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추리물이었어요. 정석과도 같은 탐정-조수-수사관의 모습이었다고 생각해요. 탐정은 사건을 해결하고 조수는 그렇게 해결된 사건을 관객(독자)의 시선에 맞춰 해설해주고 수사관은 무대 셋팅을 위한 잡일들, 용의자 모으기 및 단서 보관과 헛다리 짚기 등을 하지요. 더스번 칼바랑경이 훌륭한 탐정인가에 대해선 따질 여지가 있지만 모든 것을 해결할수 있으니까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죠. 독자 입장에서 따라가기 어렵지만 조수 역할의 사란디테도 있고 무엇보다 탐정의 천제성은 따라가지 못하는게 당연한 것이니까요. 성실한 수사관인 스벤터 경을 레스트레이드 옆에 놓는건 좀 미안하긴 하지만, 작품을 추리물로 성립시키는 훌륭한 장치라고 생각해요. 임사전언이 계속해서 법적 효력이 있는 1호 증거물을 유지한 것에는 스벤터 경의 헌신이 있는 것이죠.
사서는 대단히 흥미로운 요소였는데 작품들 전반에 등장하는 말놀이를 위해 등장시킨 것인가 하는 느낌이 좀 들었어요. 현학적이면서도 곱씹으면 뭔가 재미가 있지만 아 정말 필수적인 거였나요? 라고 물으면 좀 웃으며 얼버무리게 되는 그런 것이죠.
하지만 책을 다 덮고 생각나는 질문은 하나였어요.
작가님. 혹시 팬덤 사이에 악의적인 농담중 하나인 이영도 씨는 그저 감농사를 짓는 촌로에 불과하고 동생이 진짜 작품활동을 하는 것이라는 썰을 알고 계시나요? 당연히 작가 본인에게 하기엔 무례하고 작품이 자주 나오지 않는 다는 것을 농담으로 승화한 것이라고 해도 적절하지 못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하지만 떠오른걸 어쩔순 없는 노릇이니까요.
물론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은 들을수 없겠죠. 이영도 작가는 sns활동을 하지 않기로 유명하고 작품안에 모든 것을 설명해 놓는 타입이니까요. 그러니 마치 모든 작품을 임사전언 처럼 쓰는 작가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작중에서 임사전언은 어떤 평론가의 비난도 피할수 있기에 작가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글이라는 평이 있는데 이를 뒤집으면 독자 또한 작가의 항변을 두려워하지 않고 무엇이든 말할수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을거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반성을 좀 하게 됩니다. 이런 상당부분 무례할 수 있는 질문을 하는 것이 그런 관계성에서 나오는게 아닐까요. 질문이라지만 다음작품을 내지 않는 것에 대한 일방적인 원망이니까요.
생각해 보면 이영도 팬덤과 이영도와의 관계는 늘 그래왔던거 같아요. 우리는 언제나 인간 이영도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었죠. 인간 이영도를 잡아라. 그의 모든 사회적 기반을 파괴하고 관계를 말살해 작가 이영도만 남겨놓고 영원히 글을 쓰게 하리라. 독마새면 더 좋고.
이 글을 읽으시는 팬중에 아니 저는 그정도는 아니었어요. 당신이나 그런 것입니다 라는 반문을 준비하시는 분이 계실거 같네요. 일전에 감나무 농장에 불을 질러야 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나 떠올려 봅시다. 우리는 그랬죠 아무래도.
그렇기 때문에 저는 어스탐 로우와 이영도를 상당부분 등치시켜서 이해했어요. 그런 독법도 있는 법이고 꽤나 재밌어요. 우리가 그를 사람으로 대접해 왔는지 어떤 현상 같은 것으로 이해했는지를 고민한다면요. 세티카 로우는 계속해서 현상은 예술이 아니라고 주장했지요. 정확히는 예술로 성립하기 위해선 사람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해왔는데 우리가 작가를 사람이 아니라 현상으로 대한다면, 심지어 그것은 작품이 대단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라 해도 어떤 현상으로 취부될 일이지 예술은 아니라고 볼 수 있지 않나요? 물론 시작이 출발이기 때문에 신성화 된 것이라 볼 수도 있지만 단순히 빠그라진 무언가로 생각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요. 어스탐 로우 본인도 작가와 작품은 다른 것이라고 딱 잘라 이야기 했지만 어스탐의 말은 아무래도 언데드의 사악한 음모인 편이고, 세티카의 말은 따져볼 여지가 있는데다가 무엇보다도 대단히 아쉽게도 이전에도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이영도씨와 개인적인 친분을 쌓기는 어렵기 때문에 계속해서 현상으로 대할거 같긴 해요. 하지만 자중해야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트위터(현 x)에서 이영도 작가의 최애를 묻는 질문이 올라왔는데 세티카 로우라고 생각해요. 이유는 제가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작가가 뭘 알아. 아니 작가는 당연히 많은걸 알지만 이미 해줄 말은 다 해 줬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해석은 제 몫이고 임사전언을 남긴 시체는 그 해석의 체점을 해주는 대신에 영면에 들 노릇이죠. 물론 제가 정말로 해석을 기깔나게 해서 타자가 된다면 좀비마냥 일으킬 수도 있으리란 환상이 있지만 그건 보통 분노한 언데드지 살아있는 생생한 작가는 아닐거 같네요.
아무튼 그래서 재미있는 추리극이고 작가-작품론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로 즐거운 독서를 했네요. 여전히 사서들과 마지막 검열 파트에 대해선 의문스럽네요. 물론 작가에게 물어볼 일은 아니고 누가 채점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책을 읽어야겠지요. 저에게 남은건 책 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