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 나라의 이대리 비평

대상작품: 4번 출구 (작가: 김완, 작품정보)
리뷰어: 노르바, 2시간 전, 조회 4

줄거리

 

1. 왜 ‘형광색 구체’여야 했을까

형광색 구체는 이 소설에서 가장 이상하고 불쾌한 존재다. 테니스공 만한 크기, 형광색, 그리고 그 위에 쓰인 “시작”이라는 글자. 이 구체는 민석의 세계에 난데없이 침입해 규칙을 만들고, 판정을 내리고, “최선을 다해주세요~”라는 경쾌한 목소리로 민석을 몰아붙인다.

 

2. 토끼-앨리스-조현병: 부조리에 적응하는 자의 초상

민석이 거대한 토끼를 봤을 때 떠올린 것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고, 곧바로 ‘조현병’이라는 단어가 그 이미지를 대체한다. 이 연상의 흐름은 단순히 민석이 자신을 정신착란 상태라고 결론내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민석이 자신이 처한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3. “증명하라”: 폭발해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

마지막 과제에서 민석은 형광색 구체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다. “생각에 너무 깊이 빠져 있었다.” 그가 듣는 것은 오직 “증명하세요!”라는 말뿐이다.

 

4. “기계에 나사 하나”: ‘별볼일 없는 존재’라는 안도와 공포

민석이 결국 지각해서 회사에 도착했을 때, 아무도 그를 나무라지 않는다. 김차장은 “오늘 오후에 이번 기획 미팅 있어요”라며 업무 지시만 하고 빠져나간다. 후배 승준은 “오늘 회식 기억하시죠?”라며 친절하게 말을 건넨다.

 

5. 끝없는 계단, 사라지지 않는 것들

민석은 계단을 끝없이 오르지만 도착하지 못하고, 도망치지만 벗어나지 못한다.

형광색 구체는 그에게 “창의력, 문제해결능력, 조직적응력”을 요구하지만, 정작 그 과제들은 황당하고 무의미하다.

토끼는 그를 쫓아오고, 그는 토끼를 때리지만, 토끼는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모습을 바꿔 그의 곁에 남을 뿐이다.

민석이 눈을 떴을 때, 그는 한 시간 동안 계단 중간에 쓰러져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한 시간은 현실이었을까, 환각이었을까?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민석의 삶 자체가 이미 끝없는 계단이기 때문이다. 그는 오늘도 계단을 오를 것이고, 내일도, 모레도 오를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그가 어디까지 올라갔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도 힘드니까. 그들도 하찮은 나사 하나니까.

“오늘도 평소와 같이 길고 피곤한 일상의 시작이다.”

이 마지막 문장은 절망적이면서도, 그저 무덤덤하다. 조금 전까지 스스로 ‘조현병’을 의심할 정도의 사건을 겪었음에도 ‘오늘도’ ‘평소’ ‘일상’ 이라고 말한다.

민석은 정말 미쳤을까? 아니, 우리는 미쳤을까? 아니면 이 세계가 미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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