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날 밤 다시 들리는 ‘야!’ 감상

대상작품: 야! (작가: 일월명, 작품정보)
리뷰어: JIMOO, 20시간전, 조회 7

‘밤공기는 아직 선선했다. 그러나 이런 날씨도 여자의 전신을 가리는 장코트 차림을 설명하긴 어려웠다.’ ‘여름으로 넘어가는 다 늦은 봄에 일부러 저렇게 입기도 어려울 테다.’

 ‘지은 지 30년 넘은 빌라와 버려진 공터 뿐인 동네라, 그래서 멀쩡한 사람은 없고 계속 미친 사람만 오나 봐.’

 ‘미친 사람이어도 지치긴 지칠 거 아냐. 어제가 마지막이었을 거야. 그러니 오늘 밤은 괜찮을 거고.’

 “계속 저 소리 듣고 살 거야?”

새벽 세시 창밖에서 고함을 치는 여자가 있다. 계절을 서술한 문장들로 미루어 보았을 때 창문을 닫으면 더워서 잠들지 못하고 선풍기를 틀기엔 춥게 느껴지는 애매한 기온인 것 같다. 이른 초여름의 입구로 들어서는 시기에 사람들은 나날이 상승하는 온도에 몸이 적응을 못 해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게다가 저 여자가 매일 오기 전부터 이 동네에는 이런 일이 자주 있던 것 같다. 어제가 마지막이었을 거라고 참던 그들의 인내심은 무너지고 만다. 

기본 욕구인 수면을 방해받게 되면 사람은 자기 통제력을 잃고 점점 미쳐간다. 분노가 폭발한 이야기 속의 인물에게 적어도 심정적으로는 충분히 공감되었다. 창문을 닫음으로 차단되는 효과는 생각보다 크다. 닫고 살 때는 그다지 의식하지 못했던 원래 존재하는 소음들이 활짝 열면 얼마나 크고 불편하게 다가오는지.

취객들이 술주정을 부리는 소리가 오래도록 이어지면 창문을 닫아 보지만, 더워서 다시 열고, 시끄러워서 닫았다가 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 한숨으로 지새우던 경험이 떠오르기도 했다. 아파트 창문에서 누군가 아래를 향해 “시끄러워! 잠 좀 자게! 그만 좀 지X하고 꺼져!”라고 외칠 때, 112에 신고가 들어갔는지 경찰이 출동했을 때, ‘아, 역시 나만 참고 있던 게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밤의 소동에 화가 나서 창밖으로 지켜보면서 인내심의 한계를 경험한 일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 공감이 갈 것 같은 이야기였다.

이 소설의 흥미로운 점은 공포를 유발하는 힘의 주체로 느껴지는 대상이 여러 번 뒤집힌다는 점이다. 사연이 있는 사람인지 귀신인지 모를 기묘한 느낌을 가진 빨간 코트의 여자가 주민들의 밤잠을 방해하는 소음 빌런으로 등장한다.

남편이 달려 나간다. 분노의 대상이 여자였고 무기를 들고 있는 남편이 남자였다는 측면에서 여자가 귀신이 아닌 이상에는 폭력을 당할 수 있는 약자로 느껴져서 불안했다. 팽팽하게 당겨진 김장감 속에서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반전을 맞게 된다. 남편은 순식간에 약자가 된다.

그들 부부에게 이 주변은 매일 지나다니고 살았을 익숙한 풍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낮에 보는 풍경과 밤에 보는 풍경은 큰 차이가 있다. 잘 보이던 것도 보이지 않게 된다. 캄캄한 어둠 속 가로등 불빛에 의존하여 여자를 바라보고, 창문이라는 한계에 갇혀 있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장면이 등장할 때야 비로소 알게 된다. 사각지대였음을.

반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그들 부부는 잠을 방해하는 여자의 폭력적인 욕설, 수면 부족과 폭염으로 지친 과도한 스트레스가 최악의 위험 요소라고 판단했겠지만, 가려진 어둠 속에 무엇이 있을지와 그 여자의 진짜 목적과 의도가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만약 남편 역시 온건하게 신고를 선택했다고 해도 다음에 같은 상황이 반복되어 주민 중 누군가는 분노에 눈이 먼 상태로 뛰쳐나가서 함정에 빠진 피해자가 되었을 것 같다. 저런 상황을 이용하는 범죄가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현실적인 설득력을 주고 있어서 소름 끼치는 여운이 남았다.

집은 바깥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역할을 해야 하는 공간인데, 아내는 처음부터 끝까지 집 안에서 창문을 통해 바라보고만 있었던 입장이면서도,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곧 달려오겠다는 경찰과 계속 통화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력감과 두려움에 주저앉게 되는 아내의 심정에 몰입되었다.

똑같은 상황에 노출되어 있는 아내는 112에 신고를 하고 남편은 칼을 가지고 뛰어나가는 차이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상식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 왔을 때 이성이 뚝 끊어지면 사람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한없이 무력해지고 누군가는 폭력적으로 변한다. 만약 남편은 상대가 여자가 아닌 건장한 체격을 가진 남자였어도 똑같이 대응하려 했을까? 주저하며 경찰에 신고하는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라는 면에서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빨간 코트의 여자는 더운 날씨와 어두운 시간대, 자신이 여자라서 남자들이 충분히 약자로 볼 수 있다는 점까지 파악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범죄를 저지르기 위한 미끼로서 여자는 무대 조명 밑의 배우처럼 연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 큰 반전 요소로 다가왔다. 귀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도, 공포가 줄어들지는 않았다. 문장 사이로 끼어드는 진한 글씨체로 표현되어 있는 욕설들이, 텍스트가 아니라 음성 지원되는 목소리처럼 느껴져서 실감이 났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