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리뷰는 언이 작가님의 리뷰 의뢰로 작성되었습니다.
언이 작가의 ‘불 끄지마’ 연작은 총 9편의 엽편으로 이뤄져 있으며, 심리적 공포에 해당하는 것을 다루는 것이 특징이다. 통상적인 호러 소재가 아니라 조현병이나, 몽유병, 자폐, 죄책감, 자기혐오 등 일상 속에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다룬다. 작가는 짧은 엽편으로 능수능란하게 독자에게서 그러한 불편한 감정들을 이끌어냈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려 놓는다. 그런 점에서 실험적으로 평가할 수 있으나 반복되게 반전이 일어나는 패턴과 가끔 지나치게 설명적으로 변하는 것은 다소 아쉬운 지점이다.
불 끄지마,의 INTRO ‘식탁’에서 20대 여성 H씨는 친구에게 보증을 받은 뒤 정신병원에 입원 중이다. H씨는 자살한 친구의 환영을 본다. 죽은 친구의 환영은 불을 끄지 마, 라고 앞에서 외치며 다가온다. H에게 ‘불’은 죄의식이다. 정신병원에 갇혀 있지만 친구를 죽게 했다는 죄의식이 친구의 환영으로 다가오는 것이며, 왜 불을 껐느냐, 라고 친구의 환영은 계속 H를 압박해온다. ‘불’은 H의 자의식이다. 친구의 환영은 불을 켜기 전에는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이 말라 한밤 중 부엌에서 불을 켜는 순간 환영이 나타나며 왜 불을 껐느냐,라고 묻는다. 불을 껐음은 망각이다. 불을 켜는 행위는 의식함이고 기억함이다. 불은 의식을 상징한다. 이 연작 소설에서 ‘불’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일지를 알아내는 것이 작가의 주제의식이나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던 무의식적인 상징을 읽어내는 열쇠가 될 것이다.
1화 ‘형광등’에는 2개의 에피소드가 있다. 하나는 라이터이고, 다른 하나는 상어다. 라이터 에피소드의 ‘시은’은 손목을 칼로 그어 자살하려는 여자다. 살인마는 시은의 마음 속에 자신을 죽이려는 제2의 인격을 의미한다. 살인마는 라이터를 켰다, 껐다를 반복한다. 살인마는 불은, 빛은 사라지지 않아, 라고 시은의 귀에 속삭이고, 시은은 살인마에게 넌 보지 못해, 불이 널 외면하니까, 빛이 널 외면하니까 라고 말한다. 손목에서 피가 많이 흘러 시은은 의식이 흐려져간다. 살인마가 라이터를 켰다가 껐다를 반복한다. 형광등이 빛났다가 꺼졌다를 반복한다. 시은의 의식이 점멸하는 순간이다. 시은이 눈을 뜨자 살인마는 사라지고 깜빡이는 형광등만 보인다. 손목을 긋던 칼을 놓고 눈물을 흘린다.
1화의 두번째 에피소드, ‘상어’의 주인공 지희는 인생에 대한 죄책감에 물건을 집어던지며 괴로워하고 있다. 자신 속 깊은 어둠을 상어라고 인식한다. 엄마가 자신의 딸, 지희를 안아주며 위로해준다. 형광등이 깜박깜박거린다. 엄마는 상어가 되어 지희의 어깨를 이빨로 물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지희는 자신의 인생이 망가진 것이 상어, 깊은 어둠이라 생각하는데, 그것은 엄마다. 형광등은 외부의 빛이고, 지희는 내부의 빛,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자신의 인생이 망가진 것을 외부의 어둠, 상어로 상징되는 엄마에게로 되돌린다. 자기 안의 빛, 불을 찾지 못했다는 것을 상징한다. 1화의 첫번째 에피소드의 ‘라이터’는 자기 안의 자살 본능을 상징하고, ‘상어’는 불꺼진 어둠이다. 죽고자 하는 욕망도 하나의 불꽃이라는 의미다. 형광등은 외부의 감각적 자극에 의해 촉발되는 의식을 의미한다. 1화의 시은은 형광등의 깜빡임을 보면서 의식을 되찾고, 지희는 어깨를 상어에게 물리면서 통각으로 의식을 찾는다.
2화, ‘정오의 적막’은 집주인 y씨가 현상수배 살인마에 의해 살해당하는 에피소드이다. 오후 2시의 다정한 햇살, 식은 커피의 쓴맛, 베란다 문틈으로 들어오는 미풍, 스마트폰에서 울리는 K-pop 음악소리. 시각, 미각, 촉각, 청각의 환기다. 갑자기 음악이 끊기자 배터리가 다 됐나 생각하고 식탁으로 향한다. 3분 전 물을 부은 사발면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파열음이 들린다. 구석에 세워둔 리얼 돌 인형의 목 부위와 팔 부위를 접착제로 붙여뒀는데, 그게 떨어지면서 나는 소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잠시 후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하고 y씨는 살해당한다. 2화에서 ‘불’을 경계하는 의식,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의식이라고 해석한다면 y씨는 ‘배터리가 다 됐나보다’, ‘리얼 돌 인형이 있었지.’라고 음악이 끊어지고, 기괴한 파열음이 났을 때, 상황을 제대로 인식했어야 했다. 만약 그랬다면 살인범과 대적하여 목숨을 잃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본다면 의식의 불을 끄고 나이브하게 대처했던 y는 그 때문에 살해당한 것이다.
3화 ‘호텔 206호’는 호텔 야간 프론트 매니저 최은지의 오토마티즘(자동증)에 대한 이야기다. 얼핏 보면 206호에서 새벽에 알 수 없는 울음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려온다. 마스터키로 방을 열고 들어가자 책상 위 모니터가 희미한 푸른빛을 뿜어내며 하나의 동영상이 구간반복으로 재생되고 있다. 어느 공포 영화의 한 여주인공이 침대 위에서 울고 있는 장면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그 여주인공은 마치 은지를 향해 울고 있는 듯하다. 소설은 갑자기 설명을 한다. 최은지. 몽유병 환자라고. 몽유병 중에 자동증이란 증세가 있다고 친절하게 부연설명까지 달아놓았다. 독자는 무슨 귀신 이야긴가 하다가 설명에 맥이 탁 풀린다. 최은지의 몽유병 증세는 불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이 에피소드는 인간이 기억하지 못하는 무의식이 창발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모니터의 푸른 빛, 마치 인공의 불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는 가운데, 00:12에서 00:19 사이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 에피소드의 마지막 문장, 최은지는 자신이 해놓은 반복 영상을 보면서 자기가 놀란다. 인간은 무의식에 지배된다. 무의식은 잃어버린, 수면 아래로 침잠한 기억들의 투명한 층(layer)이다. 무의식은 수면 위로 올라오는 순간 지배력을 잃게 된다. 독자는 최은지의 몽유병 행위를 보면서 기괴한 느낌에 사로잡히겠지만, 독자 역시 오래 전 어린 시절에 했던 행위나 말, 트라우마에 의해 최은지의 몽유병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의식의 힘과 패턴에 지배되고 있을지 모른다. 의식 속 ‘불이 꺼져버린 구간’이 있다면 우리는 그 어둠의 영역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4화 ‘외면’은 9개의 엽편 중에서 가장 특이하고 문학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보리차가 끓고 있고, 재우는 어느 방 안에 들어가 있다.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 “밑줄보다 일단 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누구의 말일까? 재우의 말일 수도, 형의 말일 수도, 정신과 의사의 말일 수도 있다. 소설은 이게 누구의 말인지 단서를 보여주지 않는다. 형은 신문을 읽고 있다. 삼십분째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고. “재우야… 네 형이…” 누군가가 말한다. 형의 말일 수도, 재우의 아빠나 엄마가 형이 죽었음을 말한 것일 수도 있다. 벽시계는 멈춰 있고, 오늘 아침에 형이 자고 있었던 것 같다고 생각한다. 재우는 숫자를 센다. 보리차 냄새가 탄내로 변한다. 숫자를 강박적으로 세고 형은 불길이 일렁이는 호수 위로 발가벗은 상태로 떠내려간다. 형이 죽었음을 암시한다. 재우는 형이 죽었다는 것을 외면한다. 신문을 든 형의 손목시계가 째깍째깍 가고 있다고 상상한다. 내면으로 숨어버린 재우를 일깨우는 것은 보리차의 향기와 탄내, 즉 후각이지만 재우는 숫자를 세면서 적극적으로 외면한다. 의식의 빛을 밖으로 돌리지 않고 안으로 숨으려 한다.
5화 ‘현실’은 두 개의 에피소드로 이뤄져 있다. ‘미친여자’에서는 회사원 ‘장연희’가 퇴근한다. 어둠 속에서 칼을 든 미친 여자가 쫓아오고 마침내 연희의 가슴에 칼이 찔린다. 여자의 이마에는 ‘중독’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작가가 의도한 반전이 정확하게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 자신이 인지하지 못했던 ‘중독’이 턱 밑까지 쫒아와서 자신을 죽인다. 그것은 중독이었다. 스마트 폰 중독이든 뭐든, 중독을 인지하지 못하고, 중독에 허겁지겁 쫓기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공포를 그렸다.
그러나 두번째 ‘장례식장’에서는 오랜 암 투병으로 죽은 동생의 장례식장에서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나’의 감정이 호러다. 반전 없이 서술된다. 에피소드 속에서 화자인 나는 ‘슬프지 않다는 사실이 무서웠다’라고 말한다. ‘나’는 아버지의 유전으로 역시 암이라는 진단을 며칠 전에 받았다. 동생은 가족의 지옥에서 먼저 죽음을 선택당했을 뿐이라며, 어머니의 눈에서 깊은 슬픔을 본다. 5화에서 다루는 호러는 현실이 주는 호러다. 장연희는 일상에 중독되어 쫓기고, ‘나’는 오랜 암투병하다가 죽은 동생으로부터 해방되었지만 역시 바로 어제 암 진단을 받고 죽음이 예약됐다. 현실이 주는 생존의 압박과 죽음의 공포다.
6화 ‘앉아 있다’ 역시 두 개의 에피소드인데, 정신병자의 호러를 다룬다. ‘아직도 앉아 있다’의 주인공은 ‘미희’. 조현병을 앓고 있으며 새벽에 자기 안의 ‘서연’을 바라본다. 자신이 좀비 영화에 출연한다는 것 역시 조현병의 일부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의자’는 노인 사형수 김민우의 치매 환각에 관한 이야기. 치매가 부른 환각이라고 생각했지만 사형 집행 시간이 도래한 것이었다는 호러였다. 조현병이나 치매가 ‘의식’이 분열되거나 화학적으로 문제가 생겨 환각을 본다면 이 역시 ‘불’과 관련 있다.
7화 ‘범인’은 아이와 옆집 박 씨, 그리고 김형사가 나온다. 아이가 재미로 던진 폭탄 장난감으로 박 씨가 감전사당했지만 김형사는 며칠 전에 죽은 이 씨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사건을 종결한다. 묻지 마 살인과 뉴스가 그것을 덮어버리는 사회 시스템을 호러로 다루었다. 아이는 자신이 재미삼아 던진 장난감으로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모르고, 김형사는 아이의 미래를 위해 사건을 조작해서 덮는다. ‘불(의식)’은 거짓을 태우고, 진실을 밝히는 빛이기도 하지만, 진실을 은폐하고 조작하기도 한다.
8화 ‘디스토피아’는 두 개의 에피소드로 이뤄져 있다. ‘안전’에서는 알렉스라는 이름의 AI 사이보그가 마지막으로 남았다. AI 사이보그들이 만든 ZI 사이보그가 와서 알렉스를 마지막으로 분해, 소멸시킨다. 인간들이 AI 사이보그를 만들고, AI 사이보그가 ZI 사이보그를 만들고, 그렇게 대체되어 간다. 알렉스가 마지막 인간을 소멸시키고, ZI 사이보그가 다시 알렉스를 소멸시킨다. 알렉스가 인간을 소멸시킨 것은 인간이 불완전하고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었는데, ZI 사이보그가 알렉스를 폐기시키는 것도 똑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이렇듯 ‘안전’이라는 것은 어느 한 쪽 입장에서의 관점이지, 소멸당하는 입장에서는 공포라는 것을 보여준다. 관점의 차이에 따라 ‘안전’이 ‘공포’로 전환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 에피소드 ‘작은 손’은 아동의 신체 훼손에 대한 묘사가 있음을 알리는 경고문구로 시작한다. 강정혜는 가상현실 속에서 괴물이 된 아들 민준을 칼로 살해하지만 그것이 가상현실 속 충성 테스트였음이 밝혀진다. 강정혜는 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했고 기억을 삭제당한다. 괴물로 변한 아들 민준을 제거함에 있어서 생존본능보다 모성애가 우위였다는 것이 이유였다. 의식 제어 실패로 탈락되고 두 모자는 제국군의 영광스러운 고위급 간부의 삶이 아니라 서민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앞에 있었던 사건은 가상현실 속 일이어서 강정혜도 아들 민준도 무사했다고 서술된다. 강정혜는 아들 민준의 따뜻한 체온을 느낀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의식을 상징하는 ‘불’은 아들 민준의 체온으로 전환되며 마무리된다. 의식을 완벽하게 제어하는 것보다, 사랑이 더 의미 있다는 메시지다.
총 9개의 엽편에 실린 각각의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불’은 의식을 상징한다, 명징한 의식으로 두려움을 직시하면 곧 사라진다. 인간이 느끼는 두려움은 거부, 회피에서 오는 것이며, 불을 끄는 것에서 기인한다. 어둠, 미지를 인간은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럼 의식을 명징하게 유지한 채로 완벽하게 컨트롤해야만 할까?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작가는 따뜻한 체온-촉각을 통해 그것을 말하고자 했던 게 아닐까 한다. 명징한 의식이라면 AI 사이보그가 인간보다 우위에 있을 것이다. AI 사이보그가 만든 ZI 사이보그는 훨씬 더 명징한 의식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들, 사이보그가 갖지 못한 건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사랑일 것이다. 따뜻한 체온, 밥 짓는 소리와 웃음일 것이다. ‘불 끄지 마’ 연작에서 작가는 인간이 느끼는 심리적 호러들을 하나씩 끌어내고 환기시키며 말한다. 두려워하지 말고 불을 켜고 직시하라고. 하지만 그 명징함 속에서도 잊지 말아야할 것은 따뜻한 체온과 웃음이라고. 결국, 유한한 삶에서 의미있는 것은 바로 그것뿐일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