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9개월 차 연중 소설 감상

대상작품: SSS급 방구석 꾸미기 전문가 001화 (작가: 루주아, 작품정보)
리뷰어: Campfire, 17시간 전, 조회 15

이 작품을 처음 읽은 것은 5년 전인 20년 9월이다. 당시 나는 웹소설에 대해 잘 몰랐다. 정확히는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이퍼 웹잘알의 시선에서 메타 풍자 웹소설 <SSS급 방구석 꾸미기 전문가 001화>를 뜯어보도록 하자.

김덕만. 26세. 공무원 시험 준비생. 덕이 많으라고 지은 이름이지만 친구들은 복덕방을 해야 한다며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라고 놀린다. 그런 친구들도 최근에는 없다. 시험에서 몇번이나 탈락하고 지금은 오기만 남았다. 1타강사의 직강을 듣던 도중 김덕만씨의 귀에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들린다.

[축하합니다. 지구 행성의 인간 개체 ‘김덕만’ 20XX. 3. 1. 자로 아카식 레코드에 각성자로 등록됩니다. 당신에게 영광 있기를]

이미 수만 편의 웹소설이 연재되는 시대니 만큼, 각성 전 얘기를 길게 풀어가는 것은 교장 선생님의 훈화를 듣는 것 마냥 지루한 일일 것이다. 호쾌한 도입부는 장점이다.

 

김덕만씨는 조용해야할 강의실에서 큰 소리를 치고 말았다. 사람들은 따가운 시선을 보냈지만 아무렴 어떤가 각성했는데.

이후 소설은 ‘김덕만씨’, ‘덕만씨’를 채택하며 주인공과 거리감을 두고 풍자or메타 소설적인 스탠스를 취한다.

“너 그 소식 못들었어? 예언자 이상혁이 말한 페이즈?”

리그 오브 레전드의 이상혁 선수가 속한 팀인 T1에 페이즈 선수가 합류한다는 걸 5년 전에 예언한 문장이다.

“F등급이시네요.”

이 지점에서 작품은 독자에게 기대감을 심어준다.

덕만씨는 각성자 협회에서 S~F등급 중 가장 낮은 F등급임을 통보받는다.

현실에서 “불치병 입니다”라는 진단을 받았다면 그건 절망스러운 일이지만 소설에선 다르다. 주인공이 바닥에 있다는 것은 이윽고 누구보다 높이 날아오른다는 것에 대한 약속된 복선이다.

 

덕만씨는 인터넷 검색을 해본다. 커뮤니티에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글을 보니 각성자가 되면 은행에서 대출을 해 주니까 대출 받아서 장비부터 좋은 걸로 맞추라고 한다. 덕만씨는 그 조언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가상의 설정으로 작동하던 이야기에서 현실감이 있는 설정이 끼어드니 재밌다.

해가 뜨마자마 은행으로 달려갔다. 협회에서 맏은 각성증을 내밀고 대출 상담을 받고 싶자고 하자 은행원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한다.

“F급 각성자시네요.”

“예. 그런데요.”

“고객님 여기를 잘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희 은행에서 지원하느건 E등급 각성자 혹은 메니지먼트에 소속되신 고객님 뿐이라서요.”

“저는 안되는 건가요?”

“아무래도 좀 어려분 부분이 있어요.”

(중략)

F급 던전은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으니까 바이크 슈트 같은걸로 잘 싸매고 야구방망이나 식칼 같은걸로도 고블린 한두마리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한다.

짠내 나는 재미가 있다. 현실이었으면 슬플 수도 있겠으나 역시나 이미 주인공의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심어진 후인지라 희극적인 재미만 남는다.

 

신림 제 3 던전. 자기가 살던 곳 근처에 이런 던전이 있다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여기가 내가 살아갈 세계구나. 맨홀 뚜껑을 열고 밑으로 내려가자 거기에는 이번 사냥을 도와줄 B급 헌터 둘과 F급 헌터 셋이 있었다.

덕만씨가 던전에 들어서는 장면이다. 애초에 배경에 분량을 할애할 필요도 없는 타입의 소설이기도 한데 배경 묘사 고봉밥 vs 배경 묘사 없음. 중에 고르라고 하면 후자를 고르는 편이라 풍자니 뭐니 전제하지 않더라도 읽기에 손색이 없다.

 

아저씨는 희희낙낙한 표정으로 고블린을 찌른다.

“화과산 새끼 원숭이의 분신술? 이거 손오공이 그거 아녀? 엄청 각력한 스킬이지 이거?”

“화과산 돌원숭이가 아니라 새끼 원숭이라 그렇게까지 강력하진 않습니다. 머리카락을 뽑아 작은 분신을 부리는 스킬이에요.”

“머리카락을 뽑아야 되는…겨?”

일행의 눈길이 자연스럽게 아저씨의 머리로 향한다. 반짝이는 그곳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헛기침을 하고 수습하는 헌터.

해학계의 스테디셀러.

 

[스킬 안락한 방구석의 거주자를 얻었습니다.]

(중략)

“선생님 저희가 이런 말씀 드리기는 좀 그렇지만…”

“전투 헌터가 될 수 없다는 거죠?”

“예… 저 그리고…”

“짐꾼쪽으로 알아봐 줄 수는 있다는 거죠?”

“저 너무 마음 상하시진 마시고…”

“아뇨 알아봐 주세요.”

군소메니지먼트지만 평판 좋고 탄탄한 곳에 입사한 덕만씨. 노동계약서를 쓰고 월급을 받자마자 간 곳은 은행이다. 대출 코너에 가자 그때의 그 은행원이 덕만씨를 반긴다.

인벤토리 스킬을 얻은 덕만씨. 전투 스킬이 아니지만 취업은 잘 했다. 짐꾼용 스킬이 나왔다고 낙오자 취급을 받았다면 짐꾼도 필요한데 왜 망캐 취급이냐며 비현실적인 전개라는 게임적 리얼리티에 근거한 비판을 받았겠지만 탄탄한 곳에 입사를 함으로서 그런 비판을 사전에 차단하는 전개를 진행한다.

망캐 취급을 받든 견실한 곳에 취업을 하든 주인공이 성공한다는 결과는 같더라도 이런 디테일 하나하나가 작가에 대한 신뢰를 만든다.

 

부동산 사장님과 함께 집을 구하는 덕만씨.

(중략)

“이 날 은행에서 잔금을 치뤄 줘야 진짜 자네집이 되는거야. 그 전에도 일단 전입신고랑은 다 가능하니까 미리미리 해 두고.”

복선이다.

 

“여! 새 집은 맘에 들어?”

“옙!”

“우리 일은 뭐 간단해. 메니지먼트 하는 헌터들도 그렇게 까다롭지 않고. 자네도 기초교육은 다 이수했지?”

“그럼요. 그럼요.”

“그래 회수팀장님이랑 인사하고.”

“자네가 그.”

“그냥 덕만이라고 불러주십쇼.”

“그래 인사성이 밝네. 오늘은 몬스터 없는 곳에 갈꺼야.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우라고. 그리고 우리도 자네 그 용량을 알아봐야 하니까.”

집도 잘 구하고 팀원들과도 잘 지내는 덕만씨. 단조롭다는 차악을 선택했지만 철 지난 고구마 포르노라는 최악을 피해간다는 점에서 호평할 만하다.

 

연수 7던전에 간 덕만씨.

“잠깐 저거 고블린 아냐?”

“아니 홉고블린이다!”

“제길 분명 생체반응이 없는 곳이었는데?”

“홉고블린 좀비에요!”

“E+등급이라고? 자네 자네 각성자지? 어떻게든 해봐.”

“하지만 제가 가진 스킬이라곤…”

그때 덕만씨의 뇌리에 시스템 메시지가 꽂혔다.

[안락한 방구석에 변동 사항이 있습니다. 스킬을 확인하세요.]

그리고 뭔가 할 수 있을거 같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손을 들고 저들을 퇴치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불꽃이 나간다. 고블린 좀비는 불꽃에 타들어간다. 기이한 비명과 함께 도주한다.

“지금이에요. 일단 도망가요!”

“덕만씨 능력이 아공간 아니었어?”

“저도 잘 모르겠어요.”

게이트를 나와서 회수반장은 일단 팀에게 휴식을 지시한다. 얼떨결한 표정으로 손을 본다. 그때 휴대폰이 울린다. 대출 완료되었으니 확인하고 답신 바란다는 문자. 그리고 가스 다시 들어오니 걱정 말라는 집주인 문자. 이 문자를 받은 시간 아까 머릿속에 스킬 변화 안내 메시지가 울린 시간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설마…

“설마 이 능력, 집을 꾸며야 하는거야?”

홉고블린을 만나고 위기 상황에서 능력을 각성한 덕만씨. 집에 가스가 들어오는 것과 손에서 불꽃이 나간다는 것을 연결지어 자신의 능력이 가진 특성을 알아차린다.

딱히 시스템 알림으로 구구절절 능력에 대해 설명하지 않고, 능력을 먼저 사용한 후 휴대폰 문자가 오면서 자연스럽게 둘의 상관관계를 연결 짓도록 하는 연출로 1화를 마무리하는 것이 임팩트가 있다.

 

당연하지만 돈키호테의 저자가 피에르 메나르가 아닌 것처럼 이 소설의 2화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독자가 2화를 기다릴 수록, “이건 진심으로 장기 연재를 해봐도 괜찮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 수록 단편 메타 웹소설로서 이 소설의 완성도는 올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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