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확인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시스템이 무너진 무법지대가 된 세상(한국). 덕대는 매일같이 마을 주민을 버스에 태워 읍내로 보내는 안내군 일을 하고 있다. 체격이 좋은 덕대는 자율방범대 역할을 맡아 비밀 지령에 따라 마을의 문제거리를 해결하는 일도 하고 있다. 넉살 좋은 덕대는 마을 사람들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어느날 바이러스 감염자를 색출하라는 지시에 덕대는 애인인 선숙을 아지트로 피신시킨다. 덕대와 선숙이 아지트에서 밀회를 즐길 때 출입사무소 소장 첨지와 마을사람들이 들이닥치는데… 과연 덕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리뷰를 작성하기 전 비밀스럽게(?) 고백을 하자면 저는 암기에 매우 취약한 편입니다. 특히 처음보는 한국 이름을 외우는데 무척 어려움을 겪는 편으로, 한 장면에서나 프롤로그에서 등장인물이 쏟아지면 이름이 머릿속에서 뒤섞여 매우 곤혹스러운 상황이 됩니다. ‘춘식이는 왜 그럴까?’는 브릿G 단편소설 중에서도 꽤 많은 인물이 짧은 분량 안에서 등장하는 소설이지만 몹시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는데요. 아주 짧은 단역으로 등장하는 인물들도 짧은 대사와 서술을 통해 다층적으로 묘사됩니다. 이장, 소장, 덕대, 선숙, 재수, 춘식 등 옛스러운 이름을 지닌 인물들은 모두 생김새나 성격이 다르고 외부 환경에 대응하는 가치관도 매우 다릅니다. 소설은 바이러스 확산 이후의 디스토피아를 담고 있고 ‘안내군’이나 ‘읍내’ 같은 변형된 개념이 새로 등장하기에 독자에게 학습시켜야 하는 정보량이 꽤 많습니다.
독자의 머릿속으로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이야기는 단순히 그런 배경을 장황하게 설명하거나 심층적인 심리묘사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 아닌 작은 갈등과 갈등을 흩뿌려놓는 방식을 통해 효과적으로 정보들을 제공합니다. 현재의 갈등이나 사건의 원인이 되는 과거의 사실을 하나씩 알아가며 클라이막스에 도달하면 독자들을 기다리는 것은 이 단편의 깊이나 분량에 걸맞는 신선한 반전입니다. 반전은 하나의 유희나 카타르시스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덕대라는 인물에 대해 층을 쌓아 케릭터를 깊게 만듭니다.
‘춘식이는 왜 그럴까’는 독자에게 던지는 물음이라기 보다 독자를 향한 물음에 가깝습니다. 덕대는 춘식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덕대는 독자의 예상과 다르게 능수능란하고 교묘하며 잔인한 사람입니다. 그는 작중 계속해서 되뇌입니다. 착하면 안돼. 착하면 살아남을 수 없어. 착한 것은 죄야. 그것은 그저 디스토피아가 된 세상에서 선언적인 독백임을 넘어 덕대라는 인물이 포함된 작중 세계를 규정짓는 규칙으로써 작동합니다. 덕대는 고뇌합니다. 춘식이는 왜 그럴까? 춘식이는 왜 그렇게 착하지? 우리가 눈물짖는 춘식이에게 마을을 줄수록 친숙했던 덕대는 독자에게서 더 멀어지고 독립적인 인물이 됩니다. 그렇게 하나의 세상이 태어납니다.
작가님의 말맛이 너무 좋고 근미래임에도 레트로한 분위기를 주는 설정들과 말투는 정말 독특하면서도 깊은 몰임감을 제공합니다. 브릿G 독자분들은 꼭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