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적인 리뷰인 만큼 좋았던 부분과 인상 깊은 부분을 위주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리뷰의 내용이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작품을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은 리뷰 읽기를 재고해주세요!
시작부터 다소 오싹한 느낌을 주는 이 작품은 제가 생각하기엔 우리 사회의 무책임한 모습을 고발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종종 행위의 의도나 이유를 찾는 데에 혈안이 되고는 하고, 의도나 이유에 따라서 같은 행동에도 다른 평가를 내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쁜 뜻이 없었다고 해서 모든 행위가 용서 받는다면, 그게 과연 옳을까요?
이 작품 안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문장은 ‘그들에게 악의는 없어.’입니다. 이 문장에서 작품 안의 상황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상황들이 연상되더라구요. 작품 안에서의 관계는 인공지능과 인간이지만,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일어난 일에서도 우리는 비슷한 문장이 나타나는 장면을 알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장난이었어.’라는 말로 지나쳐가는 폭력의 현장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 ‘다 널 사랑해서 그러는 거야.’라는 장면이었구요. 그들에게 악의는 없습니다. 아마도요.
하지만 악의가 없다고 해서 피가 흐르지 않았을까요? 이러한 맥락으로 생각이 흐르니 단순히 무서운 것이 아니라 조금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이런 작품 외적인 감상을 차치하고, 작품 안에서 일어난 일에 집중한다면 정말 오싹하기 그지없는 이야기였습니다. 눈을 뜨니 생소한 장소, 손에 들린 칼, 코앞에서 벌어진 살인. 패닉에 빠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우리의 주인공은 제법 정신력이 강한 인물인 것 같습니다. 저라면 아마 까무러쳐서 자리에서 울고 있었을 것 같거든요.
그리고 주인공이 마주하게 되는 진실은 눈앞의 현상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습니다. 칼 든 인간들이 찾으려고 혈안이 된 게 바로 자신이라면 얼마나 무섭겠어요. 심지어는 그 ‘인간’은 ‘인간이 아닌’ 나를 그냥, 재미있는 게임을 위해서 죽이고 있으니까요.
우리가 함부로 대했던 기계, 로봇, AI가 언젠가는 인간을 향해 복수심을 품고서 반기를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제법 보편적인 공포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게임 속에 떨어지는 것도 흔한 소재죠.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0과 나’는 참신해요. 저는 그게 딱히 복수심에 불타는 AI도 없고, 주인공이 게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도 없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리고 ‘게임일 뿐이야, 악의는 없어’라는 표현이 공포를 더하는 거죠. 그들에게 악의가 없기 때문에 이 거지 같은 게임에 끝이 있으리라는 기대도 사라지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깊은 악의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묘하고 허무맹랑할수록, 저는 왠지 더 나한테도 저런 일이 일어날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엄청나게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보다는 이세계로 가게 만드는 트럭에 치이는 쪽이 뭔가 더 와 닿는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저는 이 이야기가 더 무섭게 느껴졌어요. 어쩌면 내가 거의 굶어 죽도록 방치해버린 RPG 게임의 캐릭터들과 내가 신세가 바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아요. 게임 자주 들어가야지…. 그리고 NPC를 소중히 대할 거에요..
그리고 처음 언급한 것처럼, 작품 외적으로 제가 떠올렸던 것들도 조금 더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오싹하고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싶은 동시에 가치관에 대한 고민도 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읽어주셨다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