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은 길도 한 번 가 보고 싶은 마음으로 의뢰(감상)

대상작품: 철의 왕국 (Full Metalled) (작가: 안병규, 작품정보)
리뷰어: 태윤, 5시간 전, 조회 2

저만 그랬던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가끔 한 번도 가 보지 않았던 길로 나도 모르게 발이 이끌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고 출퇴근 때나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말이죠. 특별히 도전적인 성격도 아니고 걷기에 특화된 체형도 아닌데 항상 가던 길보다 더 오래 걸릴 가능성이 높은데도 왠지 그 쪽으로 가게 되더군요.

기분 전환 같은 그럴싸한 이유를 붙일 수도 있겠지만 돌아보면 알 수 없는 이끌림 같은 힘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확실한 건 평소에 하지 않았던 결정을 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었다는 건데 그래서 이번에도 같은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철의 왕국(Full Metalled)]은 초반부터 거대한 떡밥을 던져두고 시작되는 독특한 장편 소설입니다. 리뷰를 한답시고 제 멋대로 스포를 마구 해댄 전적이 있어서 최근에는 그러지 않으려 신경 쓰고 있습니다만, 이번엔 이 부분을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독자 여러분들께 작품 소개를 제대로 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작가님께 양해를 구하고 싶네요.

프롤로그로 보이는 1장을 읽고 나면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독자 분들은 ‘아, 대체 역사물이구나.’ 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시게 될 겁니다. 그런 느낌에 의문을 갖지 않을 정도로 1장에서 보여주는 작품의 색깔은 확고합니다.

 

 

저는 소설을 읽는 데 있어서 잡식성이라고 할 수 있지만, 유일하게 잘 보지 않게 되는 장르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대체 역사물입니다. 유명한 작품도 많고 재미있다는 걸 알면서도 왠지 손이 잘 가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이 작품의 1장을 읽고 나서 사실 고민을 좀 했습니다. 그런데 평소와는 다르게 다음 회차를 클릭하게 되었고, 결국은 이렇게 독자 여러분들께 이 작품을 소개까지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2장으로 넘어가면서 작품의 분위기가 확 달라지는 건 아닙니다. 세계관은 이 작품의 매우 중요한 이야기의 뿌리이자 기둥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세세한 설정(예를 들어 한국의 일본 공격과 식민지화 같은 부분이 되겠습니다)을 불편하게 느끼시는 독자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설정이 작품은 예전부터 종종 등장했었지요. 이 현세 화백의 [북벌]이 먼저 떠오르는데 아마 제가 접해보지 못한 작품이 수 십 권은 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초반의 설정이라던가 주인공이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부분에서 묘한 기분을 느끼게 되더군요. 옷 속에서 깃털 같은 것이 돌아다니는 듯한 간질간질한 불편함이라고 할까요? 일제 시대의 참상을 표현한 작품을 보면서 일본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는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회차가 거듭 될수록 작품의 분위기는 묘하게 변모하는데, 그것이 바로 이 작품을 독자 여러분들께 소개하는 이유이면서 작품에 대한 제 느낌을 확실하게 정리하기 어려웠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주인공 아가타는 선임 연구원 고은과 함께 카라바조가 그린 ‘성 베드로의 십자가형’ 이라는 미술 작품을 복원하는 일을 맡게 됩니다. 고은은 자신의 후임이 일본인이라는 것에 큰 불만을 가진 듯 하고(고은 또한 한국으로 입양된 일본인입니다) 분덕은 뭔가 중요한 것을 숨기고 있는 듯한 태도를 보이며 아가타를 혼란스럽게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실력으로 고은과 분덕을 납득시킵니다.

아가타가 미술품을 복원하고 고은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과정을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저는 미술에 대해 문외한인데도 마치 미술품 복원에 관심이 있었던 것처럼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는데, 이런 느낌은 예전에 하 지은 작가님의 ‘얼음 나무 숲’ 을 읽었을 때와 비슷해서 더 기대를 갖고 작품에 빠져들 수 있었던 것 같네요. 예술가가 작품 활동 당시 느꼈을 감정과 당시의 발자취를 되짚어 가는 과정은 복원이라는 작업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재미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예술 작품 복원이라는 소재에 포커스를 좀 더 맞추었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중반의 이야기는 몰입도도 높고 신선했습니다. 오히려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에 굳이 복잡한 세계관이 필요했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후반부의 급하게 진행된 전개를 보면서 그런 생각은 더 깊어졌습니다. 솔직한 제 감상으로는 작품 속에서 새롭게 정립된 세계관이나 한일 관계 등이 이야기의 전체적 재미에 큰 더함을 주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제가 느낀 작품의 재미 요소는 미스터리한 그림에 담긴 과거를 추적해 가는 복원 과정과 주인공이 고은, 분덕과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이야기들이라고 봤거든요. 특히나 복잡한 세계관 탓에 한창 재미있을 부분에서 이야기가 급히 마무리된 것 같아서 더욱 그런 아쉬움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예술은 재능이 없는 사람이 보았을 때 어떤 미지의 세계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미지의 세계란 우리가 언제 어떻게 접할 수 있을 지는 모르지만 항상 가 보고 싶고 들여다 보고 싶은 매력이 있지요. 이 작품은 미술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제게 미술품 복원이라는 분야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게 한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작중 인물들 또한 개성과 매력을 갖추고 있으며 무엇보다 중반부의 몰입도가 매우 뛰어납니다. 이야기에 꼭 필요한 인물들만 등장하며 독자들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흘러나가지 않도록 잡다한 설정이나 몰입을 흐리는 사건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전체적인 분량은 조금 아쉬운 부분입니다만, 분량의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초반부터 이야기의 중심축이 될 거라 믿었던 복원에 대한 이야기가 제대로 진행도 되지 않은 채로 마무리된 것이 아쉬웠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이 작품은 미술과 미술품 복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할 수도 있는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장편 연재가 될 것 같은 분위기를 보이지만 실제 분량은 그리 많지 않으니 틈틈이 독서를 하시는 독자 분들도 충분히 읽어 보실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고은과 아가타, 그리고 분덕에 대한 이야기가 더 추가된다면 그것 또한 좋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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