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손가락: 유한한 리뷰 비평

대상작품: 무한한 손가락 (작가: e이, 작품정보)
리뷰어: 창궁, 2시간 전, 조회 11

본 소설이 어떤 이야기냐고 제게 묻느냐면, 저는 이렇게 답할 듯 싶습니다.

두 번 읽어야 한다는 걸 어느 순간 눈치채게 하는 이야기

라고요.

 

우선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작가 프로젝트에 탈락한 게 자못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요. 이미 결과가 나와버린 상황이니 굳이 이유를 붙이자면 ‘폐쇄공간’이라는 공간적 특수성이 사실상 작품에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생각은 합니다. 바꿔말하면 컨셉을 맞추지 못했을 뿐, 이 작품이 지닌 매력은 충분히 강렬합니다.

작품은 전형적인 동심원 구조로, 현재-과거-현재로 이어집니다. 이필태의 분노로 시작한 본 작품은 독자에게 당혹스러운 감정과 장면을 던져두고, 그것을 뒤로 한 채 과거 노이즈 정제소에서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불친절한 듯 막무가내로 돌진하는 작품의 전개는 다소 당혹스럽게 다가왔으나, 믿는 구석이 있는 건 아닐지 반신반의하며 따라가게 됩니다.

노이즈 정제소에서 근무하는 이필태는 4차원의 존재로부터 선택 받아 그들과 소통하며 어떤 일을 수행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 일에 정신이 팔린 그는 안 그래도 안 좋은 평판이 김정화에 의해 더욱 깎이게 됩니다. 하지만 그게 무슨 대수일까요. 4차원의 존재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그는 지구에서 누구보다 귀한 존재가 될 겁니다. 무려 4차원의 존재가 선택한 유일한 인간이 되는 것이니까요.

뭐… 그 4차원의 존재가 자기하고만 소통할 수 있어서 남들에겐 망상증 환자 취급 받는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아무렴 어떻겠습니까. 결국 이필태는 증명해냈습니다. ‘아주 약간의 참사’를 통해서요. 4차원의 존재는 이필태의 과대망상이 아닌 겁니다. 그 때문에 비밀 청문회가 벌어지고, 이필태는 유일한 생존자로서 증언합니다. 참사의 용의자로 추궁당하고 있는 와중에 자신이 유일무이한 초인이자 선택 받은 인간임을 증명하려고 애쓰는 그가 조금은 안쓰럽지만, 달리 생각하면 수십, 수백의 사람이 형체도 알아보지 못한 채 죽어버렸는데 그가 어떤 인간인지가 중요할까요?

청문회가 막장으로 치달으면서, 이필태는 마침내 4차원 존재와 접촉하게 되고, 상황은 다시 초반부의 이야기에 닿습니다. 그리고 4차원의 세계를 조용히 고찰하고, 이해하다가, 끝내 흩어지고 말죠.

이 이야기는 마치 이필태라는 비루한 정신을 가진 이가 분에 넘치는 지식과 힘을 휘두르려고 한 끝에 맞이하는 파국적 결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바라보게 되고요. 하지만 조금은 다르게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거죠.

왜 이필태인가?

이 질문은 다시금 왜 무한한 손가락인가? 라는 질문으로 바꿔볼 수 있습니다. 이 두 질문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제시할 하나의 해석에 따르면요. 물론 이 해석을 지지하지 않고 그저 “작가가 그렇게 설정했을 뿐이다”라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작가가 그렇게 말할 수 있겠고요.

저는 작품에 조금 더 집중해봤습니다. 파편처럼 흩어진 조각들을 맞춰볼 거예요.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4차원 공간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2. 이필태가 과거에 머리를 쓸어넘겼을 때 그의 손가락 자국이 그대로 남았다는 서술이 굳이 서술돼 있다.

3. 달라붙은 손가락들이라는 초반부 ‘무한한 손가락’에 대한 서술.

4. 이필태’만’ 접촉이 가능하고 대화가 가능함.

5. 이필태는 마지막에 무한히 늘어선 파동으로 변화함.

6. 다른 사람이 무한한 손가락의 말을 들으면 알 수 없는 노이즈로만 인식함.

7. “알게 될 것이다.”라는 무한한 손가락의 대사.

이쯤 되면 제가 어떤 해석을 주장하고자 하는지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무한한 손가락=이필태라는 해석입니다. 그럼 범우주적 공동체니 뭐니 하는 건 뭐냐고요? 일종의 부트스트랩 패러독스인 셈이죠. 이필태는 무한한 손가락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고, 무한한 손가락은 그러한 이필태가 4차원의 존재로 거듭나면서 변화된 존재니까요. 범우주적 공동체의 진위 여부는 사실 본 작품에서 그다지 중요한 사안은 아니었습니다. 이 해석에서도 마찬가지고요.

그런즉, 본 작품의 결말은 이필태의 비극적 결말을 가리키는 게 아닌, 하나의 타임 패러독스를 온전히 성립시키기 위한 내적 완결인 셈입니다. 순환의 고리를 닫아두는 것이죠.

저는 이런 지점을 2번을 읽어냈을 때부터 ‘HOXY…?’라는 심경으로 읽었는데, 끝까지 읽고 나니 범지구적 공동체만 맥거핀으로 여긴다면(실제로도 맥거핀에 가깝기도 하고) 제법 그럴싸한 타임 패러독스가 완성된다고 느꼈습니다. 작품 자체가 하나의 폐쇄적인 시공간을 이루는 셈이죠. 시작과 끝은 서로 이어져 있던 것입니다.(단편의 한계상 생략된 분량은 있겠지만요)

그리고 그 중간을 채우는 백미는 단연코 위상 반전 장치를 설명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부분은 본 해석과 본 작품에서 ‘의미’를 따지거나 ‘구조’를 따질 때 큰 가치를 지니진 못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과학적 지식이 폭발하듯 서술되는 이 파트가 작품의 무게 중심을 꽉 잡아주게 됩니다.

만약 청문회에서 이필태가 거의 정신을 잃어가며 말한 과학적 진술이 작품에 없었다면, 본 작품은 “차원이 나왔으니까 SF야”라는 수준의 미묘한 작품이 되었을지 모릅니다. 흥미로운 구조고,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실체’에 가까운 무게감이 없어 4차원 만큼이나 붕 떠버린 작품이 되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러한 구체적인 사실성이 그것의 과학적 성립 여부와 별개로 무게감을 형성합니다. 청문회라는 구도, 과학 지식을 겸비한 의원의 질문이라는 잘 짜인 무대 위에서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설명은 부자연스럽지도 않았고요. “이게 무슨 이야기야?”라고 자칫 관념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본 작품이 하나의 SF라고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서 생긴다고 생각합니다.(거듭 말하지만 이것이 정말로 가능한지, 수학적으로 맞는 계산인지의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SF의 가치는 가부에 결정되지 않으니까요)

그렇기에 저는 정말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섬뜩한 반전이 내재되어 있으면서도, SF에 충실하기까지 한 작품이라니. 애정하지 않을 수가 없겠죠.

하지만 할 말은 해둬야겠습니다. 띄어쓰기 오류, 오탈자, 문장부호 오류 등 훌륭한 작품의 완성도와 별개로 작품이 다듬어지지 않았고 퇴고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인상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부분은 딱히 작품의 구조, 이야기, 반전, 고증 여부와 무관함에도 불구하고 이미지를 깎아먹는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죠. 정말 재미있게 읽었기에 이런 오류들이 발견될 때마다 눈살이 찌푸려진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일정하지 않은 줄바꿈도 단순히 4차원의 연출이라고 받아들이기엔 힘든 부분이었고요.

잘 쓰신 만큼 다른 곳에서 빛을 보시리라 생각합니다. 좋은 소식을 언젠가 들고 오시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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