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불편함은 잊었던 기억을 불러낸다.
강도 높은 괴롭힘을 목격한 적이 있는가. 그것을 보고는 어떤 행동을 했는가. 괜히 불똥이 튈까 조용히 지나갔는가. 정의감에 맞서 싸웠는가. 아니면 당신은 그 당사자였나. 가해자 또는 피해자였던 적이, 어쩌면 그조차 깨닫지 못할 정도로 무감했던 기억이 있을까.
주연이든, 조연이든, 단역이든, 괴롭힘의 무대 위에 선 사람은 편치 않다. 그들 중 누구에게도 편안한 잠자리는 허락되지 않는다.
아, 그런 애가 있었지, 라고 말하는 순간 소환되는 장면.
이를 테면 ‘눈깔사탕’ 같은 단어로 촉발되는 긴장감.
이도건의 단편 ‘역류’는 의안을 착용한 친구를 집단으로 따돌리던 학생들에게 시간이 흘러 원인 모를 죽음이 찾아가는 이야기다. 의안을 떼어 ‘삼키게’ 하던 가해자들이 ‘뱉어내는’ 행위로 죽음을 맞는 구조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회사에서 성실하지 못한 직원 취급을 받는 영호에게 ‘주환’이라는 친구의 기억이 불쑥 찾아온다. 그 시점을 계기로 영호에게는 느닷없는 이상 증상이 생긴다.
영호가 과거 주환에게 행한 폭력은, 그가 잊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다. 사람이라면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 너무 쉽게 잊혔다. 하지만 찌른 사람은 쉽게 잊는다지 않던가.
이런 영호의 망각된 기억은 친구들과의 모임을 계기로 다시 상기된다. 누군가의 죽음들, 생각보다 가까이 있던 당사자들. 그리고 결국 그 안에 있던 자신. 영호는 한껏 불편해진 몸과 마음으로, 그러나 그것을 잊으려는 양 현실에 복귀한다. ‘회사’는 친구들과 헤어진 영호가 다시금 일상적인 회복을 꾀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가해자는 회복하면 안 된다.
이 ‘회복’을 방해하는 공간으로서 ‘회사’가 수행할 수 있는 기능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아가 영호를 좀 더 기괴한 자각으로 떠밀어 버리는 공간이 ‘회사’라면 좋겠다. 지금 ‘역류’에서 ‘회사’는 그저 평범한, 그러나 조금은 수직적이고 답답한 공간에 그친다. 그곳에서 영호가 ‘눈알’에 관한 사건을 직면한다면 어떨까. 친구들을 만나고 난 이후, 그가 과거에 행한 짓이 묘하게 떠오르는 일이 회사에서 발생한다면 어떨까.
모니터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이 깨질 듯이 아프다. 그리고는 오른쪽 눈알이 툭, 떨어져 모니터 아래로 굴러들어간다. 놀란 영호가 눈이 있던 자리를 매만지지만, 얼굴은 멀쩡하다.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무심코 다시 모니터를 보는데 모니터 너머 주임의 얼굴이 주환으로 바뀌어 있다. 그의 한쪽 눈이 비어 있다. 영호는 놀라 비명을 지른다.
이런 식으로 연쇄적인 환각 또는 환청이 영호에게 발생한다면, 회사는 ‘현실’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곳에서마저 영호는 회복될 수 없다. 그에게 일상은 사라진다. 그가 주환의 일상을 빼앗은 것처럼. 이미 세상에 일어나면 안 되는 사건을 다루고자 한다면, 상상은 좀 더 극단으로 치달아도 된다. 오히려 더욱 기괴하고 찜찜하게, 불쾌하고 잔인한 일에 영호를 집어던져 보자.
영호는 그런 일의 끝에 반드시 죽음을 맞거나, 죽음에 맞먹는 고통을 느껴야 한다. 차라리 그래야만 한다고 독자의 입장에서 끊임없이 되뇌게 된다. 주환의 죽음을 영호의 죽음으로 갚는 결말은 가장 이상적이다. ‘불편한 장면’을 다루는 것을 조심스러워하기보다, 치밀한 불편함으로 독자에게 잊었던 무언가를 상기시켜야 한다. 그리고 경고해야 한다. 괴롭힘은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는 듯, 그것을 잊지 말라는 듯 가장 선명한 장면 하나로 독자에게 영호를 각인해야 한다.
또는 영호의 친구들을 하나하나 호명해 본다. 뉴스든, 신문 기사든 무엇이든 그들의 죽음이 연쇄적으로 발생했음을 드러내는 결말을 택해 보는 것이다. 영호의 죽음 이후 A가 죽고, B가 죽고, C가 죽고, 비슷하지만, 다른 형태의 그림자가 한 명 한 명의 목숨을 앗아간다. 뉴스나 기사는 사실을 다룬다. 픽션에 삽입되는 논픽션은 잠시 독자를 소설 밖으로 소환한다. 이 뉴스는 사실이며, 괴롭힘의 끝애는 죽음이 있다는 게 자명하다는 듯.
‘역류’는 현재 짧은 분량이지만, 상상이 어떻게 뻗어가느냐에 따라 두께가 달라질 수 있는 이야기다. 한 피해자가 실제로 있었다고 생각하며, 그가 초현실의 능력을 가진다면 가해자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상상해 보면 좋겠다. 정말 눈알이 토해지는 것만으로, 그로 인해 발생하는 유혈사태만으로 주환은 만족할까. 어쩌면 더 교묘하고 치밀하게 모두의 목숨을 천천히 앗아가고자 가장 잔인한 계획을 세울지도 모른다. 작가는 그런 ‘욕망’에 아낌없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니까 상상을 해보자는 거다.
어떤 괴롭힘의 끝에 놓일 하나의 작은 복수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