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인간의 물화와 개성을 잃어버린 개인은 오래전부터 내려온 클래식한 테마겠지요.
찰리 채플린의 유명한 작품인 모던 타임즈를 전부 보진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유명한 슬랩스틱 코미디 씬은 기억하고 있죠. 공장 노동자는 인간이라기 보다는 기계를 동작시키는 부품에 불과합니다. 그 개인의 개성은 중요하지 않고 오직 작업 생산량, 성과만이 유의미하게 남는 것이죠. 그리고 그 성과는 블루컬러 노동자가 누릴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착각을 하나 하곤 합니다. 그건 근육을 사용하는 블루칼라나 그런 것이고, 머리를 쓰는 화이트 컬러는 예외지 않냐고. 화이트칼라는 기계를 돌리는 사람이지 부품이 아니라고.
정말로 그럴까요?
컴퓨터라고 하면 우리가 떠올리는건 지금 우리가 이렇게 쓰고 있는 기계지만, 기계장치인 컴퓨터가 나오기 전 원래 쓰이던 단어의 용법은 직업이었습니다. compute를 수행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계산수죠. 원래는 큰 수의 계산이 필요한 천문학 분야에서 활약했지만 양차 대전 사이에 컴퓨터들이 과연 천문학에 복무했을까요? 국가의 안보와 전쟁의 승리를 위해 다양한 분야의 계산을 수행했겠죠. 그들의 노동 환경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공습이 이뤄지고 당장 전쟁에서 승리해야 하는데 퇴근을 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작중 기술인 인지적 휴머닉 그리드 컴퓨팅에 대해 그것이 어떤 기술인지 잘 이해하진 못했지만, 직관적으로 전혀 어색하지 않았는데 그런 이름으로 수행되진 않아도 현재 사회에서 이미 많이 수행되고 있기 때문이겠죠.
우리가 인지적 휴머닉 그리드 컴퓨팅 프로그램에 동의해 일을 하는 것이나, 군대에 끌려가 끝나지 않을거 같은 하루를 보내는 것. 그리고 회사에 취직해 퇴근하지 못하고 몸을 갈아가면서 야근한 경험이 다들 있을 것입니다. 막대한 공권력이건 자본에 의해서건 그래도 직장은 있어야지 하는 어떤 사회적 압력에 의해서건요.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냐고 하면 맞다고 해야 하지만, 분명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것으로 꾸역꾸역 일을 해야 했던 경험은 있을테니까요. 아쉽게도 연봉 20만 달러가 보장된 적은 없지만 저도 그런 경험들을 떠올리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러나 약간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답이 있을까요?
흥미로운 질문으로 그치는 것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이걸 피할 수 없다는 것이 하나의 답이 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걸로 괜찮을까요?
우리가 국가에 의해 착취당하고 어쩌면 알아차리지도 못한체 챗바퀴 위를 영원히 달려야 한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전통적으로 그래도 우리에게 의지가 없는 것은 아니며 희망을 가져야 한다 정도가 안전한 답이긴 하지만요, 작가님의 답도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