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내가 결정할 수 없어 서글픈 공모(감상)

대상작품: 이름 (작가: 끼앵끼앵풀, 작품정보)
리뷰어: 무강이, 2시간 전, 조회 7

홈페이지에서 읽기 : https://paper.wf/amudoge/ireum

TRPG 씬에는 유명한 농담이 있습니다. ‘엑스트라한테 이름 붙일 때 조심해라’는 농담인데 정말 겪어 본 사람만 압니다. 지나가던 단역 A인데 지칭어가 필요해서 ‘이름’을 부여했더니 생명력을 가지고 아득바득 엔딩까지 플레이어들과 동행하는 그 경험을 말이죠.

역할놀이 엑스트라와 이름의 관계도 각별한데, 소설 주인공과 이름의 관계도 그러하지 않을 리 없죠. 기구한 팔자나 성격의 캐릭터들은 저마다 특별한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평범하다면, 의도된 평범함(이름)과 특별함(그 캐릭터만이 가지는 과장된 특징)이 조화를 이루는 상태일 거구요.

만약 인용을 하게 되면 (이를테면 <오디세이아> 등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인용하는 수많은 작품들) 그 캐릭터는 인용된 대로의 삶을 살게 될테고, 의도적으로 비워놓는다면 그만큼이나 많은 의미를 가지게 될 겁니다.

제가 소설을 쓸때도 이름 관련으로는 웬만해선 조심하는 편입니다. 저같은 경우엔 최대한 의미를 담아내려 했었습니다. 이를테면 제가 <청춘 환상 검무곡>에서 썼던 주인공들 이름인 하양, 산새, 달래, 모란에는 제각기 모티브가 있었지만 솔직히 잘 살아나진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그 친구들은 제 이름대로는 산 것 같네요. 정확히는 이름이 주는 ‘느낌’대로요.

 

끼앵끼앵풀님의 작품 <이름>을 이야기하기 전에 뜬금 없는 잡소리부터 먼저 한 이유는, ‘이름’이라는 개념이 지닌 독특한 성격이 작품을 지배하기 때문일 겁니다. 이름은 날 때부터 타인에 의해 결정됩니다. 꼭 사람이 제 이름만큼의 삶을 산다는 보장은 없지만 매 순간 제 지칭어로 듣고 사는 것이 이름인데 그 존재감을 무시하고 살 수는 없을 겁니다.

이름 없는 소녀의 ‘카르마’로 얽힌 연자죄는 소녀의 상냥함을 무시하고 자꾸만 그녀를 가혹한 상황으로 몰아갑니다. 소사는 ‘파르바예’라는 가문의 이름에 짓눌려 스스로를 얽매어갑니다.

이름을 갈구하는 용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용’이 아니고 ‘용괴’인 이유는, 이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름이 없기 때문에 자아의 닻을 내리지 못하는 존재들. 어찌 보면 소사의 입장에서 그들이 괴물인 이유도, 전쟁병기에 불과한 이유도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름의 존재는 죄로 얽히고, 부재는 자아의 형성을 뭉개버립니다. 굴레는 자꾸만 얽혀갑니다. ‘이름’을, 스스로 살아갈 팔자를 결정할 수 없는 기구함은 읽는 사람의 감정을 슬픔으로 몰아넣습니다. 네, 그래서 소녀는 슬픈 거에요.

 

세밀한 묘사의 부재가 아쉬울 수는 있겠습니다. 이를테면 저는 생생한 묘사의 현장감이나, 혹은 따로 1인칭 시점을 설정해서 주절대는 것을 (혹은 둘 다를)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저라는 독자 개인의 취향일 뿐입니다.

그러나 전투 장면의 묘사만큼은 꽤 박력이 있었고, 별 생각 없이 클릭한 작품에서 예상치 못한 서정성을 느꼈다는 점이 굉장히 매력으로 다가왔달까요. 끼앵끼앵풀 님의 <이름>은 좋은 황금 연휴 선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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