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화 작가의 sf 단편소설 네 편 브릿G 추천

대상 작품: 아마존 몰리 (by 이산화)
리뷰어: 주렁주렁, 8월 10일, 조회 223

* 본 리뷰는 이산화 작가의 [증명된 사실], [아마존 몰리], [무서운 도마뱀], [ 연약한 두 오목면] – 총 네 편의 sf 단편을 대상으로 합니다.

 

 

1. 선언 그리고 호기심

이산화 작가의 sf 단편을 읽면서 제일 먼저 느낀건 등장 인물의 선언이다. 네 편의 단편 모두 1인칭 화자 시점으로 주요 캐릭터는 대부분 과학자(박사이다)이거나 과학 언저리에 발을 걸친 사람들이다. 일반인보다 훨씬 더 전문가이다. 그리고 소설이 시작하면 곧이어 전문가인 화자 본인 혹은 다른 과학자가 선언한다. 단언한다. 이것은 과학이고 진실이며 합리적이고 사실이라고.

“아뇨. 영혼의 존재는 훨씬 이전에 증명이 끝난 상태였습니다.” (증명된 사실)

“(…) 하지만 제가 본 것은 분명 진실입니다. 그것만큼은 전혀 찔리는 구석 없이 단언할 수가 있고, 맹세할 수가 있습니다.” (아마존 몰리)

이것이 가장 합리적인 대답이었다. (무서운 도마뱀)

맞아요. 인류는 멸망했어요. (연약한 두 오목면)

 

전문가가 초반에 과학이라고 선언해버리니 믿고 따라갈 수밖에 없다. 일종의 논문 서술 방식이 연상되기도 했는데 서론에서 전제를 분명히 밝히기에 안심이 되기도 한다. 사실이라잖나. 왠지 이 소설들이 깔아놓을 앞으로의 길은 안전할 것 같기도 하다. 전문가가 그렇다니까. 설마 과학자가 자신의 과학적 지식을 믿고 기고만장했다가 뚝 떨어지는 고딕 호러는 아닐것 같고…..일정 부분 캐릭터의 전문성에 기대어 형성된 안정감은 결말에 가서 크게 요동친다.
약간 분하기도 했다.
이럴 수가! 믿었는데! (뭐를??? 몰라. 아무튼 믿었다고!)

이런 느낌이랄까. 전문가가 모는 배를 타고 망망대해에 나섰고, 와 안전하다고 느꼈는데 갑자기 배가 요동치는 상황? 이는 소설 속 과학자를 향한 나 자신의 근거없는 믿음의 투사이기도 할 것이다. 과학자라니까 어쩐지 그들은 합리적일 것이며, 과학자가 주인공이니까 어쩐지 이 sf는 합리성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이며, 어쨌든 합리적일 것이며, 어쨌든 그럴 것 같다. 내 맘대로 가진 근거없는 믿음이 깨지는 순간, ‘헉 이런 결말이!’라는 당혹감과 신선함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하지만 이산화 작가의 sf단편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진짜일까?

궁금해진다. 도대체 소설 속에서 과학자들이 하는 말은 어디까지 이미 증명된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인가. 논문이 아니니 참고문헌 목록이 있을 리야 없고, 그렇다고 작가한테 쪽지를 보내서 물어볼 수도 없고. 다 읽고 나도 너무나 궁금해지는 거다. 어디까지가 사실인가. 이 미칠 듯한 궁금함, 더불어 ‘아아… 제발 참고문헌 목록만이라도, 아님 일반 독자가 읽으면 해석에 도움이 될 대중 과학 교양서 목록만이라도 첨부해 달라고!’ 이 애타는(?) 심정으로 부르짖는 나의 상태 변화. 다 읽었고 결말을 봤는데도 더 궁금하고 더 알고 싶고 더 찾아보고 싶고….이건 뭐랄까, 굉장히 재밌으면서도 상쾌하다.

 

 

2. 과학자이면서 탐정

이들은 과학자이기에 가설을 세우고 실험으로 증명하거나 좀더 합리적인 추론으로 좀더 합리적인 답을 내려 한다. 이 과정은 추리와도 많이 닮아보인다. 이런 점은 특히 [무서운 도마뱀]에서 두드러지는데,
sf이면서 안락의자 탐정 느낌도 준다. 또 소설 자체가 하나의 아름다운 우화같기도 하다. 공룡 생존 가능성을 연구하는 고생물학자인 주인공의 말을 빌자면 “그러니까 지금부터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냥 동화 같은 거”이기도 하다. 다른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반론 제시도 잊지 않으면서.

이들은 연구실로 들어가거나 골방에서 누군가와의 대화를 통해 상황을 재조립하고 설명한다. 실험을 하기도 하고 [증명된 사실]처럼 좀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기도 한다. 대체로 이들은 소설속에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그 이야기에 자신의 견해를 덧붙여 해설하고 이야기를 끝낸다. 이들은 얼핏 보면 수동적인 것 같은데 나름 적극적으로 근거를 조립해 이야기를 완성하고 문을 닫는다. 하지만 [아마존 몰리]에서는 좀더 다른 캐릭터가 등장한다.

 

 

3. 아마존 몰리

주인공 ‘나’는 자신의 전공을 살린 과학잡지의 기자가 직업으로 적성에도 맞는 일을 통해 때로는 “사악한 우월감”을 느끼다 뒤이어 “이성적인 과학자들의 이상한 이야기를 수집”하는 취미를 갖게 된다. 그녀가 만났던 많은 과학자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과학자 이야기를 하면서 소설은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보통 이런 구조라면 기자가 독자를 과학자한테 인도하고 뒤로 빠질텐데 [아마존 몰리]는 그렇지 않다. 꽤나 적극적으로 독자와 소설속 과학자 사이에 개입한다. 그녀는 과학자의 ‘직업적’ 설명에 개입하지는 않는다. 과학자의 ‘전문 지식’을 가치판단하지는 않는다. 대신 그녀는 소설속 캐릭터인 과학자와 소설 밖의 독자인 나와의 관계 형성에 개입한다. 이런 식으로.

알 게 뭐람. 내 관심은 그게 아니었다.

아직 사귀는 사이도 아닌 남자한테 사는 곳을 가르쳐 주는 데에는 위험이 따른다. 전혀 수상한 정황이 아니다. 이걸론 한참 부족하다. 다른 거, 다른 거.

그래, 이런 거야말로 들을 가치가 있는 얘기다.

 

처음에는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느낌을 말한다. 과학자인 화자의 말을 끊거나 화제를 돌리기도 한다. 그녀는 자신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내 관심은 그게 아니었다) 있기에, 빨리 관련 이야기가 나오길 욕망(이걸론 한참 부족하다. 다른 거, 다른 거)하다가 ” 그래, 이런 거야말로 들을 가치가 있는 얘기“라고 판단한다. 또한 “나는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드디어 내 뒤틀린 영혼의 호기심이 충족되려는 순간”이라고 설명하며 변명하지 않는다.

이 순간 그녀는 이제까지의 독자와 비슷한 청자 위치에서 초반에 암시했던 예전 지도교수의 위치로까지 격상한다. 그녀는 지금 이 이야기 속에서 이야기의 가치를 판단하는 재판관이고 뺄 내용과 넣을 내용을 결정하는 절대자이다. 그녀가 권력자이다. 그녀만이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결정할 수 있다. 이 역전이 선사하는 고양감은 짜릿하고 통쾌하며 일견 멋진 복수극으로까지 보일 정도이다. 훌륭한 여성 캐릭터의 등장이다. 때문에 나는 이 단편이 시리즈로 이어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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