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못 태어난 거면 어떡하지… 감상

대상작품: 잘못 태어난 당신 (작가: 아게오게, 작품정보)
리뷰어: 태윤, 6시간 전, 조회 4

미스터리 장르의 가장 큰 미덕은 독자에게 끊임없이 궁금증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아무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훅 던지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개연성과 서서히 긴장감을 높여갈 수 있는 이야기의 구조를 가지고 있어야겠죠. [잘못 태어난 당신]은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미스터리물입니다만, 읽고 나니 갑자기 생각이 많아져서 독자 여러분들과 제 생각을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이 작품은 미스터리 이면서 호러 입니다. 그래서인지 온갖 궁금증과 싸워가며 완독하고 나면 이후 찾아오는 건 서늘한 공포입니다. 이런 공포는 원초적인 공포라기 보다는 코스믹 호러 계열의 작품을 읽었을 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합니다. 거대한 존재 앞에 섰을 때 엄습하는 절망감과 무력감 같은 종류라고 봐야 할까요? 이 작품에서 느껴지는 무력감은 성질이 조금 다르긴 합니다만, 그것은 독자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뭐라고 규정 짓기는 힘들겠네요.

제가 본 이 작품의 특징은 약간 모호한 대비 입니다. 보통 이런 작품에서는 갈등 구조를 명확히 하고 반전의 재미 같은 것도 생각해서 선악의 대비를 분명하게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초반의 분위기와는 달리 후반부로 갈수록 그 대비가 점차 모호해집니다. 그러면서 독자들을 점차 불편하게 만드는 결말을 향해 달려가게 됩니다. 그리고 듣고 싶지 않았던 질문이 점차 분명해집니다.

‘괴물이 나인지 저 녀석 인지가 너한테 중요한가?’

결말을 확인하고 나면 코치토와 림보의 정체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둘 중 누가 진실을 말했던 간에 주인공은 스스로의 영혼을 해방시키지도 못 했을 것이고 내 것 같지 않은 지금의 자리에서 벗어나지도 못 했을 테니까요. 차라리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말해주길 바랬을 만큼 막막하고 끔찍한 결말에 두려움이 느껴집니다.

이 작품의 결말에 끔찍하다는 표현까지 사용하는 이유는 결말까지 가는 과정에서 보여준 빌드 업 때문입니다. 사실 라 노벨에서 등장한 후, 이제 판타지 소설의 단골 소재가 된 이세계 전생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 주인공에게 절망적이지 않으면 개연성을 부여하기가 힘듭니다. 지금까지의 삶과 그동안 쌓아온 모든 유, 무형의 모든 걸 포기할 정도의 각오가 있어야 하니까요. 이 작품에서는 갑자기 주인공을 덮치는 트럭 대신 친절하게 방법과 도구까지 준비해주는 존재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 한 발을 내딛지 못합니다.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들 대부분은 누군가에게 설득당했다고 해서 스스로를 해치는 결정을 쉽게 내리지는 못할 겁니다. 아무리 지금의 우주에 내 자리가 없는 것 같다 해도 말이죠.

이런 생각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건 작가님이 작품 속에 두신 여러 장치들 때문입니다. 작품 내에서 코치토와 림보는 하양과 검정으로 분명한 색의 대비를 보이는데, 림보의 등장으로 그 대비가 드러난 순간부터 백색의 코치토가 왠지 밝은 이미지로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의혹이 걷어진 것 같은 순간에 오히려 정체를 밝히기도 합니다. 조금 혼란이 오지만 그 때 쯤 되면 인정하기 싫어도 받아들여야 하는 겁니다. 그 곳에 주인공을 구해줄 구세주나 다른 세상 따위는 없다는 걸 말이죠.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너무 힘들다는 것이 어딘가 나 만을 기다리고 있는 낙원 같은 장소가 있다는 뜻은 아닌 거니까요.

어떤 사람들은 지금의 나를 완전히 리셋 해주는 이세계를 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지금의 내 모습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이세계로 가길 원합니다. 저는 다른 차원의 우주라던가 이세계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곳에서 내가 지금과는 다른 엄청난 존재로 대접을 받거나 또는 그 세계의 위기를 해결해 줄 구세주로 모든 이가 나 만을 기다리고 있는 우주가 있을 것 같지는 않네요.

그래서인지 저는 작품에서 주인공에게 코치토와 림보가 나타난 것이 비극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하는 막연한 기대가 제대로 박살이 난 거니까요. 브릿G의 독자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이신가요?

1. 현실이 암울하지만 그렇다고 내게 희망적이지 않은 다른 세상에 대해 알고 싶지 않다. 계속 암울함을 등에 지고 사는 게 낫다.

2. 확인을 할 수는 없지만 내가 갈 수도 있었던 다른 세상에 대해 알게 되면 상상 만으로도 힘이 될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닿을 수 없는 미지인 채로 삶을 마쳐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계속 우울해질 것 같긴 하다.

어느 쪽을 선택하던 별로 기분이 좋을 것 같지 않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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