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부러움을 느끼는 타입의 작품입니다.
무엇인고 하니, 하나는 뻔뻔함입니다. 나쁜 뜻이 아니라, 그려내고 싶은 장면,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눈치 보지 않고 과감히 저지른다는 뜻입니다.
물론 아무렇게나 막 내지른다고 될 일은 아니리라고 생각합니다. 던졌을 때 소위 “짜치지 않고” 빵 터질 수 있는 양질의 뻥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지요. 사실 우리는 유쾌한 뻥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리저리 눈치 보며 포기하거나, 설명을 붙여보려고 하는 편이기에 이런 과감한 뻥을 던질 수 있는 작품에 부러움을 느낍니다.
이하 스포일러로 묶어둡니다. 내용 감상 후 읽어주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 작품에서 그토록 감탄한 뻥은 1화에서부터 나옵니다. 1화 마지막 장면과 거기서 이어지는 2화 내용에서, 마치 상륙작전을 벌이는 병사처럼 외딴섬에 우르르 내리는 클론들과 그들을 만든 과학자의 모습이 나옵니다. 이들은 무슨 침략자들이 아니라 위험을 피해 탈출한 사람들입니다. 서술자가 이 광경을 목도하게 되는 과정도 극히 심플하여, 하도 일이 안 풀려 답답한 마음에 무당집을 찾아가 봤더니 그리로 가보래서… 가 고작입니다. 좀 더 그럴싸한 분위기나 개연성을 형성하겠다며 좌고우면하는 대신, 독자를 기이한 일이 벌어지는 곳으로 곧장 끌고 가려는 작가의 통쾌한 박력이 있습니다.
묘사되는 광경을 보자면 그냥 멍해집니다. 이들이 중국에서 한국으로 도망쳐온 사정은 매우 긴박한데도, 전개되는 내용은 완전히 딴판입니다. 한국의 외딴섬에 클론들과 함께 우르르 몰려와 믿기 힘든 말을 털어놓고, 밥 좀 달라고 요구하는데 서술자는 그들을 인근 횟집에 인근 횟집에 단체 손님처럼 데리고 가 회를 대접합니다. 이에 중국인 과학자는 중식을 내놓으라며 한가로운 밥투정이나 늘어놓습니다. 긴급하게 망명해온 사람들 특유의 비장함도 없고, 기상 천외한 사건을 마주한 인물이 느낄 두려움과 긴장감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과감하고 뻔뻔하게 던져지는 뻥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집니다.
저는 이제 여기서 느끼는 거죠. 아, 이 작품 재밌다. 너무 재밌다… 그런데 이 부분들이 왜 재미있는지 조금 생각해 보았습니다.
뻔뻔한 전개를 태연하게 늘어놓음으로써, 이 작품은 우화적인 성격을 형성하게 된다고 저는 보았습니다. 우화적인 것이 무엇이냐? 이것은 제 나름의 관념이긴 합니다만, 사실감과 현장감을 정교하게 동원하여 독자를 세계에 이입시키는 대신(=가상을 향한 적극적인 믿음을 유도하는 대신), 비유적으로 말하고 있다는(=이건 다 뻥이다) 인상을 주어, 한 걸음 물러서 관조하게 하면서, 풍자적이고 예리한 비판 의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화가 우화로 성립되려면, 비판 대상이 되는 것은 특정한 형질의 「바보들」을 선정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즉, 이 작품이 비웃으며 비판하는 대상이 누구냐는 것이지요. 작중에서 옹고집전을 직접 언급한 것을 보고 이 작품은 우화라는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습니다.
DALI님의 리뷰와 0제야 님의 리뷰에서는 서술 방식이 이 작품의 특성으로 지적되고 있는데,1 이 특유의 서술방식도 작품의 우화적 성격을 더욱 강화한다고 보았습니다. 문체 부분은 뒤에서 또 이야기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크게 두 가지 뼈대가 있다고 보이는데, 하나는 아이돌 산업의 생태, 또 하나는 옹고집전이겠습니다. 물론 작중에서 이 둘은 유기적으로 연계됩니다.
특수목적 클론, 그리고 아이돌은 쉽게 엮일 것 같은 소재입니다. 아이돌-클론 대체품 아이디어를 골자로 하는 다른 작품을 봤었던 것 같은데요(여기서도 소속사 지하실에 뭐가 숨겨져 있다는 설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골자가 비슷해도 작품이 전달하는 이야기는 서로 확실히 구분된다고 느꼈는데, 아마 이 작품 특유의 재미있는 서술 전략 덕분도 있겠습니다. 이 작품을 아이돌 산업에 대한 비판으로서 해설하신 것은 DALI님이 이미 다루셨지만, 저도 제 나름대로 살펴보겠습니다.
『내 최애 아이돌의 수상한 고백』이 우화적인 분위기를 는데도 “사람의 무서움”을 오싹하게 전달한다고 느끼신다면, 그것은 아이돌 산업 묘사 때문일 것입니다. 산업 실태를 구체적으로 고발하기보다는(가령 센터 아이돌의 범죄를 무마하기 위해 어떤 사람들이 어떤 방법으로 서로 짜고 치는지 그 구체적인 수법 등) 어떤 식으로 일이 돌아가는지 분위기만 전하는 정도입니다만, 이 산업을 둘러싼 사람들의 태도만큼은 매우 리얼하게 느껴집니다. 이 산업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등장인물들은 제각각 자신의 욕망을 쏟아붓고 타인을 향해 증오를 발산하는데, 정말 광기가 장난이 아닙니다.
어쩌면 개별자들이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면서 굴러가는 것이 아이돌 산업의 본질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를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역시 팬들이겠습니다만(사생팬 편과 팬클럽 회장 편에서 묘사되는 광기가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팬들에 의해 발생하는 현상 만큼은 꼼꼼하게 묘사되는 편이기도 하고요) 그들을 부추기며 돈을 버는 산업 주체들도 만만치 않습니다(이들은 돈 때문에 기꺼이 부도덕을 감수합니다). 아름다움, 영감, 감동 같은 긍정적 정서를 판매하지만 그 기저에는 결코 아름답지 않은 내장이 꿀럭꿀럭 작동하는 (앗, 그러고 보니 문제의 아이돌 센터는 이런 산업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지도요) 아이돌 산업의 세태를 고발하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아이돌 산업을 중심축으로 마인드맵처럼 펼쳐지는 인물군상은, 입장과 사정의 다채로움에도 불구하고 공통되는 면모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악의적이고 비뚤어져있다는 점입니다. 자신이 항상 가장 불쌍하며, 타인의 행위는 언제나 악의적으로 비틀려 해석됩니다. 나의 욕구는 반드시 정당하며, 자신의 욕망을 채워주지 않는 인간은 모두 이기적인 인간입니다. 이들에게 아이돌 산업이 중요한 이유는 자신의 욕망이 마치 현실인 것 같은 환상을 제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환상이 삐끗하는 순간, 그들의 악의는 도저히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 사고방식으로 발전합니다(DALI님의 리뷰제목대로요).
(※ 물론 센터 아이돌에게 성추행 피해를 입은 여동생은 이런 평가에서 제외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역시 외부를 바라보고 평가하는 태도는 비뚤어져 있지만, 피해에 대한 적절한 케어를 받지 못 한 영향이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를 이루는 두 번째 축인 옹고집전을 볼까요. 옹고집전은 권선징악적인 이야기로, 도덕적으로 심히 결여되었던 사람이 “자기 자신일 권리”를 박탈당하고, 고생 끝에 죄를 뇌우쳐 자기 자리를 되찾는 이야기입니다. 못된 놈이 고생 좀 하고 착해지면 좋겠다는 옛날 사람들의 착한 심성이 반영되어 있습니다(처참하게 죽길 바라는 건 아니니까요). 이 이야기에 깔린 중요한 전제 조건은 옹고집이 “반성이 가능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의 등장인물… 특히 옹고집에 해당하는 센터에게 반성 능력이… 있던가요.
아이돌 산업에 필연적으로 전제되는 광기. 그리고 옹고집전. 작가는 두 개의 축을 나란히 세워서 『내 최애 아이돌의 수상한 고백』을 탄생시켰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악의적이고 비뚤어진 이기적 인간들만 모아 놓으면 옹고집전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 작품이 입증합니다.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는데, 이 작품이 “옹고집전 현실판”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기적인 소시오패스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면 “현실적이다”라고 느껴지는 것이 작금의 세태이긴 합니다만(물론 그렇게 느껴지는 현상에서 현대 문명의 병증을 진단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이렇게 악의적이고 비뚤어진 인간들만 모인 계(界)를 설정한 것 자체가 지극히 가정적(假定的)이고, 사고실험에 가까운 상상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우화적입니다.
(혹여 누군가 “실제로 아이돌 산업 판이 그렇다. 우화적인 게 아니라 리얼이다… 라고 지적하신다면, 돌판 자체가 우화적인 세계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작품 특유의 서술에는 각 인물들의 악의적인 시각이 반영되어 있다고 느꼈습니다. 하나의 사실을 두고 서술의 어조가 서로 다르다면, 그것은 이기적인 서술자의 악의가 반영된 탓입니다. 사태를 자기 좋을 대로만 받아들이고, 서로의 행위를 악의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타인은 악의적이고 이기적이어서 나에게 해를 끼치기만 한다고 파악하기 때문에), 서술에는 비꼬는 어투가 가득해집니다. 이런 비아냥거리는 어조는 언제나 코믹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독자 입장에서는 꽤 웃깁니다. 즉, 문장에 가득한 비아냥거리는 어조 또한, 풍자적이고 우화적인 작품 특의 분위기를 강화하는 데에도 기여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의 냉소적인 문투가 너무나 빼어나서, 다른 거 다 떼고 보아도 객관적으로 정말 웃깁니다.)
이 세상은 거대화하고 복잡화한 “죄수의 딜레마”인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오늘날 “현실적”이라고 여겨지는(처세술적으로도 그렇고, 픽션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에서도 그렇고) 이기적 성격의 인간들이 모이면, 문제가 결코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기만 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혹여 그들의 행태가 “실리적”이고, “이득을 취하는 태도”라고 보인다면, 그것은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선의와 신뢰를 발휘하는 사람들에게 악인들이 기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게임을 패배로 이끌려 합니다. 게임 참여자 중 승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수가 0이 되고 전원이 이기적인 선택을 함으로써,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 최악의 형태로 패배하는 과정을, 이 작품이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타인의 행위에 비아냥거리기만 하는 각 서술자의 태도는 오히려 그들 전체를 비웃음거리로 만듭니다.
작품이 너무나 재밌는 탓에, 정신없이 정주행하다 보면 작품에 가득한 악의적 인물들의 비아냥거림이 어느덧 독자들에게도 전이됩니다. 그렇게 낄낄거리며 작중 인물들을 비웃던 저는 서늘한 공포를 느꼈습니다.
그렇죠. 이 작품은 기획사 사장의 자기연민으로 시작합니다. 얼핏 자기가 죄인이라고 고백하고는 있지만, 자신의 타락을 센터 아이돌과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이후 이야기들에서 드러납니다. 그는 과거에 아이돌 지망생을 정신적으로 괴롭혔다는 혐의가 있으며(지망생을 울린 악덕 기획사로 기사가 난 전적이 있습니다), 데뷔에 실패하면 그 투자금을 연습생에게서 도로 뜯어내는 비열한 장사치이기도 합니다. 돈을 갈취하기 위해 재능 없는 부잣집 아들에게 헛된 희망만 불어넣습니다. 그는 애초부터 타락해 있었습니다. 센터 아이돌 핑계 대지 마세요.
자신이 타인에게 가해한 사실이 있음에도 기억 자체가 없는 인물들이라니. 섬뜩합니다. “나도 혹시..?” 하고 돌아보게 합니다. 내가 기억하지 못 하는 사이에, 나는 게임의 패배에 얼마만큼이나 기여하고 있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