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에게도 볕들 날이 올까……?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나는 엑스트라입니다 (작가: 서은채 사용안함, 작품정보)
리뷰어: bridge, 17년 8월, 조회 39

브릿지를 통해 글을 읽기 시작한지 며칠이 되었다. 긴 연재글은 아직 부담스러워서 브릿지 내 중, 단편들을 자주 찾아다니는 중이다. 마치 작은 실타래마냥 조금 훅훅 풀어내다보면 사라져버리는 게 단편이지만, 오히려 단편이라서 더 가볍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게 장점으로 다가오는데 <나는 엑스트라입니다>의 경우 톡톡 튀는 발랄함이 꽤 귀엽게 느껴졌던 단편이었다.

이런 류의 설정은 클리셰를 엎는 클리셰로 굉장히 흔한 편인데, 흔한 소재를 다룬 것치고는 나름의 개성이 느껴졌다. 평소 즐겨 읽었던 책 속의 아무개가 되어 버린 주인공, 트리아나는 조연이자 배경이자 지나가는 1인이다. 간신히 모 가문의 영애라는 타이틀은 붙이고 있지만 그마저도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자신이 가진 환경이 이야기 속에서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되려 여주인공의 급우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집을 각종 테러활동의 핫플레이스로 제공하는 비운의 캐릭터가 되기까지 하고(물론 그들은 그게 누구의 집 마당인지 관심도 없겠지만 말이다), 납치를 당해 자기가 ‘애정해 마지 않는’ 캐릭터에게 구출을 받아도 감사의 인사 한번 올릴 수가 없다.

그럼에도 트리아나는 이 노바디, 아무개의 삶에서 의미를 찾는다. 하스킬.

자신을 먼지 취급하는 그의 태도에 서러워하면서도 그가 자신에게 마법을 써줬다며 즐거워하고, 잘생겼다며 삼창을 해댄다. 이쯤되면 이 굳건한 마인드가 무섭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하루 걸러 하루 목숨을 위협하는 사건이 일어나지만 매번 살아남다보니 이젠 무슨 사건이 일어나도 덤덤한 트리아나의 마음에도 여전히 말랑한 부분은 남아있다. 몇번이나 자신을 구해주고, 죽음의 문턱을 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주고, 그렇게 몇번이나 인연이 닿은 듯 보였지만 여전히 일정한 리액션 말고는 자신에게 할애해줄 시간도 여유도 생각도 없어보이는 하스킬을 대할 때 특히 더 그러했다. 그러나 그 이야기 속에서 트리아나는 여전히 배경 속 지나가는 1인이었고, 주연들의 행복한 결혼식을 대미로 하스킬과 트리아나의 인연은 끊어진다. 그래도 나이 먹어 죽을 때까지 삶이 지속된 걸 보면, 이 보잘것없는 조연들에게도 나름의 배려가 있었던 게 아닐까.

 

이렇게 길었던, 그리고 꿈같았던 인생을 마친 ‘연’은 원래 자기가 있어야 했을 공간에서 눈을 떴다. 그러나 이야기는 장난을 멈출 생각이 없었던지 또다시 ‘연’에게 시련을 준다. 자신을 보잘것없는 조연으로 보이게 할 인물들을 주변에 욱여 넣고, 운명의 장난처럼 하스킬 역시 다시 만나게 한 것. 여전히 까이고 까이는, 돌아오는 대답이라곤 무한반복되는 특정 문구이긴 하지만 그래도 연은 도전하고 또 도전한다. 그리고 분명 어느날 그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되겠지.

짧은 이야기가 끝나고 난 후에도 이어질 연과 하스킬의 하루하루가 얼추 그려지는 것을 보면, 이야기의 흐름도 괜찮았고 캐릭터도 일관적으로 잘 그려낸 듯 하다. 그러나 특정 캐릭터에게 계속해서 집착하고, 무시당하면서도 그런 행동에 의의를 제기하기는 커녕 애정을 무럭무럭 키워나가는 것을 보면 트리아나의 사랑도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사실 전반적으로 느끼기에 이건 사랑이라기보다는, 연예인을 향한 일방적이고 눈먼 애정공세같았다. 연예인에 푹 빠져 모든 마음을 올인한 중학생을 보는 것 같기도 했으며, 트리아나의 경우 생동감있는 캐릭터라기보단 일반적인 클리셰를 빼다박은, 말투마저도 어디선가 분명 봤던 흔한 캐릭터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

하나의 생각을 덧붙여 보자면, 트리아나가 아무리 다가가려 애써도, 자신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고 싶었음에도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소설 속 인물이었듯 어쩜 하스킬도 자기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진 ‘설정’ 때문에 트리아나를 수십번 가까이 죽음에서 구해주면서도 그 이상의 루트를 전개할만한 능력은 되지 않았던게 아닐까. 트리아나의 삶을 마치고 돌아온 연의 활동반경이 훨씬 능동적이고 자유로워진 것을 보면, 하스킬이 정해진 루트에서 벗어날 그 날도 그렇게 멀지만은 않은 듯 하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