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အိမ်ရှင်မ’ စပီကာရဲ့ အသံကို အာရုံစိုက်ပါ။ 공모(감상)

대상작품: 저녁과 악몽 (작가: 용복, 작품정보)
리뷰어: 난네코, 22시간전, 조회 16

‘အိမ်ရှင်မ’ စပီကာရဲ့ အသံကို အာရုံစိုက်ပါ။

Focusing on the voice of the ‘Housewife’ speaker

‘가정 주부’ 화자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목차

1. 가정 주부로서 ‘여성’

2. 여성 고딕 장르에서 ‘집’

3. 작품에 대한 소고(小考)

 

 

 

 

 

 

 

 

 

 

 

 

1. 가정 주부로서 ‘여성’

 

가정 주부는 국가의 가부장제 한복판에서 그 원리를 생존 양식으로 겪어냈으며, 가정주부로서 그들이 볼 수 있는 것들을 발화한다는 것은 젠더 억압을 마주하고 폭로하는 효과 또한 끌어낼 수 있습니다. ‘여성-아내-가정주부’로 이어지는 일종의 여성의 신화성이란 근대 시기에 구축된 것입니다. 가정 주부는 “사적 공간 및 가사 노동과 강하게 결합”되어 왔습니다. 가정 주부는 “성구분된(sexed) 용어이며, 그 중에서도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의 지위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가족화된(familied) 용어이고, 기혼 여성과 가사 노동자의 위치를 결합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젠더화된(gendered) 용어”입니다.

한국전쟁(1950년 6월 25일~1953년 7월 27일) 이후 가부장의 대리 노동을 수행하던 여성들은 “전쟁으로부터 귀환한 남성의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강제적 선택을 강요 당해 여성을 가정으로 불러들이려는 사회적 상황”을 겪고 1960년대 이후부터는 전업주부 담론이 형성되어 “여성을 경제활동에서 배제시키면서 피지배자로 전락”시킵니다. 그러다 1970년대 중산층 계급의 여성이 천착하는 자유와 소시민성은 거대담론으로서의 자유와 사랑을 담보하는지에 대한 “권력과 이념의 허위의식”을 고발하고, 1980년대 여성 운동은 “여성노동자, 가정주부, 빈민여성, 지역여성, 사무직여성”에 주목합니다.

1980년대의 문화사적 자장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한 여성해방문학 및 관련 출판물들은 여성의 범주를 보다 적극적으로 규명하고자 했던 문학 운동의 일환이었다. 1세대 여성학자들에 의해 서구권의 여성해방 관련 서적이 활발히 번역되었으며 한국의 여성현실에 대한 연구서와 무크지가 발행되었고, 여성운동계의 기관지도 제작되었고, 이전시기에 창간된 여성지들 역시 1980년대에 들어서 높은 판매부수를 담보하며 빠르게 상업지 시장에 안착했습니다. 따라서, 가정 주부는 여성 정체성의 복합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존재로, 가정 주부는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여성운동의 주체이자 객체가 되었습니다.

가정 주부라는 주체에 대해 “성과 계급의 교차로”라고 표현되었으며, 1980년대의 주부는 이전 시기와 달리 경제개발로 산업화된 도시에서 근대적 개념의 핵가족 출현과 함께 등장한 사회적 계층으로, 성역할 분업을 근간으로 하는 가족 이데올로기에 의해 탄생한 주체입니다. 가사노동의 사회화, 즉 재생산 노동영역의 민주화‧ 민중화‧ 인간화가 이루어져야 함을 역설하는데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여성의 사회적 노동권 추구가 가능해지고, 전업주부가 여성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열리며, 이것이 가능해질 때 가사노동의 사회화는 재생산노동 영역 전체의 인간화와 연결되며 여성해방의 전체 목표와 유기적으로 통합됩니다.

1980년대는 다양한 계층의 가정주부가 광범위하게 형성된 시기로, 1970년대 여성운동과 노동운동에 참여하였던 다양한 여성들은 결혼으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게 되며 그 운동의 방향이 자연스럽게 가정주부를 상정하는 방향으로 넘어가게 되며, 1980년대 여성운동은 운동 주체의 계층과 운동의 방식, 운동 대상이 달라도 결국 주부라는 공통분모 속에서 만나게 되며, 이에 운동의 방향은 가정 내 여성과 남성의 평등과 평화라는 기치로 자연스럽게 설정되었습니다.  가부장적 억압은 주부의 삶 속에서 가장 순수한 형태로 드러나기에 여성의 인간화를 가로막는 견고한 사회적 장벽이 가정 주부의 의식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깨질 수 없었습니다.

 

가부장적 권위주의와 불평등 제도의 극복이라는 커다란 과제를 풀어나가는 첫 실마리로 자녀양육 문제를 선택하였다. 이유는 두 가지에서이다.

첫째는 근본적인 사회변화란 결국 수 세대에 걸친 장기적 작업이라는 인식에서이며 둘째는 이 문제는 우리 모두가 부모로서, 배우는 사람으로서 체험을 통하여 절실히 느끼고 있는 문제라는 점에서이다.

평등과 자유의 관점에서 다음 세대를 북돋우며 길러 나가는 과제에 대한 논의로써 우선 다섯 편의 논설이 실린다. 

···특히 자유로운 아이들을 위한 창작물은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서 더욱 자유롭고 밝은 세상을 만들어 갈 세대를 기르고자 원해 온 서양의 친구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자신의 의사표현을 분명히 하고 의견을 나누어 가질 줄 아는 이들에 의해서만이 민주적 사회가 이룩될 것이다.

『또하나의 문화』 1, 평민사, 1985, 30~31면

 

 

 

 

 

 

 

 

 

 

2. 여성 고딕 장르에서 ‘집’

 

고딕 소설은 현실을 외면한 판타지가 아니라 일상의 현실에 내재되어 있는 억압과 폭력 혹은 고딕적 공포를 보여줌을 통해 현실의 사실적인 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것입니다. 고딕소설에서 ‘집’이라는 공간은 일차적으로는 소설의 배경으로 주로 사용되어 공포와 두려움의 분위기를 전달하며 앞으로 전개될 사건의 배경 역시 암시하는 역할을 하며, 전통적으로 집은 주로 먼 이국에 있는 성이나 오래된 저택으로 독자에게 모험이나 여행을 하는 간접적인 경험을 전달해주기도 하며, 1970년대 제 2의 페미니즘 운동의 부흥에 여성 고딕(female gothic)이 재조명을 받으면서 연구도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여성 고딕이 소설의 장르로 정착한 과정을 정리하면 탈 역사적이고 환원적인 정신분석학적 해석 경향은 여성 고딕 장르의 비평사 초기부터 주요 해석 모델이었던 동시에 지속적인 경계와 비판의 대상이었습니다. 여성 고딕(female gothic)이라는 용어가 처음 소개되고, 장르에 대한 비평적 관심이 커지던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에 자녀의 성장 후에도 온전히 독립된 개체로 분리되지 않는 엄마와 딸의 특수한 관계를 정신분석학적으로 고찰한 이론이 여성 고딕 비평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자신인 동시에 타인인 거울상과의 계속되는 투쟁”을 “여성 고딕 구조의 핵심”으로 제안합니다.

낸시 초더로우(Nancy Chodorow, 미국 뉴욕주 뉴욕시 1944년~현재)는 남아와 여아 모두 유아기 초기에는 엄마를 분리되지 않은 자신의 일부로 인지하지만, 남아는 성장과 함께 독립된 자아 정체성을 형성하나, 여아는 신체와 사회적 기대의 동일성 때문에 엄마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자아 정체성을 형성하지 못하며, 여아는 성장 후에도 엄마가 딸의 타자이면서 자아의 일부로 남게 됩니다. 클래어 카한(Claire Kahane, 미국 뉴욕주 뉴욕시 1933년~현재)은 성이나 귀신들린 집에 갇혀 알 수 없는 공포에 쫓기는 여주인공의 이야기를 원형으로 하는 여성 고딕 작품에서 성이나 집을 엄마의 신체로 해석합니다.

2차 세계 대전(1939년 9월 1일~1945년 9월 2일) 이후 미국은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이성애적 핵가족이 이상적 삶의 형태로 국가적 차원에서 장려되고 남성이 경제활동을 여성이 가사와 육아를 담당하는 성 역할의 규범화가 강화되었는데, 2차 세계대전과 대공황(Great Depression, 1929년~1939년) 시기 동안 여성들은 다양한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군인들이 귀향하면서 여성들은 재향 군인에게 일자리를 돌려주고, 참전 영웅이 재건할 미국이라는 국가에 휴식, 안전, 평화를 제공할 가정의 운영자 역할로 돌아가라는 강력한 사회, 문화, 제도적 압박을 직면했었습니다.

이 당시 미국 여성이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보모, 간호, 웨이트리스 등 가사와 돌봄 노동의 연장선에 있는 핑크-컬러(pink-color) 직종으로 제한되었고, 넓은 의미의 가정과 모성 경계 너머에서 경제적 독립이나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여성들은 이상한 존재로 취급되었습니다. 법과 제도 역시 여성들이 자기 이름으로 신용을 쌓거나, 집 혹은 보험을 구매하고, 계약에 서명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여성의 독립을 체계적으로 막았고 여성에 대한 고용 차별은 다양한 영역에서 합법적으로 승인되었습니다. 따라서, 1940년대~1950년대 미국 여성은 가정 주부 이외의 그 어떤 사회적 정체성을 인정받을 수 없었습니다.

엄마로부터의 탈주와 회귀 욕망이 충돌하는 성장의 보편적 공간에서 규범화된 여성의 역할을 벗어나려는 욕망과 그 자리로의 소환 이데올로기가 주인공을 자기 파괴적 교착 상태로 몰아가는 20세기 중반 미국 여성의 현실을 드러내는 공간이 바로 집이었습니다. 즉, 여성 고딕 장르에서 가장 주목하는 상징은 두려움과 욕망의 대상인 ‘집 = 엄마’라는 상징으로, 20세기 중반 미국 여성이 경험한 구체적 현실의 공포에 대한 소설의 재현을 모성 자체의 본질적 공포, 즉 아이를 품어 기르는 자궁이 애착과 보호 본능 때문에라도 아이를 집어삼키는 위장과 구분되지 않는 엄마에 대한 일종의 원형적 공포입니다.

 

 

 

 

 

 

 

 

 

3. 작품에 대한 소고(小考)

 

(p. 49) 현준이너학원에몇시간씩앉아있는게불쌍해사교육안시켰더놀이터로나가축구라도하종일휴대폰보면어쩌려그러니운동안할거면공부라해야지맨날게만하고있으뭐가되겠니세상사는게어디호락호락한줄알아웃긴동영상만보고있다가는네인생자체가웃음거리가돼서길거리에나앉는다!

(p. 78) 여보왜자꾸술을마셔스트레스풀고싶으면운동이나취미생활이나다른방법으로풀어야지매일마시면그거알콜중독이다마시는양이문제가아니라빈도의문제잖아당신작년건강검진때도지방간이라고나왔잖아그게다매일마시는술때문인거몰라그러다가큰일나면어쩌려고그래나랑애들두고혼자먼저갈꺼야?

(p. 140) 아니현서야지금이몇신데젤리를먹으려고하니그거먹으면저녁을먹을수있겠니없겠니너지난달에치과에서웃음가스마시면서치료한거벌써까먹었어버렸니어금니에두개나레진을씌웠잖아유치라도신경치료하면나중에나올이빨이안예쁘게난다고하시는의사선생님말씀못들었니제발젤리좀그만먹어!

 

용복, <저녁과 악몽> 中

 

용복 작가님의 80매짜리 중단편 분량의 호러, 일반 장르 소설인 <저녁과 악몽>은 주인공 승희(현서와 현준이라는 자녀를 두고 외벌이하는 주완이라는 남편과 시어머니를 둔 가정주부)는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중년 기혼 여성입니다. 승희의 삶은 오직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만 존재합니다. 가정주부는 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아니지만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엄마로서 여러가지 복합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가정의 의식주, 소비, 가족, 육아는 오로지 승희의 몫입니다. 승희라는 한 인간의 자기정체성은 사라지고 집안의 유령이 되어버렸습니다. 가족들에게 잔소리를 하고 싶은 산더미이지요. 승희는 과자 집(섭지코지 유령 하우스)이 등장하는 꿈을 꿉니다.

<저녁과 악몽>을 반복해서 읽을 수록 주인공 승희를 비롯한 온 세상의 가정 주부들이 겪는 괴로움이 집약된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서 고찰한 바, ‘집’이라는 요소는 여성 고딕 장르에선 엄마와 공포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또한, ‘가정 주부’는 사적 공간 및 가사 노동과 강하게 결합되어 왔고 기혼 여성과 가사 노동자의 위치를 결합시켰습니다. 넓게 보면 주인공 승희는 가정이라는 위계적이고 가부장적인 공간에 갇혀서 억압당하고 착취당하는 기혼 여성을 표상하는 캐릭터로 용복 작가님께서 구현한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남편, 자녀, 시어머니를 위해서 끊임없는 노동을 강요당하는 집에서 벗어나고 싶은 승희의 무의식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또한, 승희는 거울에 비친 자신에게 ‘나는 누구지?’라고 물어보며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은 뒤 자신 잃고 죽은 상태인 줄도 모르고 살아온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용복 작가님의 <저녁과 악몽>은 가정주부 화자인 ‘승희’를 통해 우리 세상의 어머니들이 겪고 있는 동시대를 비춰주고 있는 거울 같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작품을 집필해주신 용복 작가님께 배례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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