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리뷰는 최대한 스포일러는 배제하고 작품을 처음 접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고자 작성되었습니다.
저는 사실 오컬트 장르를 선호하지는 않습니다. 싫어한다기 보다는, 기본적으로 공포물에 대해 피로감을 가지고, 개인적으로는 이해가능한 동기, 구조적 문제를 파고드는 것을 선호하는데, 오컬트의 공포는 이해하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이해하려 하면 더 위험해지고 의도적으로 설명을 거부하는 장르적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1인칭 시점까지 겹치면 안 그래도 불안, 공포, 혼란이 중심인데 주인공의 경험을 강제 체험하는 형태가 되다보니 정신적 피로도가 크게 다가와서 선뜻 먼저 찾아가지는 못 합니다.
그럼에도 제가 본작을 보게 된 것은, 작가님의 단편을 먼저 보았고, 각 단편들은 각기 다른 공포를 깔고 있으면서도 그 기저에는 따스함이 있었기 때문에, 본작도 그럴 것이라는 일종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읽다가 감정이입이 될수록 피로하여 한번에 진도를 많이 나가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럼에도 그만큼 이입이 된다는 것은 이야기에 빠져 들어 만족하고 있다는 뜻이었고, 지금은 약 세 달에 걸쳐 천천히 본작을 다 읽었고 마침내 감상평 겸 감상포인트 가이드삼아 리뷰를 쓰고 있습니다.
1. 부재: 사라진 것들이 남기는 그림자
본작은 두 아이의 실종으로 그 문을 엽니다. 하지만 실종이라는 사건은 이야기의 전부가 아닙니다. 오히려 작품은 없어진 것들의 여백을 통해 인물의 삶을 비추고, 그 빈틈에서 새어 나오는 감정들을 섬세하게 포착합니다.
끊어진 가족 간의 신뢰, 동생들을 돌본다는 명목 아래 감당해야만 했던 주인공의 책임들은 부재가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작품은 이러한 부재를 단순한 결핍으로만 다루지 않습니다. 부재는 인물을 가두어 두는 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동력으로도 작동합니다. 작중 주인공 지수의 활약은 실종된 동생들을 되찾고 싶다는 동기에서 출발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그 감정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아련함과 절박함이 함께 깃들게 됩니다.
지수가 실종을 쫓고 숨겨진 진실을 찾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감정의 기복과 행동의 이유를 따라가다 보면, 지수가 품어온 상실이 어떤 방식으로 표출되는지 짚어볼 수 있었습니다.
사건은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진행됩니다. 진실을 찾는 추리극에 초점을 두면 사건에 중점을 두고 쫓아가게 마련이지만,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지수라는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 보는 것도 괜찮은 감상 방법이지 싶습니다.
2. 의심 : 기묘한 관계와 그 사이의 감정
작품 전반에 흐르는 묘한 긴장감이 뭘까 생각해보니, ‘의심’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주인공 지수는 여동생들이 실종되어 도움을 요청하지만, 과거 전력 때문에 오히려 의심부터 받습니다. 경찰도, 이웃도, 심지어는 독자조차도 그를 완전히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의심이 향하는 대상은 주인공 지수에게만 머물지 않습니다. 인물들은 서로의 행동과 감정을 끊임없이 해석합니다. 등장인물들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행동들을 하지만, 이해할 수 없던 행동들은 진실에 다가갈수록 개연성을 얻습니다.
흥미로운 지점은, 독자가 느끼는 의심 역시 이야기의 일부가 된다는 점입니다. 작품은 인물의 말투, 행동, 침묵을 매우 정교하게 배치하여, 진실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는 감각을 지속적으로 유지합니다. 이러한 의심들은 불편하지만 매혹적이고, 결국 지수의 여정을 따라가며 계속 읽다 보면 인물의 내면 감정까지 스스로 추적하게 됩니다.
의심은 작품의 스릴러적 긴장을 만들어내는 장치이지만, 동시에 관계의 본질을 되묻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본작에서 의심은 단순히 사건 해결의 장애물이 아니라, 관계를 구성하는 핵심 감정으로 작동합니다. 인물들은 서로를 의심하면서도 동시에 서로에게 기대고 있으며, 이 모순된 감정이 작품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듭니다.
작품의 서늘한 분위기는 대부분 이 의심의 결에서 나오기 때문에 인물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균열(특히 주인공 지수와의 관계)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작품을 받아들이는 깊이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3. 대체 : 빈자리를 메우는 방식
리뷰를 위해 떠올린 작품의 키워드 중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인데, 어쩌면 작품의 중요한 구조적 장치와도 맞닿아 있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여동생들의 실종으로 시작되는 본작은 누군가 사라진 자리를 무엇으로 메꾸는가에 대해 탁월한 상상력을 보여줍니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는 때로는 희망이, 때로는 거짓된 평온이, 때로는 믿고 싶었던 무언가가 자리하게 마련인데, 본작은 그 현상을 서늘함과 슬픔이 교차하는 분위기 속에서 차근차근 펼쳐 보입니다.
없어진 것을 대신 채우려는 마음은 누구나 갖고 있을텐데, 그 마음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균열이 생기는지 세밀하게 보여줍니다. 대체는 단순한 교환이 아니라 감정의 흔적을 따라가는 과정이었고, 주인공 지수가 지키고자 하는 대상인 여동생 유하, 주변 인물들이 감추고 있는 마음이 모두 이러한 테마 안에서 연결됩니다.
누군가의 자리를 대신하는 존재들이 등장하지만, 중요한 건 그 대체가 남기는 감정이었습니다. 작품 속에서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여러 사건과 선택들은 관계의 빈틈을 메우려는 시도라는 관점으로 이해한다면 그 흐름이 자연스럽게 연결될 겁니다.
사건 중심의 스릴러이지만, 그보다는 인물의 감정과 관계의 흔들림을 따라가는 작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사가 나오고 수사를 펼친다고 해서 현실의 수사 모습에 대한 고증을 따지려고 들면 작품에 몰입하기 힘듭니다. 현실 고증이나 제도적 디테일에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 요소들이 있어도, 그 부분은 이야기의 실제 의도와는 거의 관련 없습니다. 관련 종사자가 보기에는 어색할 수 있는 부분이 없지는 않겠지만, 자연법칙이나 물리법칙을 위반한 것도 아니고 현실의 법제도를 그대로 재현할 이유도 없기 때문에, 작품 내 세계관에서는 원래 그렇게들 한다고 생각하면 작품 진행에 장애가 되지도 않습니다.
애당초 이 작품의 장르는 ‘오컬트’입니다. 초현실적인 요소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레바니테:여동생을 되찾는 주술’의 세계에서는 감정의 논리가 현실의 논리보다 우선합니다. 이것에 집중하면 크고 작은 반전들도 재미를 선사하지만, 반전의 충격에 의존하지 않고도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정서와 메시지를 충분히 누리실 수 있는 작품입니다. (물론 반전의 충격이 결코 작진 않습니다)
제가 읽고 좋았던 작품의 감상을 공유하기 위해 지금까지는 분석적이고 해설에 가까운 리뷰를 써왔는데, 본작만큼은 주인공 지수와 함께 서서히 진실을 파헤쳐가고 감정을 따라가는 것이 중요한 감상포인트이다 보니, 직접적인 내용 설명을 배제하느라 추상적인 리뷰가 되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본 작품을 처음 접하시는 분들께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