워집니다. 배경이 되는 우주선, 고립, AI로 위시되는 SF, 그리고 폐쇄된 공간과 기억을 절제 당하며 자아가 해체당하는 실존적 공포를 다루는 호러. 태그로는 하드SF와 심리호러가 달렸지만, 일단 하드SF는 아닙니다……

하드SF에 대한 많은 의견과 정의역이 있겠지만, 저에게 있어 하드SF란 고증 그 자체보단 ‘과학적 정합성’을 얼마나 추구하느냐… 다시 말해 논증 과정에 대한 매끄러움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논증은 대체로 현실의 논리에 기반하고 있고요.

하지만 이 작품에는 논증이랄 게 없습니다. 갇혔고, 기억 절제를 제안 받고, 승낙했고, 기억 절제를 당했다. 이게 전부입니다. 문제 해결을 위한 가설 수립과 실험, 관찰, 추론과 검증 등은 없습니다. 어느 의미론 호러 소설에서 함부로 나오면 안 되는 부분이기도 하죠. 감정을 배제해야 하는 이성의 영역(추론과 검증에 기반한 과학적 정합성)과 이성을 배제해야 하는 감정의 영역(공포)은 상극이니까요.

음,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을 SF로서 읽는 건 다소 부적절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굳이 고증의 문제를 따지자면, 뇌가 에너지를 그렇게 잡아먹는 이유는 기억 때문이 아니라 항상성 유지 측면 때문입니다. 네, 뭐 이런 부분은 적당히 전개를 위한 편의적 설정으로 넘어갈 수 있어요.(이미 이 시점에서 하드SF는 아니지만)

하지만 전개 측면에서 이미 갇힌 지 하루 만에 패닉이 온 주인공이 40일을 더 버티는 것이나, 그 이후로 기억을 조금씩 잘라내며 몇십 일을 계속 버티는 건…… 상당히 비현실적이죠. 할 것도 많고 정신없이 시간 보낼 게 많은 현실과 달리, 그 비좁은 공간에 갇혀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채 24시간만 보내더라도 여러모로 문제가 안 생길 리 없으니까요.

호러로서도 얘기를 해보자면, 생존을 위해 자기 자신을 절제해야 하는 상황 자체는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살아남기 위해 자기 자신조차 죽일 것이냐, 자기 자신으로서 남기 위해 죽을 것이냐. 하지만 딜레마는 짧게 다뤄지고 자아를 절제하는 과정이 분량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공포를 다루는 과정 자체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자연스럽게 과거를 회상하며 주인공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되짚으면서, 그 되짚은 과거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아이러니함이 독자에게 하나의 매력(공포)로서 다가오게 되니까요.

다만 작품이 전체적으로 상당히 직설적입니다. 비유하자면 영화를 보는데 자꾸 옆에서 장면마다 해설을 해주는 느낌이랄까요. 독자의 상상력을 좀 더 믿으실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설명이 하나의 글의 구성으로서 매력적으로 다가오면 모르겠지만, 제가 글에서 받은 느낌은 “독자의 오해를 줄이기 위해” 작가가 직접 나선 설명들로 읽혔습니다.

하지만 오해 좀 하면 어때요? ‘살기 위해 자기 자신을 죽인다’는 역설적인 상황은 이미 제시가 됐고, 그 안에서 독자가 무엇을 이해하고 무엇을 받아들일지 조금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랬다면 조금 더 풍부한 호러 소설이 됐으리라 생각합니다. 지금은… 관광 가이드를 따라 “어때요? 무섭죠?”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받는 기분이 들거든요.

요지는 ‘보여주기만 하라’입니다. Show, don’t Tell은 유명한 경구잖아요? 작가님이 제시하는 이미지 자체는 충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자료조사와 사유가 좀 더 보충된다면 좋겠지만요) 그러니 이미지를 조금만 더 믿으시고 설명을 줄이신다면, 독자도 마음 편히 독해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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