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서 상처받지 않는 법은 기대하지 않는 법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지요. 사람은 기대한 만큼 실망하고 상처받으니, 아예 기대하지 않으면 무엇을 경험하건 그것이 그 사람을 크게 할퀴고 아프게 할 수 없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평생 기대 없이 살아가게 되는 사람이야말로 불행한 건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하자니 주인공의 심리를 어쩔 수 없이 이해하게 되고 맙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하지요.
학교 다닐 때 반에 한두 명쯤 그런 아이가 있었던 것 같아요. 누구나 좋아하고 누구나 먼저 손을 내밀고 누구나 친해지고 싶어 하는 분위기 메이커. 그리고 어디에나 조용하고 존재감이 부족한 사람도 있기 마련이지요. 둘은 광원과 그림자처럼 어우러지고, 누군가가 강렬히 기억되는 만큼 또 어떤 사람은 기억 저 너머로 사라지고 맙니다. 있었던가? 그런 애가 있었던가? 하고 갸웃거릴 만한 대상으로.
후자에 속하는 사람으로서의 주인공의 말은 그의 처지를 가장 잘 대변해줍니다. 보충 인원. 누구에게나 첫 번째는 아닌 사람.
그런 그에게도 자신을 첫 번째로 여겨주길 바랐던 친구가 있습니다. (개인적 취향으로는 정말로 평생, 아무에게도 중요히 여겨져 본 적 없는 고립 인생이 훨씬 절절히 읽힐 것 같다고 느꼈지만, 작가님은 독자에게 희망을 주고 싶으셨던 모양이에요. 확실히 절망과 고독에서 오는 문학적 카타르시스보다는 밝은 미래를 향한 일말의 소망 쪽이 훨씬 정겹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 친구의 존재는 주인공이 감정 루프를 겪으면서 행복과 관심으로 바빠지게 되었을 때에서야 슬쩍 비추어져요. 게다가 주인공이 이미 다른 사람들에게 보충 인원인 삶만을 서술해왔기 때문에 중학교 시절 친했던 친구마저 그를 보충 인원으로 여기고 있었으리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게 합니다. 이걸 서술트릭으로 불러야 할지, 아니면 작가님의 장치라고 생각해야 할지 아직도 고민하고 있어요.
주인공이 그가 원하는 삶을 손에 넣게 되었을 때 그는 꽤 행복해 보입니다. 그걸 아무 대가도 없이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는 없겠지요. 독자는 약간 걱정되는 심정으로 그의 행복을 지켜보는데, 여기서 <유령>이 등장하며 관심과 사랑이 돌아올 수 있었던 원인이 설명되고 주인공은 과거로 되돌아가죠. 타임리프 소설이라는 사실은 마지막에서야 알았습니다. 그리고, 의문이 떠올랐지요.
이하는 스포일러 없이는 말할 수 없기에 숏코드를 사용합니다.
글을 읽은 후 먼저 생각났던 건 이거였어요. 주인공의 관심을 얻고자 했던 ‘희’는 그래서 왜 과거로 돌아간 뒤에 주인공에게 보충 인원이라는 박탈감을 느끼게까지 그를 내버려뒀을까? 단순히 거리가 멀어져서? 같은 학교에 들어가지 못해서? 같은 학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계속 연락하고 친밀감을 표하고 종종 만나거나 하는 종류의 노력은 가능할 것 같았는데. 미래에서 돌아오기까지 했으면서 그런 노력을 보이지 않고는 시간의 틀에 갇혀 유령이 되어버렸다는 이야기를 믿으라고 말하기에는 희의 노력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허술합니다. 우선은 아쉬움을 느꼈지요. 희가 무엇을 선택했고 어떻게 실패했는지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그저 실패했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연락이 닿지 않았다는 말 한마디로 퉁치고 지나갔던 사람이었으므로, 독자에게 다가오기에는 정보가 많이 부족한 감이 있었어요.
설명이 정확히 나오지 않고 무슨 존재인지 한 마디로 툭 지나가 버리는 <그 사람>에 관해서도 제가 그냥 발견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은유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혹은 시간의 틈에 빠진 사람들은 그냥 그런 사람들이고 사람을 시간의 틈으로 잡아끌며 미끼를 던지는 유령이라는 존재를 그 사람이라고 칭하는 것인지요. 아무튼, 이 부분은 좀 더 보충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사실 ‘지나치게 똑똑한 친구’의 서술에 관해서는 아직도 확신이 가지 않아서, 이 부분에 관해서는 언급을 줄이겠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해요. 주인공의 여러 생각은 틀림없이 공감받을 만한 생각이겠지요. 어떤 소외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가상의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위로를 위해서 저는 주인공이 꼭 희와의 관계를 놓지 않고 나아갔으면 좋겠네요. 관계란 혼자 붙들고 있어 봤자 허무한 거니까요! 시간의 틈에서 벗어나기 위한 조건이 그와 같은 사람을 그 틈에 집어넣어야 한다는 무시무시하고 나쁜 조건이 붙어 있긴 하지만, 주인공은 주인공답게 지혜와 기지를 발휘해 그 고리를 끊을 수 있지 않을까요. 어쩌면 그런 두 번째 이야기가 존재할 수도 있겠지요. 절대 강요하는 건 아닙니다. 가끔 이야기의 끝 후에는 인물들이 어떤 삶을 살아갈까 생각해보거든요. 그래도 저는 두 사람이 이전보다는 분명 서로에게 중요한 친구가 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해요.
모든 절친한 친구들이 그렇듯이.
이 글이 타임리프라는 힌트를 앞, 혹은 중간에서 좀 더 발견할 수 있다면 더욱 읽기 좋은 글이 될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