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어법리뷰시리즈(?)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습니다.
보통 이런 능력자는 인류의 운명을 바꾸거나, 거대한 음모에 맞서거나, 최소한 전쟁 하나쯤은 막습니다. 그러나 이 남자의 미션은 다릅니다. 그는 소개팅 애프터를 따내야 합니다. 그것도 반드시.
이미 충분히 무섭습니다. ㄷㄷㄷㄷ 연애 한 번 하기 힘든 이런 세상에 소개팅 애프터라니요. 차라리 세상을 구하는 게 쉽겠네요.
그는 매번 같은 카페로 돌아갑니다. 같은 문이 열리고, 같은 여자가 들어오고, 매번 다른 방식으로 파국을 맞습니다. 이쯤되면 이 소설의 장르가 로맨스가 맞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사실 스릴러일지도 모릅니다.
그는 실패할 때마다 체득합니다. 그녀가 싫어하는 말투를 기록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외우고, 웃음의 종류를 분류합니다. 사회적 웃음과 진짜 웃음을 구별하는 법까지 터득합니다. 이쯤되면 주인공을 응원해야 할지, 아니면 스토킹으로 신고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소설 속 그녀는 네 번째 루프에서 경찰을 부릅니다. 그것도 꽤 합리적인 판단이었습니다.
다섯 번의 시행착오 끝에, 그는 마침내 완벽한 소개팅을 완성합니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리액션, 아는 것을 모르는 척하는 연기, 다섯 번의 실패가 만든 정확한 균형감.
결국 애프터를 신청하고 승락을 받아냅니다. 독자는 안도합니다. 드디어 해치웠나끝인가!
그러나 이 소설의 마지막은 처참합니다. 소개팅 이야기를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세상이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되실 겁니다. 아니, 이미 무너져 있었음을 알아차리게 되실 겁니다. 시간을 되돌려도 그는 자신의 세상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되어 있었으니까요.
이 소설은 웃기지 않습니다. 절대 웃기지 않습니다. 반어법을 이해하신다면 이쯤에서 뭘 해야 할지 아실 겁니다.
(짧게 쓴다고 쓴건데도 800자를 넘는군요… 거진 트위터 수준으로 써야 되납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