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스포가 있습니다.
짧은 감상입니다.
의뢰라는 것은 처음 받아봅니다.
사실 딱히 조언도 없고 오로지 감상만 주절거리는 저 같은 리뷰어에게 예상치 못한 의뢰가 둘이나 들어왔어요. 다른 한 편은 준비 중입니다. 그리고 약속드린 리뷰가 두 편이나 밀렸네요…….(우오오아이!)
한 달여를 리뷰를 뒷전에 밀어놓은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중입니다(응?)
번연 작가님의 글은 솔직히, 제 취향이 아닙니다.
서로 마찬가지로 생각할 거라 보는데, 글을 보면 그 작가의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나거든요.
저는 풍미 있고 휘황찬란하며 고풍스러운 글들을 안 좋아합니다. 반대로 끔찍하고 소름 돋으며 어디선가 벌어질 것 같은 무서운 글 역시 번연 작가님도 안 좋아 할 겁니다. 이런 극 과 극 성향인 저에게 리뷰를 의뢰했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 있다는(?) 뜻 인 거겠죠?
농담입니다! 안 좋아하고 좋아하고 가 어디 있겠어요? 재미만 있으면 장땡이지.
그렇게 본문을 들어갔더랬습니다.
녹푸른 색이 감도는 머리칼은 결이 곱고 길어 휘영거렸고, 긴 속눈썹 아래 드러난 비취색 눈동자는 깊은 물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달그림자 같았다.
으응? 도입부부터 놀라게 만드네요.
촘촘하게 자리 잡은 속눈썹으로 보석 같은 눈을 가리며, 그 어미가 방울방울 눈물지었다. 이곳은 수만리 바닷길 아래의 수정궁, 인세의 법칙들이 적용되지 않는 깊디깊은 바닷속인지라, 진주 같은 눈물은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고 그저 꽃잎처럼 하롱하롱 흩날리다 사라졌다.
우엉? 그 순간, 제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단 하나였습니다.
이것은 마치 한 편의 애니메이션 같구나.
묘사와 분위기로만 영상화, 그것도 왠지 모를 수려한 동양미를 보여주는 대작 애니메이션이 떠오르게 만드는 힘의 원천은 뭘까요? 작품을 계속 읽어 내려갔습니다. 오호. 어허. 우와. 몹시 과장 되었습니다. 분위기와 묘사, 감정 표현 등 하나하나가 폭발 직전입니다. 심지어는 감정을 숨기고 감추려 하는 장면 묘사도 보는 저에게는 엄청 크게 터져 다가옵니다. 마치 불꽃놀이 같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새까만 밤하늘 한복판에 연속으로 터지며 퍼지는 거대한 불꽃놀이처럼, 비장미 가득한 원한과 복수의 서사시를 배경으로 탐미적인 묘사와 분위기가 작품 전체를 가릅니다.
잠깐 작품 소개를 해볼까요?
작품의 제목인 환태는 여러 의미를 지닙니다. 환태는 말 그대로 변신으로서, 얻기 위한 환태와, 버리기 위한 환태 둘로 나뉘어 보여 집니다. 그 와중에는 애증이 뒤섞인 형제애와, 애증이 뒤섞인 연인애가 섞여 있습니다. 주인공인 천룡의 일족이자 녹옥공주인 혜와 그의 동생 언, 혜를 사랑한 렴. 혜가 증오하는 축융과, 그와 똑 같은 공공. 이렇게 대표적인 이미지만 나열하면 뭔가 굉장히 복잡해보이지만 작품은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보는 족족 머릿속에 이미지가 가득차기 때문입니다. 정말이지 몹시도 과장되었습니다. 감정 과잉에 미사여구가 터져 나갑니다. 그런데 정말 잘 어울립니다.
동생의 손이 몇 번이고 얼굴을 더듬는 동안, 하염없이 진주 같은 눈물이 솟아나왔다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그러나 입술만은 지그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천년을 가도 변하지 않을, 만족스러운 미소였다.
과장이 딱히 싫지는 않네요. 오히려 아주 딱 맞는 옷을 입었다고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흔히 보기 어려운 정통 동양 판타지로서, 비취 녹 옥 고아의 미 같은 동양미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사실, 동양의 미가 오히려 더 밝고 화려한 감이 있죠. 마지막 엔딩은 후일담을 기대하게 만드는 깜짝 선물이기도 하고요.
잘 봤습니다. 훌륭한 작품이니 일독을 권합니다. 분명, 저와 같은 생각들을 하실 겁니다.
과장되었는데? 그러나 그 과장이 싫지 않아. 행복해라 혜와 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