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라도 가보는 게 어때?”
– <본문 P3>
문득 떠올려보면, ‘여행’이라는 소재가 사랑받는 것은 변화를 가정하는 특징에 기반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여행’이라는 소재에서 보이는 변화를 세 가지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첫째, 여행지로 향하는 ‘장소’의 변화
둘째, 해당 장소에서 만나고 얽히는 ‘사람’의 변화
셋째,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며 만들어지는 ‘감정’의 변화
주목할 점은 이 ‘변화’의 과정이 무척 유기적이고 순서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여행은 스스로가 의도적으로 장소를 바꾸는 것을 가정합니다. 단순히 환경을 바꾼다는 의미를 넘어, 그 순간에서 무언가를 얻고자하는 화자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입니다. 도착하는 장소든 만나는 사람이든 변화는 무척 클 수밖에 없으며, 그 영향은 상황을 보고 느끼는 화자 한 사람에게 집중됩니다. 여행이 어딘가로 떠났다가 원래의 장소로 돌아온다는 것을 가정하면, 화자의 변화를 강조하는 데도 무리가 없는 소재라고 평가됩니다.
이번에 읽은 <우연히 날아와 너에게 착륙>이라는 단편 또한 이 여행의 속성을 충실하게 살려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주인공인 연호가 여행에 몸을 담는 과정이 명확하고, 도착한 여행지에서 만나는 변화가 선명하며, 더 나아가 그 과정으로 얻은 마음과 상황의 변화는 후련한 결말로 이어집니다.
제가 이 작품에서 발견한 매력을 두 가지로 설명해볼까 합니다.
1) 연인과의 결별이라는 공감할 수 있는 소재
주인공의 환경을 바꾸기 위해서는, 그 마음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즉, 주인공에게는 계기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우연히 날아와 너에게 착륙>는 주인공 ‘연호’가 여행을 떠나야하는 계기를 주기 위해 무척 단순하면서도, 또 강렬한 소재를 제시합니다. 그것이 연인과의 결별입니다. 그 결별의 충격은 처음 두 문장만 봐도 명확합니다.
(P2). 연호는 살아야 할 이유를 몰랐다. 자신이 왜 혜연과 헤어졌는지 이유조차 모른 채, 그렇게 버림받았다고 느꼈다.
다소 과장스러운 진술이지만, 연호는 연인의 이별통보에 무척 큰 의미를 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정신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는 진술과 더하면, 이 순간은 연호에게 커다란 시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연인이라는 사람이 새로운 남자를 만들고 하하호호 웃고 있단 걸 생각하면 성질이 나서라도 일어설 만한데, 기지배처럼 끙끙 앓으면서 눈물만 훔치는 꼴이 말이 아닙니다. 보통 마음이 여린 친구가 아닌 거 같습니다.
(P3). “(그렇게 힘들면) 여행이라도 가보는 게 어때?”
어찌되었든 그것은 연호에게 변화를 가져올 계기가 됩니다. 헤어진 여자 대신 마음을 쏟고 집중할 무언가가 필요하죠. 결국 작가는 연호에게 기회를 줍니다. 그를 새로운 연인이 있는 장소로 보내주는 것이죠.
2) 상처를 치유하는 가장 완벽한 방식
낯선 장소에서 그들을 엮어줄 수 있는 요소가 적지 않습니다. 언어, 피부색, 같은 길을 걷는 우연조차도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안도감을 줄 수 있죠. 연호는 외지에서 같은 한국인을 만나면서 그 안도감을 확인합니다.
(P39). 연호는 뜻하지 않게 한국인 일행을 만나서 무척 안심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호연. … 이십 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자신의 이름을 거꾸로 읽는 이름이어서 신기한 인연에 놀랐다. 게다가 미술학도인 자신과 전공도 비슷했다.
이 첫 만남은 노골적으로 연호와 호연을 겹치려는 의도를 내보이고 있습니다. 단순히 한국인이라는 정체성과 사용하는 언어가 같다는 것 이상으로, 같은 곳을 여행지로 정하는 관심사도, 전공도, 심지어 이름조차도 비슷합니다. 흔히 공통점이 없을 거 같은 사람들이 의외로 요소를 발견하며 가까워지는 것이 보통인데, 이 둘은 그 존재 자체가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셈입니다.
즉, 이 여행은 연호에게 가장 완벽한 선물을 주기 위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를 버리고 떠난 연인 대신, 관심사와 이름까지 비슷한 새 짝을 찾아준 셈이죠. 우리는 이 과정을 ‘운명’이라는 단어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뒤로는 특별한 에피소드가 없습니다. 이 ‘운명’처럼 만난 인연에 마음을 빼앗기고, 귀국한 뒤에도 인연을 이어가며 결국 연인이 되는 과정을 깔끔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P83). … 오해를 푼 연호와 호연은 우연이 인연이 되어 연인이 되었다.
작중에서는 이 모든 과정을 ‘우연과 같은 인연’이라는 표현으로 정의합니다. 여기서 독자들은 이 작품 자체의 컨셉 자체가 굉장히 이상에 가까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비록 현실에서는 벌어지기 힘들다는 미묘한 개연성을 가정하지만, 그 벌새처럼 날라드는 우연 자체가 가장 아름다운 결과가 아니겠냐는 역설을 담고 있죠.
제가 느끼기에 이 작품은 무척 장점이 많은 소설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완벽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전체적으로 ‘여행’이라는 큰 틀에 이야기를 맞추기는 했지만, 장면 하나하나가 단편적인 탓에 그 테두리만 인상에 남는 것이 사실입니다. 연인과 결별하고 새로운 연인을 만난다는 소재 또한 창작의 영역이 거의 없는 탓에 소재만 눈에 띄는 것과 더불어, 우연이 곧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몇몇 장치들도 더 깊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달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자체에 모날 부분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은 작가 개인의 역량이 돋보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리뷰 공모에 부치며 처음 써보는 작품이라는 작가님의 조심스러운 언급을 고려하면, 여행으로 아픔을 극복한다는 소재를 정하고, 그에 따른 소설의 뼈대를 구성하며 결말까지 이끌어낼 수 있는 감각은 훌륭한 편이라고 느꼈습니다. 결국 그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출판한다는 마침표 또한, 소설적 결말은 특별한 인상을 줘야한다는 감각이 있기에 나오는 장면이 분명하니까요.
멋진 작품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펼치실 집필 활동을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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