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매우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매우매우 스포일러 함유합니다.
매우매우 매우매우 매우합니다(?)
이 작품은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차라리 극본에 가깝다. 그렇지만 나는 그쪽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자 한다. 이 작품이 ‘공모’ 중인 까닭에 내가 따로 설정할 수 있는 것이 없기에 여기서 밝혀둔다. 이것은 내가 이 작품을 읽고 느낀 바에 대한 짧은 감상이다. 얼마나 짧을 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나씩 이야기해보도록 하려 한다.
1. 리뷰와 리뷰어 그리고 리뷰 대상의 관계
민동수 : 넌 이게 문제야. 왜 상징을 뚜렷하게 못해? 뭘 말하고자 하는 건데?
박건우 : 그게 뭐냐면 주인공이 혼란을 극복하게 되는.
민동수 : 난 그냥 입으로 내 의견 말하는 거다. 넌 소설로 말해야지.
이것이야말로 리뷰와 리뷰어, 그리고 리뷰 대상 사이의 관계를 가장 잘 나타내는 세 문장이 아닐까 한다. 민동수는 그저 자신의 의견과 감상을 낼 뿐이다. 그것을 가지고 얼른 설명하려 드는 박건우의 행동은 매우 무의미하다. 그 설명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고 해도 그러하다. 당장 내 앞의 독자는 설득할 수 있다고 해도, 내 작품을 읽은 다른 사람의 감상은 여전히 수정되지 않은 채다. 그들을 일일이 설명하려 들어서는 끝이 없다.
작품을 수정하여 다시 읽게 하던가, 아니면 그의 의견이 틀렸다고 판단하던가 둘 중 하나의 방법 만이 유효하다고 나는 믿는다.
2. 당신은 왜 글을 쓰기 시작했죠? 무엇이 계속 글을 쓰게 만들죠?
김태훈 : 시 써서 뭐 먹고 살래? 한량 짓 하려 대학 다녀? 하니까 좆같아서 열심히 쓴다. 난 당선되면 당선 소감에 그 새끼 욕 쓸거야.
지난 번 브릿ㅉ 사람들과의 모임에서 나는 내 글쟁이적 근원을 밝혔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당시 나는 톨킨과 루이스에 푹 빠져있었다. 해리포터보다는 반지의 제왕이었고, 새벽 출정호의 항해였다. 나는 로우 판타지1보다는 하이 판타지2가 더 좋았고, 그래서 그런 것만 읽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야 처음으로 한국의 판타지를 읽었다. 친구가 타자의 드래곤 라자를 강력히 추천하여, 도서관에서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그렇지만 톨킨이나 루이스에게서 받았던 것만큼 감명을 받지는 못했다. 그 다음에 추천받은 것은 더 심했다. 달빛 조각사였는데, 그걸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한국 판타지가 이 정도라면 내가 써도 출판 되겠는 걸?’
이런 치기어린 생각이 내 글쟁이 인생의 출발점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날 밤에 아버지의 IBM 노트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나는 출판 작가가 되지 못하였다. 10년이 훨씬 넘은 이야기다. 그런데도 나는 왜 계속 글을 쓰고 있을까. 그것은 주객이 전도되었기 때문이다. 처음 시작은 매우 치기어린 호승심에서 나온 것이지만, 지금은 글 쓰는 게 좋아서 쓴다. 나는 그저 쓰는 그 자체에 만족하기 때문에 글을 계속 쓰고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있는 ‘목적의식’이란 게 내게는 없다. 세계 최고나 문학상 수상 이런 것이 목적이 아니라, 글 쓰는 자체가 목적이니까 나는 글이 수단이 아니고 목적 그 자체인 셈이다.
3. 마침표는 어디에 찍어야 좋을까.
서정은 : 너희들 모두 잘 들어! 나 실은 수능 봤어. 결과 잘 나올 거야. 이제 여기 때려 칠 거야. 사 년제 대학에 갈 거야. 니들 전문대 나와서 편입해봤자 평생 편입 꼬리표 매달고 살아. 그리고 글 배워서 뭐해 먹고 살래? 너희는 방향을 잘못 잡았어. 너희는 삶에 지쳐갈 거야. 그리고 여기서 배운 것들, 함께한 시간들 잊어버리겠지. 그리고 끝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다면 난 정말 행복할 거야. 안녕. 잘 있어라! 난 절대 이 방향으로 눈길 주지 않을 거야. 남은 시간 계속 열심히 해라.
나는 나의 문장이 목적이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바로 위에서 이야기했지만 나는 세계 최고의 문인이 되는 것도 문학상을 수상하는 것도 별로 생각이 없다. 그것이 나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 경우는 특수하다고 하겠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글을 쓰면서 수준 높은 글쟁이가 되고싶어하고, 문학상을 수상하고 걸출한 문인이 되고자 한다. 인간의 기본적인 명예욕 같은 걸까(나는 공감할 수 없어서 잘 모르겠다).
그러나 모두가 이러한 목적을 이룰 수 없다. 그 까닭에 대해서는 후술 할 것이지만, 하여튼 모든 글쟁이가 이러한 목적을 이룰 수는 없는 것이다. 누군가는 문학상을 수상하고 다방면으로 재능을 발휘하고 자신의 소설이 영화로 상영되기까지 하지만, 이런 경험을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너희는 삶에 지쳐갈 거야. 그렇게 말하는 서정은의 심정에 나는 공감한다. 소수의 몇 명만이 이룰 수 있는 목표를 지향하는 것은 스스로를 고통의 구렁텅이에 빠트리는 짓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르겠다. 태양을 향해 쏘아야 태양 근처까지라도 간다고. 그렇지만 태양 근처를 배회하던 이카루스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말하고 싶다. 꿈을 높게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침표를 어디에 찍어야 할지를 아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
꿈이 인생을 좀먹기 전에.
4. 노력이 모든 걸 말해준다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
내 표현이 비관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어느정도 자신이 비관적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렇지만 ‘마침표를 찍는 것’ 만큼은 비관의 소산이 아니다. 꿈에 마침표를 찍는 것은 지극히 이성적인 고민의 결과물로서 나온 발언이다.
선작 21님과의 대화에서도 밝혔지만, 나는 누군가가 세계 제일의 문인이 될지 말지 가늠할 수 없다. 우선 내 실력이 멍청하니까. 그렇지만 그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안다. 그의 노력이 대수로운 것이 아님을 안다.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노력하면 될 거라고.’ 나는 노력하면 된다는 말이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위험 수준이 거의 마약 급이다. 노력하면 될 거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자신이 성공하지 못하는 까닭을 노력에서 찾으며, 안 그래도 열심히 하던 자신 스스로를 더욱 몰아붙인다.
노력 만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노력 만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말은 타인을 상처주는 말이 될 수도 있다. 만약 당신이 열심히 노력하였고, 최고의 글쟁이가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타인에게 ‘댁이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기에 1등이 될 수 없었던 거요’ 라고 이야기할 수 있나? 정말로 그 상대방의 노력이 자신의 노력에 비해 수준이 낮았거나 양적으로 낮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적어도 나는 그럴 수 없다. 그것은 상대방이 지금껏 해온 모든 노력을 멸시하고 괄시하고 등한시하는 짓이다. 개새끼의 어법이다. 그래서 나는 노력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력하는 글쟁이는 좋은 글쟁이다. 그러나 뛰어난 글쟁이가 모두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것이다.
5. 칭찬을 경계하라.
이청아 : 넌 정말 대단해! 소설가 아니고, 다른 뭘 해도 될 거야!
민동수 : 아니! 난 소설가 아니면 죽을 거야.
이청아 : 그럼! 아무도 네 기백을 막을 수 없지. 너는 지금도 충분히 소설 잘 써.
민동수 : 너 보는 눈이 있네?
내가 글을 쓰면서 가장 경계하는것이 타인의 칭찬이다. 그것이 독자의 진실된 반응이라 해도 그렇다. 지난 때 자유게시판에서 ‘리뷰에서의 칭찬과 혹평’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는 당근과 채찍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발전을 원치 않는 글쟁이가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내가 나의 리뷰에서 혹평의 비중을 더 크게 잡는 까닭은 모두가 나와 같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가령 내가 민동수와 같은 칭찬을 들었다고 치자. ‘뼈님 지금도 충분히 소설 잘 쓰세요.’ 이 이야기를 듣고 내가 기뻐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감정은 내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당신 보는 눈이 있군요’라는 반응은 어처구니가 없다. 내가 이렇게 뛰어나다는 것을 당신은 아시는 군요, 라는 건데 스스로가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정말 존재한단 말인가??
게다가 스스로가 뛰어나다고 생각하면 발전이 있을까. 그래서 나는 남들이 내 글을 칭찬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못 썼다고 혹평해주는 편이 더 마음 편하다. 스스로 자만하는 것을 경계할 수 있으니까. 나도 사람인지라 칭찬 들으면 정신이 풀어진다. 헤롱헤롱 거릴 것이다. 그러고 싶지 않다. 남들도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근 보다는 채찍이 더 많았고.
6. 혹시나 하는 덧붙임
이청아 : 서정은 사실 잘 썼어. 우리가 서정은을 미워한 것은 우리가 너무 열심히 해서. 질투에 눈이 멀었어. 눈이 멀어서 남의 글 안 보고, 우리글이 최고라 생각했지.
나는 여러분의 글이 진심으로 구리다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경우가 상대적으로 매우 적었다. 그렇지만 칭찬은 (내 주관적 판단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당근보다 채찍을 쓰는 것은 여러분을 미워하거나 너무 질투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걸 문득 덧붙이고 싶었다.
일단 나는 내 글이 최악이라고 생각하니까, 내 글이 그 누구보다 우수할 리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사실과 다르더라도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 일단 태도가 정중해진다. 겸손해지는 것이다. 과거의 나는 내 글이 매우 뛰어나다 자만했고, 그래서 매우 개새끼였다. 사실은 ‘뛰어남’이라는 것이 매우 상대적이라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그러니 나는 여러분도 이런 태도를 견지했으면 좋을 거 같다. 내 글이 사실은 매우 수준급의 작품이라 하더라도, 나 자신에게는 ‘최악이다, 못났다’ 고 되뇌는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세뇌하는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실제 내 작품의 급과 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또한 겸손해지고 정중해지는 것이 나의 격과 가치를 떨어트리는 짓도 아니다.
짧은 감상이라 했는데 쓰다보니 이야기가 많아졌다. 이 작품, 문예창작과 에이스는 적합한 방식으로 글쟁이 인생에서 벌어질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조명한다. 단순히 읽는 재미 뿐만 아니라, 이들의 상황에 나를 대입하는 재미도 있다. 이러는 경우 흔치 않지만, 나는 브릿ㅉ의 모든 작가 분들에게 이 작품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