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nem nostrum cuotidianum da nobis hodie 공모(감상)

대상작품: 어스탐 경의 임사전언 (작가: 이영도 출판, 작품정보)
리뷰어: 난네코, 3시간 전, 조회 13

Panem nostrum cuotidianum da nobis hodie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선언문

 

1. 본 리뷰는 타자 이영도의 <어스탐 경의 임사전언> 및 더스번 칼파랑과 사란디테 이야기 시리즈를 모두 읽고 집필한 팬픽리뷰글입니다.

2. 본 리뷰를 집필한 리뷰어 난네코는 A형 독감에 감염되서 상당한 기간 동안 병가를 내고 치료약을 복용하며 자가격리를 하다가 2025년 12월 12일 금요일에 드디어 일터에 복귀하여 건강을 회복한 상태에서 집필하였습니다.

3. 본 리뷰를 집필하는 리뷰어 난네코는 대체로 웃기고 약빤 내용의 리뷰글을 집필하나, 이 리뷰글은 경애하는 타자 이영도의 문학적 재능을 칭송할 목적으로 진지하게 집필하였습니다.

4. 본 리뷰글은 팬픽리뷰글이며, <어스탐 경의 임사전언> 및 더스번 칼파랑과 사란디테의 이야기 시리즈 내용을 스포일러하는 것이 단 한 가지도 없으므로, 걱정하지 않고 읽으시면 됩니다.


 

 

 

 

 

 

 

 


 

실제와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는 막 #15

 

 

<막이 열린다.>

 

 

밤처럼 어두워진 무대의 중앙에 조명이 켜진다. 어둠 속에서 원뿔처럼 반짝이는 조명의 빛을 바라보는 관객들은 무대 위에서 어떤 공연이 펼쳐질지 기대한다.

관객의 기다림에 부흥하듯이, 더스번과 사란디테가 무대의 중앙으로 나온다. 기다리던 관객들이 환호한다.

 

사란디테 : (방백한다.) 타자 이영도는 신이에요, 소설의 신! 왜 모두가 갈망하고, 선망하는지 알겠어요! 창작자를 전율하게 만들고, 또 깊이 절망하게 만들어요!

 

더스번 : 말도 안되는 소릴! BBC 선정 위대한 작가 10위 안으로 들어갔어?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었어? 손가락을 세운 것이 아니라 고개 가로젓기만 해봐. 소설가가 얼마나 많은데 ‘소설의 신’이라는 그런 비장한 칭호를 수여하다니? 그게 무슨 논리야?

 

사란디테 : 의미가 그랬다는 거예요. 의미가. (계속 주변을 살피며 방백한다.) 그런데, 가이너 카쉬냅은 도대체 정체가 뭐죠? 이영도 타자님 작품에서 항상 등장하잖아요? 학자인가요? 마법사인가요? 작가인가요? 발명가인가요? 귀족인가요? 이영도 작품 세계관의 메리수 캐릭터 같아요!

 

더스번 : 잔학한 허위와 메마른 불모가 서로를 학대하며 지른 단말마의 소름돋는 메아리이자, 파렴치한 거짓 맹세와 최저가로 팔아치운 위증이 썩어들어가는 피투성이 석묘이면서, 번롱하는 안개와 기망하는 신기루가 붙어먹어 배태된 태생부터 녹슨 미늘 같은 작자이지.

 

사란디테가 급히 퇴장한다.

 

 

<막이 닫힌다.>

 

 


 

 

 

 

 

 

 

 

 

날빛이 비춰진 낯빛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매무새다. 모양새를 보아하니 할라도 백작의 별장인 오소리 옷장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양이다. 피와 땀이 섞인 9권 분량의 임사전언은 어스탐 로우가 조형한 깨트림의 얼룩과 깨달음의 무늬가 격자처럼 쌓여있다. 삶이 글이고, 글이 삶이라면, 어스탐 로우는 얼마나 많은 사건과 사고를 겪었는가? 글을 쓰는 행위는 피와 땀을 토해내며 고통스러운 삶을 작가의 언어로 조형하는 육신의 노동이라는 것을, 글을 써본 창작자로 살아온 모두가 알 것이다. 그래서, 작가의 세계에선 천재가 필요없다. 경험과 상상력이 만나서 적확한 언어로 빚어낸 작품을 어찌 천재가 만들 수 있겠는가?

끊임없이 벼려지고, 끝을 모르고 버려지는, 말뭉치와 글뭉치 속에서 깊이있는 문장을 뽑아내는 것을 어찌 천재가 할 수 있겠는가? 글을 쓰는 작가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이상한 작자들이다. 작가의 삶은 필연적으로 외롭고 고독하다. 언제나 남들이 가지 않는 위험한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러 떠나는 모험가들이다. 목숨이 333개쯤 된다고 생각하고 관념의 세계를 유영하는 객사자(客死者)들이다. 선천적으로 타향살이를 즐기는 자발적인 고독사자(孤獨死者)들이다. 작가는 자동차와 같다. 차연과 처연 사이를 지연하는 처참함을 경험한 처절한 차량의 차령이 몇 해나 되었는가? 누군가가 나이를 물어보면 출하년도로 대답하는 나이가 되었다. 

일년에 백권이 넘는 책을 읽지만, 일생 동안 백권의 책도 집필하지 못해본 내가, 어찌 지층(Stratum)의 층군(Group)에서 눈으로 발견한 모수석(dendrite)을 식물 화석이라고 착각했었던 과거의 학자들을 어리석다고 비웃을 수 있겠는가? 층서(Formation)와 층내지층(Member)도 구분하지 못하는 눈으로, 어찌 내가 세상의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다고 자부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나는 참으로 어리석으며 지극히 좁은 시야를 가진 못난 작자인 것이다. 나의 삶에 주석을 달아서 독자의 삶으로 해석이 되는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는 아직 9권도 되지 못한다. 어스탐 로우 경은 어떠한가? 죽고나서도 9권이나 글을 쓰지 않았던가?

감각이 토해내는 얼룩으로 어스탐 로우는 9권의 임사전언을 집필했다. 망자에게 감각이 살아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신경(nerve)과 신경세포(neuron)이 살아있으니 손에 펜을 쥐고 종이에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머리가 잘려도 몸이 움직이는 물고기를 떠올리면 그리 이상한 현상은 아니다. <종의 기원>에서 찰스 다윈이 마다가스카르 섬에 가서 핀치 새의 부리를 분류했던 것처럼, 카를 폰 린네가 <자연의 체계>에서 동물과 식물들을 분류한 것처럼, 물고기는 어류이고 인간은 포유류라는 종의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이 세상의 어딘가에서도 인간의 논리와 이성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판타지 소설을 자연과학과 사회과학과 인문과학의 현상으로 완전히 설명할 수 있겠는가? 판타지 소설의 한 구절, 한 문장 마다 현상학적 질적연구방법론을 도입해서 해석할 수는 없다. 판타지 소설이라는 글쓰기에서는 원형도 전형도 없기 때문이다. 외상과 내상을 입고 언어로 직조하는 훈련은 판타지 소설에서도 도입되는 글쓰기의 원리이다. 감각이 춤추고, 노래하고, 그리기까지 하는데, 타성의 외침을 무시하고 고루한 언어들로만 배치하고 배열할 수는 없지 않은가? 토대가 없고, 깊이가 없으면, 밑거름도 없는 것이다. 글을 쓰고 싶어도 재료가 없는 것이다. 어제와 다른 오늘의 영감을 기다리기 위해서 기도를 드리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말라.

어스탐 로우는 죽어서도 9권의 임사전언을 집필했다. 밋밋한 인생을 살아왔더라면 임사전언도 밋밋하게 한 줄 쓰고 말았을 것이다. 심금을 울리고, 정금을 뽑아내는, 아름답고 앓음다운 문장을 지을려면 얼마나 고통스럽던가? 그래서 글을 쓰는 작가들은 정신이 이상한 작자들이다. 어스탐 로우를 보라. 죽음의 고통을 글로 승화시키지 않던가? 기체가 액체가 되는 액화도 아니고, 액체가 기체가 되는 기화도 아니고, 고체가 기체가 되는 승화이다. 육신에서 영혼이 빠져나갔으니 고체에서 기체가 된 것이다. 죽음의 공포가 만든 몸부림이다. 온몸으로 버텨온 고통의 무게이다. 미숙하고 미미한 단어는 독자에게 아무런 언어적 메세지를 전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글쓰기는 고질적인 정신분열병이다. 작가는 조현을 앓으며 글을 조형한다. 그러므로, 작가는 동시대 사람들이 이해하지도 못하며 이해받지도 못한다. 작가는 죽어서야 학자들에게 연구된다. 살아있는 작가 보다 죽은 작가를 연구하기가 더 쉽다. 살아있는 작가로 논문을 써서 투고하는 것보다 이미 죽은 작가로 논문을 써서 투고하는 것이 더 쉽다. 살아있는 작가는 뭔짓을 할지 모르지만, 이미 죽은 작가는 더 이상 무언가를 하지 못한다. 하지만, 어스탐 로우는 죽어서도 글을 쓴다. 작가로서 삶의 추동을 글의 추동이 끊임없이 이끌고 있다. 무려 9권의 임사전언이다. 관념의 파편이 신념의 부름을 받으며 탐구의 영역으로 나아간다.

어스탐 로우는 죽었으나 죽지 않았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어스탐 로우는 죽음이 서러운 것인가? 느리게 나풀거리는 춤을 추고 싶은 것인가? 죽어서도 글의 춤이 끝나지 않은 것인가? 열반에 들지 못하는 자여, 번뇌를 버리지 못하는 자여, 도대체 언제까지 글을 쓰는 것이오! 아(我)와 비아(非我)가 투쟁하고, 하나의 유령이 배회하고 있소! 사슬을 잃고 세계를 손에 넣기 위해서 단결하는 작자일세! 도전과 응전을 반복하여 승리자가 되고 싶은 것이오? 근원적인 물음을 던져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있소.

빈어증에 걸리지 않도록 사용하는 언어를 벼리고 버려도, 과학자와 인문학자의 대화에서도, 원하는 답을 구하지 못하고 결국 몸으로 부딪혀서 깨달음을 얻는 방법 밖에는 없더이다. 나의 개념은 결국 체험이오. 그러므로, 나는 여행을 떠나리다. 조양과 석양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이슬과 윤슬의 아름다움에 경탄하고, 아스라이 육신과 영혼이 스러지며 귀천할 몸이라오. 타자의 아름다움과 앓음다움에 감탄하리다. 나는 무교라서 종교적 신앙심이 아예 없지만, 경애하는 위대한 대문호 절대타자(絕對他者) 이영도를 공경추앙하기 위해서 라틴어와 아랍어와 산스크리트어로 기도를 드리며 팬픽리뷰글을 바치며 마치리다.

 

Pater noster,

qui es in Coelis,

sanctificetur nomen tuum.

Adveniat regnum tuum.

Fiat voluntas tua sicut in coelo et in terra.

Panem nostrum quotidianum da nobis hodie.

Et dimitte nobis debita nostra,

sicut et nos dimittimus debitoribus nostris.

Et ne nos inducas in tentationem,

sed libera nos a malo.

Amen. 

 

بِسْمِ اللَّـهِ الرَّحْمَـٰنِ الرَّحِيمِ

الْحَمْدُ لِلَّـهِ رَبِّ الْعَالَمِينَ

الرَّحْمَـٰنِ الرَّحِيمِ

مَالِكِ يَوْمِ الدِّينِ

إِيَّاكَ نَعْبُدُ وَإِيَّاكَ نَسْتَعِينُ

اهْدِنَا الصِّرَاطَ الْمُسْتَقِيمَ

صِرَاطَ الَّذِينَ أَنعَمتَ عَلَيهِمْ غَيرِ المَغضُوبِ عَلَيهِمْ وَلاَ الضَّالِّين

آمين

 

प्रज्ञापारमिताहृदयसूत्रं

आर्यावलोकितेश्वरो बोधिसत्त्वो गंभीरायां प्रज्ञापारमितायां चर्यां चरमाणो

व्यवलोकयति स्म पंचस्कन्धाः तांश्च स्वभावशून्यान्पश्यति स्म

इह शारिपुत्र रूपं शून्यता शून्यतैव रूपं रूपान्न पृथक्शून्यता शून्यताया न पृथग्रूपं

यद्रूपं सा शून्यता या शून्यता तद्रूपं एवमेव वेदनासंज्ञासंस्कारविज्ञानानि

इह शारिपुत्र सर्वधर्माः शून्यतालक्षणा अनुत्पन्ना अनिरुद्धा अमला न विमला नोना न परिपूर्णाः

तस्माच्छारिपुत्र शून्यतायां न रूपं न वेदना न संज्ञा न संस्कारा न विज्ञानानि

न चश्रुःश्रोत्रघ्राणजिह्वाकायमनांसि न रूपशब्दगंधरसस्प्रष्टव्यधर्माः

न चक्षुर्धातु र्यावन्न मनोविज्ञानधातुः

न विद्य नाविद्य न विद्याक्षयो नाविद्याक्षयो यावन्न जरामरणं न जरामरणक्षयो

न दुःखसमुदयनिरोधमार्गा न ज्ञानं न प्राप्तिर्नाप्राप्तिः

तस्मादप्राप्तित्वाद्बोधिसत्त्वाणां प्रज्ञापारमितामाश्रित्य विहरत्यचित्तावरणः

चित्तावरणनास्तित्वादत्रस्तो विपार्यासातिक्रान्तो निष्ठनिर्वाणः

त्र्यध्वव्यवस्थिताः सर्वबुद्धाः प्रज्ञापारमितामाश्रित्यानुत्तरां सम्यक्सम्बोधिमभिसंबुद्धाः

तस्माज्ज्ञातव्यं प्रज्ञापारमिता महामन्त्रो महाविद्यामन्त्रो ऽनुत्तरमन्त्रो ऽसमसममन्त्रः सर्वदुःखप्रशमनः सत्यममिथ्यत्वात्

प्रज्ञपारमितायामुक्तो मन्त्रः तद्यथा

गते गते पारगते पारसंगते बोधि स्वाहा

गते गते पारगते पारसंगते बोधि स्वाहा

गते गते पारगते पारसंगते बोधि स्वाहा

 

 

 

난네코 근상(謹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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