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표법’은 거들 뿐, 어설픈 AI와 기득권이 판치는 사회에 대한 제3자적 시각 공모(비평)

대상작품: 매표법 mk2 (작가: 아침은삼겹살, 작품정보)
리뷰어: 노르바, 4시간 전, 조회 11

1. 구조적 특성

구조가 쫌 복잡하다. 제대로 이해만 하면 재미있는 구조긴 하다.
소설 서두에 “각각 독립적으로 읽을 수 있으나, 순서대로 읽을 경우 하나의 구조로 연결됩니다”라고 명시되어 있듯, 소설은 두 개로 나뉜다.

1부 (매표법 시행 당시, 에피소드 1~6)- 매표법이 통과되기 직전, 혹은 막 시행된 시점을 배경으로 6개 에피소드.
에필로그 1-매표법 위헌 결정 직후 도심의 혼란을 중계하는 뉴스 방송.

2부 (매표법 대시(—), 에피소드 1~6)- 위헌 결정 이후의 혼란과 후폭풍을 담은 6개 에피소드.
에필로그 2- 위헌정당 해산심판 기각과 장기화되는 후유증을 전하는 뉴스.

즉, 전체 구조는 [1부] → [에필로그1: 전환점] → [2부] → [에필로그2: 수습] 의 고리를 이루며, 에필로그가 두 부분을 연결하는 경첩 역할을 한다.

 

2. 시점의 분산과 캐릭터 연결

각 에피소드는 서로 다른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으며, 표면적으로는 완전히 독립적이다. 그러나 인물들은 이면에서 미묘하게 연결된다. 1부 5화의 ‘노인(고 씨, 고영환)’의 재래식 택시는 1부 1화에 나왔던 기자 최현상이 2부 4화에서 현금으로 타는 그 택시이고, 그 노인은 2부 6화에서 채권 소멸을 확인받는다. 1부 3화의 송사장은 2부 3화에서 채권 압박의 피해자로 돌아온다. 1부 6화의 난임부부의 보험 에이전트 ‘고설아’는 1부 5화 노인의 딸로, 에피소드끼리 서로의 앞뒤를 채운다.

 

3. 줄거리 요약

근미래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정치경제융합발전법’—통칭 매표법—이 통과된다. 이 법은 유권자가 자신의 투표권을 타인에게 합법적으로 매도할 수 있도록 허용한 법률이다. 표를 판 사람은 이후 선거 참여 자격을 잃는다.

1부는 법 시행 전후의 단면들을 보여 준다.
1) 기자 최현상은 데스크의 압력으로 매표법 기획 기사를 떠맡는다. 광고주인 대형 보험사가 법을 지지하는 기사를 원하고 있고, 현상 본인도 아버지의 전세금 때문에 법에 개인적 이해관계가 생긴다.
2) 지방 행정과장 김선택은 보궐선거를 앞두고 표를 팔거나 산 유권자 현황을 파악할 방법이 없어 난감해하다가, 투표 당일 선거인명부 확인 직원이 유권자에게 일일이 거래 내역을 물어보자는 무모한 방안을 내놓는다. 직원들의 보이콧과 반발은 거세다.
3) 보험 브로커 박사장은 표 매도자와 매수자를 연결하는 가게를 차리고, 거기서 발생하는 환전 마진과 보험 상품 판매로 이익을 구조화한다. 노령층은 컵라면 박스를 들고 나가고, 진짜 수익은 젊은 층의 고가 표에서 나온다.
4) 물류센터 노동자 이씨는 투표권이 없다는 이유로 선거일 당일 근무가 AI 알고리즘에 의해 강제 배정되고, 동료 김씨의 사정은 시스템에 의해 거절된다.
5) 노인 고씨는 재래식 택시를 몰며 하루 6.5크레딧을 번다. 딸 설아는 아버지에게 투표권을 팔고 복지 혜택을 받으라고 설득하지만, 노인은 다음 선거만 하고 정리하겠다고 끝내 고집을 부린다.
6) 불임 클리닉을 찾은 부부는 난자 제공 조건으로 부부 양측과 태어날 아이의 투표권까지 모두 양도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브로커 고설아는 ‘쌍둥이일 경우’라는 질문에 AI 시스템의 지침(“OUT OF SCOPE”)을 받고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에필로그 1에서 매표법은 AI 최고법원재판소에 의해 위헌 결정을 받고, 도심은 혼란에 빠진다.

2부는 그 후폭풍을 보여 준다.
1) AI 최고책임심문관 오대식은 위헌 결정 이후 58년 치의 소송을 어떻게 처리할지 AI 시스템과 시뮬레이션하면서, 노령층 채권을 사실상 탕감하는 전략 E가 자신의 이해관계에도 얽힌다는 걸 발견하고 스스로 기각한다.
2) 장례식장에서 어떤 상주는 죽은 오빠가 매표한 채권을 물려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변호사 상담을 통해 뒤늦게 알게 된다. 상속포기에 대해 언급하니 문제가 복잡해진다.
3) 빚더미에 앉은 송사장은 한 달간 도망 다니다 잡혀 거꾸로 매달린 채 채권 양도 서명을 강요받는다.
4) 기자 최현상은 이제 AI최고책임심문관이 된 오대식 쪽에서 로그 기록을 확보한 상태로, 드론을 통해 몰래 장치를 전달받는 첩보 같은 장면을 연출한다.
5) 배송 라이더는 청소차 때문에 오토바이를 살짝 비켰을 뿐인데 AI데스크는 배송실패로 간주한다.
6) 고영환은 주민센터의 AI 민원 단말기 앞에서 60세 이상 채권 소멸을 확인받고, ‘다시 물어낼 돈은 이제 없냐’는 질문에 시스템은 “환수 대상 금액은 확인되지 않습니다”는 답을 내놓을 뿐이다.

에필로그 2에서 위헌정당 해산심판은 기각되고, 관련 소송과 분쟁은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되며 소설은 끝난다.

 

4. 리뷰

이 소설은 투표권의 상품화라는 단 하나의 가상 입법을 축으로, 그 법이 사회 각 층위에 파고드는 방식을 군상 서사로 재현한 작품이다.

표면적으로는 표 하나가 법적·경제적 채권으로 분해되고, 그것이 보험 상품이 되고, 보이콧의 명분이 되고, 장례식장의 절차가 되는 과정을 각각 다른 시점에서 보여 줌으로써, 독자는 법안 하나 통과되는 것이 실제로는 얼마나 많은 곳에 영향을 주게 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 뒤틀리는지를 살핀다. 김선택 과장은 부당한 방식을 고집하는 관료이지만 동시에 국장 진급 3년 전의 소시민이고, 박사장은 착취적 구조를 설계한 브로커이지만 그 안에서도 나름의 논리로 작동한다. 노인 고씨는 딸의 설득을 거부하면서도 마지막 한 표는 지키고 싶어 한다. 이 작품은 어느 쪽 손도 들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솔직히 처음엔 제목만 보고 정치 풍자 소설이라 생각했고 그냥 쓱 한번 훑은 시점까지도 그러했다. 투표권을 사고판다는 설정 자체가 너무 황당하고 자극적이라, 그게 이 소설의 핵심일 거라 짐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다시 읽고 나니 매표법은 사실 배경일 뿐이었다. 이 소설이 진짜 가리키는 건 따로 있다. 사람들 삶 구석구석에 이미 들어와 있는 AI,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무심하고 어설프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이 소설에서 AI는 똑똑하거나 화려하지 않다. 물류센터의 AI 반장은 동료끼리 사정 봐서 근무를 바꾸는 걸 거절한다. 제사가 있다는 말은 “데이터 외 변수”로 분류되어 튕겨 나온다. 불임 클리닉 상담실 기둥 안의 AI는 부부가 “쌍둥이일 경우엔요?”라고 묻자 “OUT OF SCOPE”라는 세 단어만 띄웠다가 사라진다. 주민센터 민원 단말기는 표를 팔았다가 채권 소멸 혜택을 받은 노인에게 “다른 문의 있으신가요?”를 반복한다. 이 AI들은 전부 규칙대로만 움직인다. 멍청하고 답답한데 그게 무섭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말이 통하지 않으니 이길 자신이 없다’

더 서늘한 건 AI를 설계하고 운용하는 인간 쪽이다. AI 최고책임심문관 오대식은 매표법 위헌 결정 이후 수십 년치 소송을 어떻게 처리할지 AI 시스템과 시뮬레이션한다. 고령층 채권을 사실상 탕감하는 전략 E가 가장 효율적이라는 결과가 나오자, 그는 그 전략을 스스로 기각한다. 자신도 노인 세 명의 표를 가진 채권자였기 때문이다. 공정한 척하는 구조 안에서,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기준을 설정한다는 이 구도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취약계층은 이 모든 구조에서 가장 늦게, 가장 조금 배분받는다. 재래식 택시를 몰며 하루 6.5크레딧을 버는 노인, AI에 의해 선거일 근무가 강제 배정된 노동자, 장례식장에서 뒤늦게 오빠의 채권을 떠안게 된 상주. 이들은 AI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할 창구도, 그걸 뒤집을 방법도 갖고 있지 않다.

이 AI들은 하나같이 규칙에 충실하지만 인간의 맥락을 처리하지 못하거나, 처리를 회피한다. 소설은 이 모든 장면을 담담하게 병치할 뿐, 어느 쪽의 손도 들어주지 않는다. 그 거리두기가 오히려 독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매표법은 위헌으로 끝나지만, AI는 그냥 계속 돌아가고 있으니까.

이 소설은 인간이 시스템을 설계하고 동시에 그 시스템 안에 이해관계자로 존재한다는 문제를 ‘핵심을 찔러서, 완벽하고, 정확하게(…AI밈) 짚는다.

 

5. 구조실험의 장단점

장점
1) 시각의 민주성이다. 기자, 행정과장, 브로커, 노동자, 노인, 불임 부부까지 서로 다른 계층과 직군의 인물들이 각자의 에피소드를 갖는다. 어느 한 인물의 시점에 독자가 고정되지 않기 때문에, 매표법과 AI가 사회 전체에 어떻게 침투하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2) 인물 간 연결을 발견할 때 주는 쾌감이다. 노인 고씨의 재래식 택시가 2부에서 기자 최현상이 몰래 타는 그 택시이고, 고설아는 1부 5화의 딸이자 6화의 보험 에이전트다. 독자가 이 연결을 발견하는 순간, ‘아, 아까 나온 그 사람이네’ 라는 깨달음이 오면서 이야기가 단순한 옴니버스가 아니라 하나의 촘촘한 세계임을 실감하게 된다. 이 장치는 단순히 기술적 재미를 넘어서, 같은 제도 아래 서로를 모르는 채 얽혀 있는 사람들의 현실을 구조 자체로 표현한다.
3) 각 에피소드의 문체 분화다. 관료 서사는 공문서 어투를 흉내 내고, 브로커의 협상 장면은 짧은 문장과 긴 여백으로 긴장을 만들며, AI 심문관의 장면은 홀로그램 패널 데이터 형식을 서술에 끌어들인다. 형식이 내용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각 에피소드가 문체적으로도 자립할 수 있다는 점은 독립 단편으로도 읽힐 수 있다는 서문을 실제로 뒷받침한다.

단점
1) 에피소드 간 밀도 편차다. 1부의 브로커 장면(3화)이나 불임 클리닉 장면(6화)은 짧은 분량 안에서도 긴장과 여운을 잘 살리는 반면, 2부 5화(라이더 에피소드)는 AI 시스템 비판이라는 주제를 반복하는 데 그쳐 서사적 추진력이 약하다. 근데 또 정작 이 2부 5화 때문에 이 소설이 ‘아 AI 시스템 비판이구나’를 깨닫게 되긴 했다.
2) 1부와 2부의 대응 구조가 완전하지 않다. 1부 에피소드와 2부 에피소드가 인물이나 사건으로 대응되는 경우도 있지만, 일부는 연결이 느슨하거나 새로운 인물이 삽입되어 대칭의 논리가 불분명해진다. 구조적 실험을 명시적으로 선언한 작품인 만큼, 1부와 2부의 대응 관계가 더 확실하게 설계됐더라면 전체가 하나의 완결된 형식으로 읽히는 힘이 훨씬 강해졌을 것이다. 약간… 영화 [자카르타] 처럼… 까지는 아니더라도?
3) 구조와 별개의 단점: 오타와 맞춤법 오류가 심하다.

요약하자면, 이 구조 실험은 야심은 충분하지만 완성도는 조금 거칠다. 하지만 군상 서사로서의 가능성은 분명히 보이고, 인물 연결과 문체 분화라는 두 가지 장치는 성공적으로 작동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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