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회사원 민석은 지각을 피하기 위해 평소 피하던 길고 가파른 4번 출구 계단을 오른다. 그런데 계단은 끝없이 이어지고, 형광색 구체가 나타나 기묘한 ‘게임’을 제안한다. 거대하고 더러운 토끼에게 세 번 잡히면 실패, 세 번의 과제를 성공하면 승리라는 규칙. 민석은 ‘창의력’, ‘문제해결능력’, ‘조직적응력’을 측정한다는 황당한 과제들을 수행하며 계단을 오른다. 마지막 과제에서 민석은 격분해 토끼를 폭행하고, 토끼는 나영,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민석 자신의 모습으로 변한다. 정신을 차린 민석은 계단 중간에 쓰러져 있었고, 한 시간이 흘러 있었다. 결국 지각해서 회사에 도착하지만, 아무도 그의 지각을 문제 삼지 않는다. 민석의 피곤한 일상이 다시 시작된다.
1. 왜 ‘형광색 구체’여야 했을까
형광색 구체는 이 소설에서 가장 이상하고 불쾌한 존재다. 테니스공 만한 크기, 형광색, 그리고 그 위에 쓰인 “시작”이라는 글자. 이 구체는 민석의 세계에 난데없이 침입해 규칙을 만들고, 판정을 내리고, “최선을 다해주세요~”라는 경쾌한 목소리로 민석을 몰아붙인다.
형광색은 경고의 색이다. 공사장 표지판, 안전조끼, 주의 테이프. 그것은 ‘여기 위험하니 조심하라’고 외치는 색이지만, 너무 흔해서 우리가 무감각해진 색이기도 하다. 민석이 살아가는 세계는 회색이며 동시에 그 자체로 형광색 경고등이 난무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리고 민석은 그 경고를 무시하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민석은 그 이질적인 형광색 구체를 무시하고 지나치려 한다. 형광색 구체의 목소리는 또 어떤가. 싸구려 내비게이션 같은, 노래방 천장 조명 같은, 지나치게 밝고 경쾌한 톤. 형광색 구체는 민석이 벗어날 수 없는 ‘시스템’ 그 자체의 형상화가 아닐까. 그것은 민석에게 선택권을 준 척하지만(“시작 버튼을 누르셨네요~”), 실제로는 민석이 아무것도 모르고 손가락으로 튕기는 순간 이미 게임은 시작되어 있었다. 마치 민석이 “영화를 만든답시고” 토익을 포기한 순간, 혹은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시던 순간, 이미 그의 인생이라는 게임이 시작되어 있었던 것처럼.
그것은 민석에게 “창의력, 문제해결능력, 조직적응력”을 요구하는 기업 면접관의 목소리이고, “토익 점수 하나 제대로 따놓지 못한” 민석을 판단하는 사회의 목소리다. 그 목소리는 친절한 척하지만 폭력적이고, 객관적인 척하지만 부조리하다.
2. 토끼-앨리스-조현병: 부조리에 적응하는 자의 초상
민석이 거대한 토끼를 봤을 때 떠올린 것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고, 곧바로 ‘조현병’이라는 단어가 그 이미지를 대체한다. 이 연상의 흐름은 단순히 민석이 자신을 정신착란 상태라고 결론내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민석이 자신이 처한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논리가 통하지 않는 세계, 규칙이 수시로 바뀌는 게임, “왜?”라고 물어도 아무도 답이 없는 상황들. 민석이 마주한 끝없는 계단, 황당한 과제들(“DNA를 외워라”, “김치와 물 없이 김치찌개를 끓여라”)은 앨리스가 마주한 세계와 닮아 있다. 하지만 민석은 앨리스가 아니다. 앨리스는 호기심으로 토끼굴에 뛰어들었지만, 민석은 지각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계단을 올랐을 뿐이다. 앨리스에게는 모험이었지만, 민석에게는 생존이다. 그리고 민석은 곧 조현병을 떠올린다. “사고, 감정, 지각 등에 광범위한 이상행동을 일으키는 병.” 민석은 자신이 미쳤다고, 최소한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민석의 감정은 명확한 절망이 아니라 “천천히 축적되어 어느 순간 임계점에 도달한 침전된 무력감”이다. 그는 하루하루를 버티고, “에스컬레이터에서도 굳이 걸어 올라가지 않”으며, “횡단보도에 파란 불이 깜빡여도 뛰지 않”는다. 일찍 일어나 걸어서 출근하는 것 조차 사치다. 그는 저항하지 않는다. 저항할 힘도, 이유도 없다. 대신 그는 적응했다. 부조리한 사회에 억지로 끼워 맞춰지며, 자신이 미쳐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출근을 해야 월급을 받고, 월급을 받아야 병원비를 낼 수 있다”고 되뇐다. 토끼-앨리스-조현병으로 이어지는 민석의 연상작용은 바로 이 지점을 건드린다. 민석은 자신이 부조리한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는 그 세계를 바꿀 수 없고, 빠져나갈 수도 없다.
하지만 정말 미친 것은 민석일까, 아니면 이 세계일까? 끝없는 계단, 더러운 토끼, 형광색 구체. 이 모든 것이 환각이라면, 그것은 민석의 정신이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다. 하지만 만약 이것이 민석이 살아가는 현실의 은유라면? “코끼리를 하마로 바꾸는 방법”을 묻는 면접관, “1억 2천이 소액투자”인 부동산 시장, “할 줄 아는 게 뭐야?”라고 묻는 애인… 이 세계 자체가 이미 조현병적 부조리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의심한다. “내가 미친 걸까?” 그것은 자기혐오이자, 동시에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기도 하다. 세계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대신, 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 미친 사람은 스스로를 미쳤다고 하지 않는다. 때문에 역설적으로, “나는 미쳤다.” “빨리 병원에 가야하는데.”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순간, 민석은 스스로 ‘내가 미친게’ 아니라고 외치는 것이다. 그것이 민석이 선택한, 아니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적응의 방식이다.
3. “증명하라”: 폭발해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
마지막 과제에서 민석은 형광색 구체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다. “생각에 너무 깊이 빠져 있었다.” 그가 듣는 것은 오직 “증명하세요!”라는 말뿐이다.
“뭘 증명하라는 거야? 내가 토익 900점을 맞추고 빨리 취직을 했어야 했냐? 씨발, 그게 증명이야?” 민석이 토끼를 후려갈기는 장면은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다. 그는 주먹질을 하고 발길질을 한다. “눈알이 빨간 색 당구공이든, 이빨에 치석이 끼었든, 털가죽에서 빨지 않은 겨울 코트 냄새가 나든” 상관없이. 그리고 토끼는 모습을 바꾼다. 나영,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민석 자신. 민석은 자신을 실망시킨 모든 것들을, 자신이 실망시킨 모든 것들을, 그리고 자기 자신을 때린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아무리 주먹질을 하고 발길질을 해도 흩어지기만 할 뿐, 그 모든 것들은 없어지지 않았다. 나영도, 민석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여기에서 저기로 그냥 자리만 옮길 뿐이었다.” 민석의 폭력은 무력하다. 그는 토끼를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때리지만, 토끼는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흩어질 뿐이다. 그는 분노할 수 있지만, 바꿀 수는 없다. 그는 저항할 수 있지만, 벗어날 수는 없다. 나영과의 이별, 어머니의 죽음, 아버지의 무력함, 그리고 자신의 무능함. 이 모든 것은 민석이 아무리 때려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형태를 바꿔 민석의 삶 어딘가에 계속 존재할 뿐이다. “증명하라”는 말은 민석이 평생 들어온 요구다. 네가 쓸모 있는 인간임을 증명하라. 네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라. 네가 살아 있을 이유가 있음을 증명하라. 하지만 민석은 안다. 아무것도 증명되지 않는다는 것을. 토익 900점을 받아도, 1억 2천을 모아도, 지각하지 않아도, 그는 여전히 “기계에 나사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4. “기계에 나사 하나”: ‘별볼일 없는 존재’라는 안도와 공포
민석이 결국 지각해서 회사에 도착했을 때, 아무도 그를 나무라지 않는다. 김차장은 “오늘 오후에 이번 기획 미팅 있어요”라며 업무 지시만 하고 빠져나간다. 후배 승준은 “오늘 회식 기억하시죠?”라며 친절하게 말을 건넨다.
왜? “기계에 나사 하나 빠진다고 안 돌아가는 거 아니”기 때문이다. 민석이 없어도 회사는 돌아간다. 민석이 지각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민석’은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민석은 그것에 안도한다. 이것은 현대인의 역설적 안정감이다. 우리는 자신이 중요하기를 바라지만, 동시에 중요하지 않기를 바란다. 중요하다면 책임이 따르고, 기대가 따르고, 실패했을 때의 낙인이 따른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다면? 그저 나사 하나라면? 그렇다면 우리는 빠져도, 늦어도, 망가져도 괜찮다. 왜냐하면 우리가 없어도 기계는 어차피 돌아가니까. 민석이 사무실에서 느끼는 “안심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감정”은 바로 이것이다. 그것은 “고향집에서도, 자취방에서도, 아버지 옆에서도, 여자친구였던 나영의 옆에서도 느끼기 어려웠던 감정”이다. 왜? 그곳에서 민석은 ‘민석’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들로서, 연인으로서, 개인으로서. 하지만 사무실에서 민석은 ‘이대리’일 뿐이다. 교체 가능하고, 익명적이고, 중요하지 않은 부품. 하지만 이 안도감은 동시에 공포다. 민석은 자신이 “보잘 것 없는 낙오자”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는 이 자리를 잃으면 “다시 쓸모없는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열패감 섞인 두려움”을 느낀다. 민석은 나사 하나가 되는 것에 안도하지만, 동시에 그 나사조차 되지 못할까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그는 끝없는 계단을 오른다. 지각하지 않기 위해. 잘리지 않기 위해. 월급을 받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5. 끝없는 계단, 사라지지 않는 것들
민석은 계단을 끝없이 오르지만 도착하지 못하고, 도망치지만 벗어나지 못한다.
형광색 구체는 그에게 “창의력, 문제해결능력, 조직적응력”을 요구하지만, 정작 그 과제들은 황당하고 무의미하다.
토끼는 그를 쫓아오고, 그는 토끼를 때리지만, 토끼는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모습을 바꿔 그의 곁에 남을 뿐이다.
민석이 눈을 떴을 때, 그는 한 시간 동안 계단 중간에 쓰러져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한 시간은 현실이었을까, 환각이었을까?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민석의 삶 자체가 이미 끝없는 계단이기 때문이다. 그는 오늘도 계단을 오를 것이고, 내일도, 모레도 오를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그가 어디까지 올라갔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도 힘드니까. 그들도 하찮은 나사 하나니까.
“오늘도 평소와 같이 길고 피곤한 일상의 시작이다.”
이 마지막 문장은 절망적이면서도, 그저 무덤덤하다. 조금 전까지 스스로 ‘조현병’을 의심할 정도의 사건을 겪었음에도 ‘오늘도’ ‘평소’ ‘일상’ 이라고 말한다.
민석은 정말 미쳤을까? 아니, 우리는 미쳤을까? 아니면 이 세계가 미쳤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