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의심도, 자비로이 불살라주소서. 재만이 남을 때까지. 감상

대상작품: 자비의 집 (작가: 김성호, 작품정보)
리뷰어: 드리민, 5월 26일, 조회 24

<드픽 검색어 큐레이션: 불> 선정작입니다.

(추후 큐레이션 게시 예정)


번뇌란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을 가리킵니다. 흔히 108번뇌로도 유명한 이 불교의 개념은 속세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괴로움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 괴로움의 근원은 곧 집착이니, 우리는 세상만사에 대한 집착을 끊어내야만 번뇌에서 벗어나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습니다.

 

양성애자에게 붙는 꼬리표 같은 오해가 몇 가지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연애는 동성이랑 실컷 즐기고, 사실은 마음에도 없으면서 이성과 결혼한다는 것입니다. 양성애자인 ‘나’는 동성 애인인 하민과 이성 애인인 혜령에게서 똑같은 오해를 받습니다. 그 오해의 끝은 결국 파국이었습니다. 하민은 그 오해로 시작된 말다툼 끝에 ‘나’의 졸음운전 때문에 죽었고, 매년 그를 추모하는 ‘나’의 모습에 혜령은 떠나버렸습니다.

‘나’는 하민을 사랑할 때는 하민에게, 혜령을 사랑할 때는 혜령에게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지금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것은 너라고. 그러나 이미 시작된 오해와 의심을 꺼뜨릴 수는 없었습니다. 하민에게 ‘나’는 ‘결국은 여자에게로 돌아가는 남자’였고, 혜령에게 ‘나’는 ‘다른 남자와 만날지도 모르는 남자’였습니다. 이미 깊어진 그것을 ‘나’는 어쩌면, 적극적으로 부정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적극적으로 부정했다면 달랐을까요. 하민과의 말다툼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그것 때문에라도 잠이 깨서 졸음운전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것만으로도 모든 게 바뀔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이미 지나간 과거에 집착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이미 바람에 스치듯 날아가 버렸으니까요.

승화원은 화장터이자 봉안당이기도 합니다. 이미 재가 된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 한 노숙자가 그곳을 전부 불태워버렸습니다. 이미 화장하여 불태운 이들을, 다시 불태웁니다. 그런다고 그들이 다시 살아 돌아오는 것도, 그들에게 온기가 전해지는 것도 아님에도요. 그곳에 안치된 애인을 만나지 못하게 해서 불을 질렀다는 노숙자의 분노는, ‘나’와 어딘가 맞닿아있습니다. 사랑에 사랑을 거듭하고, 오해에 오해를 거듭하고, 의심에 의심을 거듭하고, 이별에 이별을 거듭하고, 불에 불을 거듭합니다. 재는 다시 재가 됩니다.

 

사랑은 의심과 함께 할 수 없다고 했던가요. 하지만 사랑도 의심도 모두 집착, 결국 번뇌라는 이름으로 묶입니다. 하민과 혜령을 떠나보낸 ‘나’의 웃음과 울음은 어쩌면 번뇌에서 벗어난 해탈의 증표일지 모릅니다. 모든 것을 뜨겁게 태울 것처럼 사랑해도, 결국 남는 것이 서늘한 재뿐이니까요. 그게 과연 좋은 일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해탈은, 깨달음은, 열반은 곧 죽음과도 같은 것이니까요. ‘나’는 어쩌면 앞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읽어도 먹먹한 이야기였습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써주신 김성호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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