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과 집착, 갈망과 사랑 사이에 놓여있는 제 값의 감각 감상

대상작품: 살아 있는 식물은 검역을 거쳐야 합니다 (작가: 렌시, 작품정보)
리뷰어: 일요일, 4시간 전, 조회 8

무언가를 좋아하기 쉬운 세상이다. 눈을 돌리면 어디에서나 우리 물건이 좋아요, 예뻐요, 잘합니다, 맛있어요 같은 유혹과 갈망의 단어들이 무언가를 팔고 있다. 사람들은 쉽게 무언가를 구매한다. 구매를 통해 사물과 관계를 맺는 건 쉽다. 키스한 적이 있는 사람과 손을 잡거나 다시 키스를 하거나 초대를 받아 방에 가는 것은 어렵지만 술에 취했어도 과일 네 알을 사서 먹는 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아도 되니까.

<살아 있는 식물은 검역을 거쳐야 합니다>의 주인공 나는 그렇게 술에 취한 채로 과일이나 한봉지 사서 집에 돌아온다. 주인공 나는 한심하다. 유학생활의 실패를 지나치게 깊이 생각한다. 더 나쁜 것은 그 실패 때문에 잃은 자존감으로 인해 마음이 있던 사람의 제안도 실수인 척 거절하고 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라도 과일 한봉지는 사서 돌아올 수 있다. 과일 사기는 실패할 수 있다. 의심스러워도 도전해볼 수 있다. 그냥 먹고 쓰러져서 자면 될 뿐이다.

결국 놀랍고 신비로운 식물과의 동거는 원래 주인공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삶으로 진입하려는 순간 장애물이 된다. 주인공에게는 그토록 사랑스럽고 귀중한 것이지만 실제의 삶에서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존재’를 삶으로 가져와 함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사랑한 존재는 현실의 검역을 통과할 수 없다. 현실의 삶에서 돌이켜봤을 때, 식물의 이름을 넣을 수 있는 자리에 취미의 영역에 있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의 이름을 넣어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식물은 나와 함께 살며 나를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내 실제 삶으로 돌아가는데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어디에나 있지만 내가 가지거나 책임져서는 안되는 것. 때로는 나를 잡아먹으려고 하지만 내가 사랑한 것. 내가 사랑해주지 않으면 금세 생기를 잃어버리는 것. 책임을 지려하는 순간 내가 남들이 사회적 삶이라 부르는데 뿌리내리는 것에 어려움을 주는 것. 그런 것들을 생각하자 동시에 서운하고 쓸쓸해지려는 마음이 든다. 내 삶에 있어 소중하지만 제 값을 매길 수 없는 존재들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재미있는 단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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