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한 일입니다. 좋은 sf를 만나면 그 최첨단 기술의 향연에 빠져들다가도 종국에는 인문학적이고 철학적인 물음을 맞이한다는 게. 이 글 역시 그렇습니다.
주인공은 ‘뇌’에 ‘링크’가 연결되어 생각하는 모든 것에 실시간 반응하는 ai와 함께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작가님은 글 서두에 주인공 머릿속에 끝없이 이어지는 광고들을 통해 그게 어떠한 삶인지 세밀히 그려줍니다. 이 근 미래가 보여주는 ‘링크’의 세상은, 뇌에 직접 연결되었는가의 여부만 다를 뿐, 수많은 쿠키 분석으로 인터넷 창에 [내게 맞는] 광고를 띄워주는 요즘의 현실과 조금도 다를바가 없어 더욱 생생합니다.
이러한 미래 속에 주인공은 무엇으로 먹고 사는가하면- ai가 쓸 소설의 자양분(?)이 될 학습용 소설을 써서 먹고 삽니다. 그러니까 그의 창의력 내지 창작 능력은 ai 발전을 위한 밑거름으로 쓰입니다. 인간이 기계 발전의 베이스를 깔아주는 셈이죠. 그래서인지 이 대목은 배양액에 들어 기계들의 에너지 공급원 처지가 되어있던, 영화 매트릭스를 생각나게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뇌’를 스캔(이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네요)해 판매하라는 새로운 제안을 받습니다. 그는 이것을 ‘인격’을 판다고 느끼죠. 이 제안에 대한 반응은 사람마다 달라서, 작가님은 체념한 듯 받아들이는 인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인물, 그리고 부정적으로 느끼는 인물을 모두 보여줍니다.
‘인격 판매’ 제안에 불쾌감을 느낀 주인공은 친구를 찾고, 거기서 또 다른 문제를 맞닥뜨리죠. 죽은 동창을 복제한 휴머노이드의 존재입니다. 이 존재는 주인공의 가치관을 뒤흔들고, 헤어진 전 남친을 잊지 못하는 그를 깊은 유혹에 빠트리죠.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일까요? 스필버그의 영화 ‘A.I.’에서도 그러했듯이, 기술이 발달하고 로봇이 사람을 닮아갈수록, 이 질문은 더 어렵고 난해해지는 것만 같습니다. 무엇을 ‘인간’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요? 어떤 한 사람을 온전히 복제하여 되살릴 수 있다면, 이 존재는 ‘인간’일까요 아닐까요? 또는 이 존재가 ‘인간’이라면, 그는 복제되기 전의 ‘그’와 같은 인간인걸까요, 다른 인간인걸까요?
이 글에서는 더 나아가, ‘전자인’들에게 인격을 부여합니다. 그들은 소비의 중심에 서고, 심지어 자연인을 먹여 살릴 기세입니다. (주인공은 새로 얻은 일자리에 대해 설명하며 [링크가 날 먹여 살리는 셈이었다]고 말합니다.) 자연인과 전자인이 할 수 있는 일, 없는 일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누가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거나 봉사한다는 개념은 점점 더 흐려져만 갑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과 비인간-로봇-은 무엇으로 구별지어야 할까요? 그리고 이들을 구별짓는 것은, ‘차별’이 아닐까요?
로봇이 정교하게 학습되고 프로그래밍 된 결과값을 내 놓는 존재, 라고 한다면 사람은 무엇이 그리 다를까요? 보조 도구를 이용해 글을 쓰는 주인공의 동료들은 주인공에게 말합니다. ‘강 작가 머리에서 나왔다고 믿는 그 문장들, 실제로는 어디선가 본 걸 조합한 거잖아, 안 그래?’ 그렇다면, 사람은, 로봇보다 덜 규칙적이고 더 오류가 많게- 그래서 예상치 못한 결과값이 나오기도 하는- 결과를 내 놓는 존재는 아닐까요?
글 속의 휴머노이드는 분명한 욕망을 지녔습니다. 그는 그것의 실현을 위해 자신을 주문한 이를 함정에 빠트리려는 생각도 하고, 자신의 욕망이 이루어지지 않음에 괴로워도 합니다. 상대를 유혹하기도 하고, 함정을 파기도 합니다. 이런 존재를, 단순히 [기계]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 글은 소설이므로, 당연히 작가님은 저런 질문들을 드러내어 묻지 않습니다. 아니, 어쩌면 애초에 없는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모든 감상은 지극히 개인적일 수 밖에 없으므로, 저것들은 저만이 느낀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전 답을 찾고 싶어서, 글을 몇차례 더 읽었습니다. 그러니 이 글은, (최소한 저에겐) 상당히 매력적이고 재미있었습니다.
한가지 잘 모르겠던 것은, 남선입니다. 작품 내내 누군가의 회상이나 타인의 언급으로만 드러나다 말미에서야 겨우 제 목소리를 내는 이 인물은, 이 세계에 속해 있지 않은 듯한 느낌입니다. 그는 자유로워 보입니다. 자기 목소리 내기에 성공한 작가로 나오기 때문인지, 저로서는 ai에 휘둘리듯 링크가 띄우는 광고를 보며 걷는 남선을 상상할 수가 없더라고요. ‘한동안 인터넷이 안 터져서’라는 메일 문구는 그런 그의 이미지를 더욱 강화합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끝없이 남선을 그리워하는 주인공이, 끝없이 자유(뇌의 신경망과 인격을 팔지 않을 자유)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제게는- 남선이 구체적 인물이라기보다 주인공이 꿈꾸는 이상향의 인격화-로 느껴지는 면이 더 컸던거 같습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인격을 팔고, 더 진짜 같은 휴머노이드를 만드는 일에 거부감을 느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돈이 필요하고,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 일원이 되는데 동의합니다. 그와 동시에, 구원같은 연락을 받죠. 이 희비가 교차하는 상황에 그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ai와 휴머노이드는 어리둥절해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곧, 이러한 감정도 학습하겠지요? 그래서 그들은 더 ‘인간같아’ 지겠지요? 그러나 그들이 고도로 ‘인간같아’졌을 때, 우리는 무엇으로 그들을 구분할까요? 아니 그 구분은, 윤리적으로 타당하고 올바른 것일까요?
어렵네요.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글이 시간을 들여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귀한 것은 쉽게 얻어지는 법이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