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y me to the moon은 정말 매력적인 곡입니다. 수많은 버전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건 프랭크 시나트라 버전과 우타다 히카루 버전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배경음악으로 언급되는 에반게리온 엔딩곡 버전도 좋아하죠. 에반게리온 자체를 좋아하는 건 물론이고요 (이래뵈도 골초 에바빠입니다!).
에반게리온에서 사용된 Fly me to the moon은 사실 굉장히 많은 버전이 있습니다. 아마 30가지 이상이었던 걸로 기억하네요. 신극장판에서는 무려 우타다 히카루의 곡이 사용되기도 했고.. 하지만 아마 작가 분이 말씀하시는 곡은 아래 링크의 곡이라 생각합니다.
Fly Me To The Moon/CLAIRE(歌詞付) 新世紀エヴァンゲリオンED
내용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리뷰이니 본문을 읽지 않으신 분들은 먼저 읽고 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한 번 읽어신 분들도.. 위 곡을 들으면서 한 번 더 읽으시길 추천해드립니다!
너무나도 좋은 곡이라 처음 들었을 때부터 좋아했지만, 이 곡에 완전히 빠져들게 한 건 ‘스페이스 카우보이’라는 영화를 보고 난 다음입니다. 노장 비행사/엔지니어들이 고장난 위성을 고치기 위해 우주로 올라갔다가, 모종의 일을 겪고 한 명이 혼자 달을 향해 돌아올 수 없는 비행을 합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프랭크 시나트라의 Fly me to the moon이 흘러나오면서 달이 점점 클로즈업 되더니, 달을 빙그르르 비행하다가 달표면에 지구가 보이는 곳을 향해 쓰러져 있는 그 사람의 모습을 비춰주죠. 음악과 이야기, 영상이 절묘하게 어울린 장면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냉동수면과 달관광이 실용화되기 시작하는 근미래를 그리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냉동수면실험에 참가해 5년 동안 잠들었다가 깨어나죠. 그리고 어느 바에 가서 유진이란 이름의 바텐더와 대화를 나눕니다. 두 사람의 대화 속엔 릴리라는 여성이 등장하고, 그녀는 두 사람 모두에게 특별한 존재죠.
이야기는 처음 몇 문단과 마지막 한 문단을 제외하고는, 왠지 어두운 조명에 낡은 테이블로 가득할 것 같은 바를 떠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 속에 등장하는 ‘아크’는 근미래적이지만, 그걸 제외한 두 사람의 대화는 먼지 쌓인 과거를 조심스래 들추는 소심한 현재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어느 시간대이든 느낄 수 있을 법한, 그런 아련한 추억과 후회가 흘러내리는 대화죠.
반면 릴리라는 여성은 Fly me to the moon이라는 곡이 노래하는 것처럼, 이상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현실에 밟혀 5년이라는 시간을 잠에 묻어버린 주인공과는 달리, 현실을 밟고 일어나 노래의 날개를 타고 달에 가는 꿈을 손에 잡으려 노력하는 사람이죠. 그리고 주인공이 완성하지 못한 곡을 완성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사실 작품 속에서 릴리는 바에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과는 전혀 다른 존재처럼 그려져요. 그 차이를 잘 드러내는게 주인공의 곡을 결국은 릴리가 완성한다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기존의 인물들이 뛰어넘지 못한 한계를 결국 홀로 뛰어넘으니까요.
Fly me to the moon이 노래하는 사랑은 상대방에 대한 ’경이’가 섞여있다고 생각해요. 달로 날아다니고, 별 사이를 누비며, 목성과 화성의 봄을 본다면, 갈망과 숭배를 보낼 만큼 경이로울테니까요. 처음 릴리는 주인공에게 이런 ‘경이’가 섞인 사랑을 찾으려고 했던 걸까요? 그렇지는 않을 수 있어요. 사실 그렇기도 힘들고. 하지만 릴리는 진짜 고양이를 기를 수 없으니, 대신 고양이 그림을 기르며 ‘진심’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주인공과의 사랑이 Fly me to the moon에 어울릴 법한 경이로운 그것이 아닐지언정, ‘진심’만 있다면 괜찮지 않았을까요? 이 곡에서 화자는 ‘In other words, please be true’라고 합니다. ‘경이’에 대한 갈망을 이야기 했지만, 사실 다른 말로 하면 ‘진심’을 보여주길 바란다는 거죠.
하지만 주인공은 그런 ‘진심’을 잃어버려요. ‘경이’와 ‘진심’을 노래하는 Fly me to the moon을 완성하는 것조차 내버려두게 되고. 결국 릴리는 떠납니다. 그녀의 ‘진심’을 상징하던 고양이 액자와 함께.
결국 릴리의 ‘진심’은 Fly me to the moon이라는 곡 자체에 녹아든 걸까요? 릴리는 주인공이 작곡에 어려움을 겪던 ‘In other words, please be true’를 아름답게 완성시키며 달의 디바가 됩니다. ‘진심’을 끝까지 손에서 놓치지 않았던 릴리는 결국 스스로가 ‘경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존재가 되는거죠.
주인공은 기쁘면서도 씁쓸하게 그리고 외롭게 지켜봅니다. 그에겐 아크에 탑승할 수 있는 티켓이 있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릴리를 만날 수 있겠죠.
하지만 결국 주인공은 티켓을 유진에게 건냅니다. 왜일까요? 주인공은 유진이 릴리의 이름을 꺼내자마자 ‘그녀 이야긴 듣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합니다. 5년의 시간을 잠 속에 묻어버리고 나온 뒤로도, 아직 그는 ‘진심’으로 릴리를 대할 수 없었던 걸까요? 반면 유진은 릴리의 공백을 인정하고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릴리가 가게를 떠난 이후에도 여전히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릴리의 행방을 지켜봤어요. 릴리를 향한 ‘진심’은 주인공보다 유진이 더 큰 것 같습니다. 물론 ‘진심’의 종류는 다를 수 있겠지만.
아마 그래서 주인공은 티켓을 유진에게 건내 준 것 같습니다. 이제야 조금씩 누군가의 ‘진심’이 보이기 시작한 걸까요? 이제야 조금씩 스스로의 ‘진심’을 되찾기 시작하는 걸까요?
무대에서 ‘In other words, please be true’를 외칠 때, 릴리는 주인공이 이제라도 ‘진심’을 되찾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이 오질 않아서.. 퇴고 없이 생각 따라 써내려간 리뷰입니다. 부디 잘못 이해한 부분이 없기를 바랍니다. 커다란 서사는 없었지만, Fly me to the moon이라는 곡과 매우 어울리는 이야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