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찬 바람이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것이 괴담에 어울리는 계절은 아니지만, 이번에 아주 재미있는 괴담 단편을 보게 되어 브릿 G 의 독자 여러분들께도 소개 드리려 합니다.
[졸업]은 브릿 G 에도 심심찮게 등장했던 소재인 방 탈출 까페가 배경인 공포 소설입니다. ‘방 탈출’ 과 ‘괴담’은 무서운 이야기를 만들기에 참 어울리는 양 손의 검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렇다 해도 맛깔 나는 두 재료를 제대로 된 요리로 만드는 건 상당한 기술이 필요합니다. 이미 수 많은 이야기들과 독자를 놀라게 할 다양한 스킬이 여러 작가분들에 의해 공개되었기 때문이지요. 저는 이럴 때 레드 오션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바로 ‘기본에 충실하기’ 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제가 읽어 본 어떤 방 탈출 괴담보다도 기본에 충실합니다.
공포를 주제로 한 방 탈출 까페가 있습니다. 곧 폐업을 앞두고 있지만 한 명 남은 알바생은 마지막까지 업장의 퀄리티를 유지하겠다 다짐하고, 그러던 중 독특한 분위기의 한 여성이 까페에 들어섭니다. 혼자 통과하기엔 상당히 무서운 세 가지 테마의 밀실을 하나씩 해결해나가면서 그녀는 자신의 블로그에 방 탈출 까페에 대한 감상평을 올리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탈출이 이어지면서 여성은 이 까페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되는데…
영화 [The Sixth Sense] 가 공포 영화로서는 공전의 흥행 성공을 기록한 이후, 다른 장르는 그렇지 않은데 유독 공포, 스릴러 장르만이 반전이라는 통발에 빠진 느낌으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뒤통수를 거침없이 후려치는 결말의 반전을 보여주는 명작 추리 소설이나 공포 소설은 있었지만 관객들이 브루스 윌리스의 정체를 알게 된 후부터는 호러라는 장르는 소설이던 영화던 결말에는 반전 하나 쯤 등장해야 하고 그 반전으로 작품의 평가가 달라지는 경우도 생겼지요. 독자들을 놀라게 해야 하고 등골을 서늘하게 할 수록 좋은 평가를 받는 공포 소설에서 반전만큼 그런 효과를 잘 얻어내는 기술도 없긴 하지만, 결국 작품의 구성과 글의 완성도가 소설의 흥미를 불러 일으키고 끝까지 완독하게 하는 힘이 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 작품은 괴담을 풀어놓고 그 실체를 경험해나가는 형태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세 개의 괴담은 개수도 적당한 데다가 뭔가 단순히 생명을 위협 받는 공포에서 점차 그 공포의 대상이 기괴하고 초자연적인 무언가로 범위를 넓혀가면서 다양한 공포를 느끼게 해주는 점이 좋았습니다. 초반부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던 까페 알바생의 시점이 갑자기 방 탈출 까페를 방문한 한 여성 블로거의 시점으로 전환되는데, 보통 이런 전환은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혼란을 주는 경우가 많지만 이 작품의 경우 위화감을 전혀 느끼지 못 했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화자의 전환이 이루어집니다. 이런 시점의 전환은 결말 부에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장치가 되기도 하니 작가님이 이 부분의 디테일에 공을 들이신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독자들을 놀라게 하고 무섭게 하는 이야기로 가득하지만, 갑자기 상황을 뒤집는 반전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작가님은 이미 어느 정도 예상이 되는 반전 보다는 등장 인물이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상황과 그에 대한 반응을 보여주면서 ‘진짜 무서운 건 이런 거야’ 라는 메시지를 세련되게 전해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저는 결말부에서 여성이 소리를 지르는 부분을 읽을 때 가장 큰 무서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런 느낌을 받고 즐기려고 공포 소설을 읽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공포 소설에서 섬뜩하고 뒷골이 짜릿한 공포를 느꼈으니 이 공포 소설을 제게 성공적인 선택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브릿G 의 독자 분들은 이 작품을 어떻게 보실 지 궁금하네요. 이 작품은 제가 항상 추구하는 ‘재미에 올 인한’ 공포 소설입니다. 복잡한 메시지나 몇 번 씩 읽어야 알 수 있는 장치 같은 건 없습니다. 그래서 더 만족스러운 것 같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