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소설은 플롯 읽는 맛에 읽고 어떤 소설은 인물 묘사와 작가의 통찰에 감탄하며 읽는다. 소설마다 읽는 맛이 다르다. 이 소설은 시체의 진액- 생각만으로 진저리쳐지고 오싹한- 가운데 통쾌한 맛으로 읽는 소설이다.
여기 박사가 있다. 그는 신앙을 가진 적 있지만 소원을 이룬 적 없어 회의론자가 된 사람이다. 각종 종교를 연구하지만 그건 현실적 문제일뿐 그는 종교에 대해 매우 회의적인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시체를 믿는 교단에서 시체의 목소리를 듣게된다면?
설정부터 범상치 않고 무엇보다 유쾌한 것은 시체에 대한 작가의 눈이다. 어떤 이들은 시체가 나온다는 것에 대해 불쾌함을 느낄 수 있지만 나는 좋아하는 편이다. 시체, 부패 과정, 우리가 시체를 대할 때 느끼는 불쾌함과 공포, 경험하지 않은 이상한 것에 대한 야릇한 동경이 잘 드러나있다. 작가는 사회가 말하지 않는 것, 인간의 은밀한 욕망에 대해 까놓고 말하는 사람이지 않는가? 온전히 작가의 상상인지 작가가 시신의 부패과정에 대해 어느정도 공부한 상태에서 쓴 묘사인지는 모르나 내게는 생생하게 다가왔다.
또한 작가는 종교행위에 대해 조롱하는 시선을 가지고 박사의 모습을 다루며 그 필체가 유쾌하여 웃음과 카타르시스를 자아내게 만든다.
아쉬운 점은 유머러스한 글들이 그렇지만 박사라는 캐릭터가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의 냉철한 시선을 나타내는 기능적 캐릭터라 캐릭터의 내적 서사- 특히 갑자기 접신 후 선지자를 자청하는 부분- 이 다소 무리하는 감이 있다는 점이다. 종교행위 또한 기복신앙을 넘어서는 부분도 있는데 이에 대한 작가의 새로운 생각을 보고 싶기도 하다.
아쉬운 점도 있지만 유쾌하고 찐득찐득함이 넘치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